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차판매는 가정파괴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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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차판매는 가정파괴범입니다"
  • 이병기
  • 승인 2011.01.27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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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대우차판매지회 노조, 대량정리해고 반발 본사 점거농성

김진필 지회장취재: 이병기 기자

거의 30년 동안 대우자동차를 팔아온 이규영(61)씨. 올해 말 정년퇴직을 앞둔 그에게 돌아온 것은 명예로운 '퇴직'이 아닌 '정리해고'였다. 그는 "인생이 슬프다"라고 말했다.

1982년 대우자동차의 전신인 새한자동차 시절 입사한 이씨는 30여년 동안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3번의 해고를 당했다. 청주에서 근무하던 그는 "나는 괜찮지만, 후배들 일자리가 없어지는 걸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는 이유로 지난 24일 인천 부평에 위치한 (주)대우자동차판매(이하 대우차판매) 본사 점거 농성에 동참했다.

작년 4월 최종 부도로 기업 재무구조 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간 대우차판매는 최근 전체 직원 570여명 중 승용차 판매부분 등 영업사원을 포함한 390여명을 정리하겠다는 신고서를 중부고용노동청 인천북부지청에 제출했다.

대우차판매는 현재까지 영업직과 사무직 340명을 '대기발령'하고, 25일 정리해고자를 개별 통보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지난 24일 전국금속노조 대우차판매지회 조합원 100여명이 부평구 청천동 본사를 기습 점거했다.

본사 정문 앞에서 '대우차판매 정리해고 규탄 금속노동자 결의대회'가 열린 25일, 건물을 점거한 조합원들은 '끝까지 왔다'는 심정을 밝혔다.


이날 결의대회에선 대우차판매 조합원들을 지지하는 지역 시민사회, 정당 관계자들과 금속노조 조합원 40여명이 모여 '정리해고 반대'와 '부실부패 경영진 퇴진', '회사분할 워크아웃 반대' 등을 촉구했다. 그러나 경찰과 사측 용역직원들의 출입 통제로 대우차판매 조합원과 참가자들은 정문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집회를 진행했다.

김진필 전국금속노동조합 서울지부 대우자동차판매지회 지회장은 "2년 전 이곳에서 40일 점거농성을 마치고 쓸쓸히 걸어나온 때가 기억난다"면서 "그때 이미 경영진은 회사가 무너질 것을 느끼고 있었던 듯하다"라고 말했다.

김 지회장은 "착잡한 심정으로 회사를 나온 이후 유동성 위기와 부도 등 위기를 겪었다"면서 "회사는 이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뒤집어 씌우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차를 팔라면 팔았고, 손님을 만나라면 만났는데 우리가 뭘 잘못했느냐"면서 "경영진이 건설사업에 돈을 쏟아부어 회사를 이렇게 만들어놓고 책임지는 사람은 따로 있느냐"라고 말했다.

김 지회장은 "끝까지 가겠다"라고 말했다.


4층 회의실 앞. 점거농성 중인 조합원들

이용규 민주노동당 인천시당 위원장은 "회사가 어려워지면 경영 정상화를 위해 노동자와 함게 노력해야 하는데 해고 한다는 것은 맞지 않다"면서 "일터를 지키는 건 회사를 지키는 일이기에, 대우차판매 조합원들은 회사를 지키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몇 명의 연대 발언이 이어지고 집회가 끝나자 경찰과 용역직원들은 봉쇄했던 정문을 개방했다.

안으로 들어서니 몇몇 조합원이 모닥불을 피고 지키고 서 있다. 어제 밤에도 사측 용역업체 직원들과 약간의 몸싸움이 있었던 터라 대여섯명의 조합원들이 드럼통에 땔감을 넣으며 정문을 주시한다. 정문 한켠에는 사측 용역업체 직원 두세명이 경비로 서고 있다.

조합원들이 위치한 A동 입구에도 용역업체나 경찰이 들어올 것을 대비해 두명이 경계를 서고 있다. 그들은 임원실이 위치한 4층과 5층에 자리를 잡고 회의실과 복도를 점거했다. 


4층

4층엔 대표이사와 전무, 상무의 사무실이 있으며, 대회의실과 회의실이 위치해 있다. 회의실로 들어가는 엘리베이터 입구에는 열댓명의 조합원들이 모여 있다. 어제 이곳에서 밤을 보냈는지 일부는 바닥깔위에 침낭을 덮고 누워있거나 삼삼오오 모여 얘기를 하는 모습이다.

5층으로 올라가니 왼편으로 사장실이 있고 조합원들은 오른편 회의실에 자리를 잡았다. 회의실 바로 앞 사무실에는 유리 틈 사이로 근무중인 다른 직원들이 보인다. 조합원들의 건물 점거로 구내 식당은 폐쇄됐다는데 다른 직원들 때문인지 난방은 가동중이었다.

추위를 느끼지 못하는 온도에 회의실 안에는 나머지 조합원과 그들의 짐으로 가득 차 있다. 아직 정리도 다 마치지 못한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에 몇몇은 의자에서 눈을 붙이고 있다. 대부분은 3~4명씩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100여명의 조합원 중 가장 연장자라는 이규영씨는 "회사가 없어진다니 후배들 일자리를 지켜주기 위해 동참했다"고 한다.

"1991년 1월에 최우수사원 상을 받았죠. 그해 5월에 노조에 가입했단 이유로 해고당했어요. 그 뒤로도 두 번이나 더 해고당했죠. 약이 올랐어요. 부당했죠. 이번 해고까지 더하면 네 번째가 되겠네요. 회사가 일을 할 수 없도록 만들어요. 가정파괴범이죠. 나야 어차피 올해까지지만, 후배들은 직장을 잃어버리면 가정이 무너져요. 아내는 말렸지만, 혼자 빠져나가기도 그래서 오게 됐습니다."


5층 회의실에서 만난 이규영씨

30년 간 일했지만 5년이 넘게 회사 밖에서 복직투쟁으로 시간을 흘려보낸 이규영씨. 네 명의 자식 중 세 명은 아직도 대학생이란다. 동료들은 그가 지난 밤 바닥에 후배들을 눕히고 자신은 의자 위에서 쪼그려 잠을 잤다며 미안해한다.

전재환 민주노총 인천본부 본부장은 "1km 떨어진 곳에선 지엠대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56일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면서 "지엠대우가 비정규직을 대량으로 정리해고 하는 것과 경영진의 부실경영으로 워크아웃된 대우차판매는 똑같은 출발선상에 있다"라고 말했다.

전 본부장은 "지엠대우가 지엠코리아로, 시보레 브랜드를 들여오면서 비정규직 파견노동자들을 고용하고, 판매사원들을 정리해고하려 한다"면서 "모두 힘을 합쳐 투쟁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대우차판매지회측은 요구안이 수용될 때까지 점거농성을 풀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사측도 퇴거를 요청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형사상 책임도 묻겠다는 입장이어서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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