'비밀고백 프로젝트', 당신 친구는 몇 명?
상태바
'비밀고백 프로젝트', 당신 친구는 몇 명?
  • 공주형
  • 승인 2011.01.18 1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성칼럼] 공주형 / 인천대학교 기초교육원 초빙교수

비밀이란 대개 그렇다. 어떤 후회, 어떤 수치심, 어떤 좌절, 어떤 혼란, 어떤 다름과 관계가 깊다. 그래서 발설과 동시에 상대방의 부담스러운 관심과 시선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려놓기보다 마음의 짐으로 비밀을 감수하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당신을 익명의 비밀고백 프로젝트에 초대합니다.’ 그런데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 함께 사는 배우자, 사랑하는 연인, 절친한 친구에게조차 숨김없이 말하는데 큰 용기가 필요한 비밀을  털어놓으라고 청하는 낯선 이가 있다. 나의 비밀은 세상에 알려질 것이나 그로 인해 내가 곤란해지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는 장담과 함께. 이름 석 자 들어 본 적 없고,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이에게 내 인생의 비밀을 고하라니.

다소 황당한 프로젝트 포스트시크릿의 제안자 프랭크 워렌이 설명하는 비밀고백의 방법은 이렇다. 1 단계, 엽서를 한 개나 두 개 챙긴다. 엽서는 거리에서 직접 그에게 받을 수도 있고, 미술관과 도서관 지하철 역 근처에 취할 수도 있다. 보내는 이의 이름과 주소를 기재하는 칸은 비어 있으나 받는 이의 그것은 쓰여 있는 엽서이다. 2 단계, 비밀을 털어 놓는다. 3 단계, 우표를 붙여 엽서를 보낸다.


낳아주신 어머니께, 나에게는 훌륭한 부모님이 있어요. 사랑을 찾았어요. 난 행복해요.
(사진 출처:
www.postsecret.com)

이제 다 되었다. 내 주머니 속에서 세상 밖으로 탈출한 비밀의 면모가 궁금하다. 물론 ‘저는 당신 때문에 영롱한 목소리를 튼실한 다리와 바꾼 인어 공주입니다’와 같은 내용은 없다. 나의 비밀은 나의 부끄러움이었고, 나의 두려움이기도 했다. 나의 비밀은 나의 성적 취향이었고, 나의 신념 체계이기도 했다. 나의 비밀은 나의 소원이었고, 나의 절망이기도 했다. 나의 비밀의 생의 의지이었고, 죽음의 유혹이기도 했다. 나의 비밀은 나의 이야기에 다름 아니었다.


모든 사람들은 내가 커피를 마신다고 생각해요. 사실 그것은 포도 맛 분말주스. 난 커피를 싫어해요.
(사진 출처:
www.postsecret.com)

‘누가 너에게 진짜 비밀을 말하겠니.’ 지인들의 우려 속에 2004년 11월 3,000장의 엽서로 시작한 포스트시크릿은 현재 15만 명이 동참한 가운데 인터넷에 개설된 웹사이트(www.postsecret.com)로 자리를 옮겨 계속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뜻밖의 예술가’ 프랭크 워렌은 ‘미국에서 가장 신뢰할 타인’이란 별칭을 얻었고, 미국정신건강협회로부터 자살방지를 위한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을 하기도 했다.


24년 동안 남편의 장례식을 계획중이에요.(사진 출처: www.postsecret.com)

소셜미디어 페이스북에 자신의 최후를 예고한 40대 영국 여성이 계획대로 차질 없이 자살을 감행했단다. “내가 가진 약을 다 먹었다. 모두들 안녕" 세상에 보내는 망자의 마지막 S.O.S.는 ‘항상 약을 과다 복용해 온 그의 거짓말’로 오해되었고, 1,082명의 온라인 친구들 중 누구도 그 절박함을 진심으로 제때 공유하지 못한 모양이다.

‘당신의 비밀이 진실이고, 어느 누구와도 공유하지 않았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보내주십시오.’ 진실과 공유, 기사를 읽으며 포스트시크릿의 간단명료한 취지를 떠올린다. 아마 프랭크 워렌의 비밀고백 프로젝트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이유 또한 이 언저리에 자리할 것이다. 누군가의 진실을 공유할 자격을 갖추었다는 판단이 설 때까지 유보할 생각이다. 습관처럼 응했던 페이스북 친구 요청 수락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