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가고 싶어 미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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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고 싶어 미치겠어요"
  • 이병기
  • 승인 2011.01.2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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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연평도 피란민 김포 거주 한 달 … 설 앞두고 더 '쓸쓸'


아파트 현관 앞에서 담배를 태우는 박순교 할아버지

취재: 이병기 기자

"나랑 동갑인 할마이랑 같이 살아요. 6.25 때 북에서 넘어와서 이발사를 했지요. 고향이 황해도 옹진인데 연평도 산에 오르면 빤히 들여다보여요. 이제는 60년 동안 연평도에서 살았으니 그곳이 고향이죠. 설 명절에는 연평도에 잠깐 갔다가 부평에 사는 아들네서 차례 지낼 거예요. 죽을 날이 내일 모래니 바라는 건 없지만, 다시 할마이랑 연평도에 가서 살고 싶어요." - 박순교(82) 할아버지

18일로 북한의 연평도 포격 55일째, 연평도 주민들이 중구 찜질방에서 벗어나 김포 임시거주 아파트로 이주한 지 한 달을 맞는다. 두 달 간 이곳에서 생활하는 연평도 주민들은 새 아파트에서 몸은 따뜻하게 누이고 있지만, 명절을 앞둔 가슴엔 '찬바람'이 불고 있다.

처음엔 여느 훈련상황인 줄 알았다. 그러나 마을에 포탄이 떨어지고 2차 포격이 이어지면서 연평도 주민들은 혼비백산했다. 내 집, 혹은 바로 옆에 떨어지는 폭탄과 굉음은 그들의 정신을 공황상태로 몰고 갔다.

고깃배를 타고, 여객선을 타고 뭍으로 나와 찜질방에 들어갔다. 2~3일이면 될 줄 알았던 찜질방 생활은 1주일을 넘기고, 열흘을 넘기고, 보름이 다 돼서야 끝났다. 대책위원회와 정부의 줄다리기 속에 한 공간에 모인 수백명의 피란민들은 먼지와 감기균에 노출됐다.

겨우 김포의 한 아파트에 마을 사람들이 함께 살게 됐다. 한 집에 대여섯명. 많게는 8~9명까지 모여 산다. '이웃사촌'이란 말도 있지만, 그래도 '가족'과 살던 때보다는 불편하다.

하지만 어쩌랴. 마을에서 제법 젊다는 중장년층은 노인들의 식사와 청소 등 뒷수발을 하고, 아이들은 왕복 두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학교를 오갔다.


'동장군'도 아이들 장난끼는 멈추지 못하는가 보다.

전국적인 한파 속에 기온이 영하 20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이날. 단지 내 주민들의 모습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단지 입구엔 양곡면 일부 단체에서 내건 '연평도 주민 환영'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다.

'동장군' 위세에도 몇몇 아이들은 아파트 주변에 쌓인 눈으로 장난을 치며 힘차게 뛰어다닌다. 단지를 돌아다니다 아파트 입구 앞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태우던 박순교 할아버지를 만났다.

작년 11월, 북한의 2차 포격 당시 박순교 할아버지 집은 폭탄이 떨어진 양쪽 집 사이에 위치했다고 한다. 그때 충격으로 허리를 크게 다쳤고, 인천으로 나와 수술까지 받았다고 한다. 지금은 할머니와 3명의 주민이 함께 살고 있는데, 할아버지를 제외한 모두가 여성이다.

김포에 이주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세탁기와 냉장고, TV가 들어왔다. 가끔 쌀이나 반찬도 나눠준다고 하니, 생활하는 데 큰 불편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단지 주변엔 달랑 슈퍼 하나만 있을 뿐 나머지는 텅 빈 벌판이 전부다. 오늘처럼 날씨가 추운 날엔 주변 산책은 어림도 없고 하루종일 집 안에 틀어박혀 있어야 한다.

박 할아버지는 "집에 가고 싶어 미치겠다"면서 "불편한 건 없지만, 정말 착잡하다"라고 말했다.


아파트 입구에서 만난 박병환(중2)군은 학교에 가는 걸 빼고 한 달 만에 처음 인천으로 나간다고 했다. 오늘도 보충수업이 있지만, 인천에 일을 보기 위해 처음 길을 나섰다.

박군은 "주변에 아무것도 없고, 갈 데도 없어 답답하다"면서 "집에는 가고 싶은데, 폭탄을 맞아 이러고 있다"라고 말했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발견한 '보온병 폭탄'집이 바로 그의 집이란다.

박군은 "일이 잘 풀렸으면 좋겠다. 상하게도 사람들은 우리가 돈을 많이 번 줄 아는데, 그렇지 않다.면서 서운함을 드러냈다.

윤진영(45)씨는 "닭장하고 똑같다"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섬에 있었으면 바닷가를 돌아다니거나 굴도 땄을 텐데, 여기선 갈 데가 없다. 찌그러진 집이라도 내 집이 최고이다. 바닷가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라고 말했다.

윤씨는 가족이 모두 인천에 나와 있어 김포에서 설 명절을 지낼 예정이라고 했다.

"실질적 고통 지원책 제시하라"


대책위 관계자들이 나와 '연평도종합발전계획(안)'을 발표하고 있는 모습.

한편, 17일 연평주민 대책위는 옹진군청에서 '연평도 종합발전계획(안) 주민 공청회'를 열고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 만든 대책안을 제시했다.

대책위는 "정부와 인천시, 옹진군은 여러 지원책을 내놓았지만 일시위로금, 임시거주지 생필품지원 등 가장 기본적인 것에 안주하며, 주민들의 실질적 고통에 대한 지원과 향후 지원책은 제시하지 않았다"면서 "그래서 주민과 대책위는 수 차례 회의 끝에 연평도종합발전(정주) 계획안을 마련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그들은 ▲적극적인 전 주민 피해조사 실시 ▲연평도 개발에 따른 주민의견 수렴 ▲종합개발계획 제시 및 주민요구안 수용 ▲현실적인 피해보상 협의 등을 정부에 건의했다.

행정안전부는 작년 12월 '서해5도 지원 특별법'을 통과시키고 연평도 피해복구와 주민생활 안정지원 391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공공·사유시설 복구비와 생활안정자금, 정주생활지원금 등으로 사용된다.

또 430억원을 들여 서해5도 주민안전을 위한 대피시설을 35곳으로 확충하고, 오는 6월께 특화개발과 소득 창출을 위한 '서해5도 종합발전계획'을 수립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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