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 대목 실종 … "한숨만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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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 대목 실종 … "한숨만 나와요"
  • 이혜정
  • 승인 2011.02.01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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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한파·물가상승에 손님 '뚝' … 재래시장 상인들 '막막'


설 연휴를 앞둔 지난 30일 가좌시장.

취재 : 이혜정 기자

설 명절을 앞두고 손님맞이에 분주해야 할 인천지역 전통시장 상인들이 한숨만 내쉬고 있다. 구제역에 한파, 물가상승까지 겹쳐 시민들의 발길이 뚝 끊겼기 때문이다.

이달 들어선 인천시가 재래시장 상품권을 온누리 상품권으로 통합하고, 상품권을 현금 3만원 이상 구매하는 고객에게 3% 할인 혜택을 주는 등 전통시장 활성화와 상품권 유통량 증가에 힘을 쏟고 있지만, 정작 상인들은 체감을 하지 못하고 있다.

영하 10도에 매서운 칼바람까지 몰아치던 지난 30일 오후 3시. 가좌동 재래시장 상인들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손님을 기다리지만, 손님들은 거의 없다. 이곳에서 20년째 과일장사를 하고 있는 송수창(43)씨는 "몇년 전만 해도 설 명절이 되면 과일박스가 많이 나갔는데, 올해는 영 신통치 않다"면서 "한 달에 5~6번 오던 단골손님들도 한 번 올까 말까 할 정도로 손님이 줄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추워서 시장에 사람이 많지 않다"면서 "설 대목이라 기대하고 있었지만, 손님이 없으니 걱정이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연일 계속되는 한파와 때마침 창궐한 구제역은 그렇지 않아도 얼어붙은 소비자들의 지갑을 더욱 굳게 잠가 놓았다.


한적한 정육점 모습.

시장 안 정육점 앞. "어머니 한 번 둘러보고 가세요~ 엄청 싸다 엄청 싸. 돼지갈비 두 근 만원씩. 둘러보세요, 어머니."  큰소리를 치며 호객행위를 하고 있던 김종태(47)씨는 "구제역 때문에 물량이 1/3 수준으로 줄었는데, 돼지와 수입 쇠고기는 하루가 멀다 하게 오르고 있으니 매출이 반토막 났다"면서 "실질적인 구제역 피해자는 정육업자들"이라고 항변했다.

김씨는 "정부에서는 사육농가에 피해액을 지원해준다고 하지만, 우린 어디 하나 도와주는 곳도 없으니 죽을 맛"이라며 "이번 명절이 지나면 직원 3명 중 2명은 내보내야 할 판"이라고 하소연했다.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부평시장 상인들.

이날 오후 5시께. 부평시장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많은 물건을 좌판에 펼쳐놓고 상인들이 목청껏 "골라, 골라"를 외치는 풍경은 보이지 않는다. 상인들은 두툼한 점퍼 위에 오리털 파카를 껴입은 것도 모자라 털모자와 귀마개, 마스크 등으로 무장하고 삼삼오오 연탄불을 쬐며 손님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는 모습만 보였다.

상인들은 "언니 뭐 찾아요?' 싸게 줄게…. 이리 와봐요."를 외치며 지나가는 손님들을 붙잡는 데 여념이 없다.

기자가 다가가 말을 걸자, "인터뷰를 하면 장사 잘되게 해주는 거야? 대화할 시간 있으면 물건 하나라도 더 팔아야지 다른 데 가서 물어봐."라며 상인들은 한 손님이라도 더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11년동안 제수용품점을 운영하는 박정이(52)씨는 이렇게 장사가 안 된 것은 5년 만이라고 했다. 박씨는 "날씨가 너무 추워서 시장을 찾는 사람이 예년에 비해 별루 없다"면서 "더군다나 제수용품은 명절에 팔아야 하는데 손님이 없으니 장사가 될 리가 없다"라고 말했다. "설 연휴까지 이틀 남았으니 더 기다려봐야지"라며 박씨는 장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가게를 정리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설 대목이면 상인들이 오후 9시까지 문을 열고 장사를 했지만, 최근애는 손님이 너무 없어 오후 7시에 가게 문을 닫고 들어가는 상점들이 대부분이라고 박씨는 전했다.


 재래시장 상인들이 손님을 기다리며 난로가에 모여 있다.

31일 오후 2시께 찾은 남동구 구월동 모래내시장. 두커니 점포를 지키고 있는 상인들이 상당수다. 시장 초입에서 10년동안 과일상점을 운영하는 김홍천(38)씨를 만났다.  "추워서 인근 대형마트로 갔는지 아직 선물세트를 찾는 손님이 그리 많지 않네요." 김씨는 한 쪽에 쌓여 있는 사과와 배 선물세트를 보며 한숨을 지었다.

올 설에는 사과 한 박스 2만원~4만원, 배 한 박스 2만5천원~3만천원 선으로 예년 설 대목 과일 판매가격과 비슷한데도 손님들은 비싸다고 한다고 김씨는 말했다.

마침 과일을 사기 위해 온 김연옥(46)씨가 예년 같으면 설 명절을 준비하는 데 드는 비용은 60만원 선이었다고 말한다. 3대가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다른 가정에 비해 많이 든다고 했다. 그러나 올해는 100만원으로도 명절을 준비하는 데 부족하다고 했다. 

김씨는 "경기가 좋지 않아서 올해는 상여금도 못 받았는데, 과일과 야채 할 것 없이 물가는 오르고, 명절을 지내야 하니 안 살 수도 없다"면서 "날씨가 춥더라도 마트나 백화점보다 재래시장에서 물건을 좀 더 싸게 살 수 있어서 재래시장으로 왔다"라고 말했다.

그는 "플라스틱 박스에 든 사과 20kg 짜리가 지난해 설때만 해도 5만원이었는데, 이번 설엔 6만원으로 올랐다"면서 "올해는 예년에 3만~4만원 짜리 사과 선물세트 대신 1만~2만원대 생활용품 선물세트로 인사를 할 생각"이라고 했다.


지난 31일 구월동 모래내시장.

구제역 여파로 고향방문을 자제하는 분위기와 재래시장의 한적함,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물가 때문에 팔려는 상인이나 사려는 소비자 모두 애를 태우기는 마찬가지다. 간혹 시장을 둘러보던 손님들은 하나 같이 "물가가 엄청나게 올라 엄두를 못 내겠다. 이번 설 지내가 정말 힘들다."라며 발길을 돌린다.

업친 데 덮친 격으로 갑자기 눈이 내리자 시장을 둘러보던 손님들의 발걸음은 바삐 움직이고, 상인들은 '물건이 상할까봐' 비닐, 담요, 파라솔을 씌우기 바빴다.

그나마 점포를 소유한 상인은 낫다. 구월시장 인근 노점 상인들은 더 힘들어 보인다. 노상에서 야채를 파는 김연식(77)씨는 "물건이 안 팔려 손자들 세뱃돈도 못 줄 판"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요 며칠 날씨가 너무 추워서 손님도 없는데 눈까지 오니  설 대목 장사는 다했다. 장사도 안 되는데 날씨까지 추워 파는 것보다 얼어서 버리는 야채가 더 많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 31일 가좌시장에서 한 상인이 손님이 없어 일찌감치 점포를 정리하고 있다.

재래시장 활설화 위해 온누리상품권 통합

인천시는 이달 초 대형마트 입점과 온라인 쇼핑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전통시장의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온누리상품권을 통합해 발행했다. 그러나 정작 상인들은 체감을 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한 재래시장에서 만난  권모(58)씨의 하소연. "한파에 구제역으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려고 하지 않으니 올 설 대목 장사는 버렸다고 생각해요. 정부에서는 재래시장 살려주겠다고 온누리상품권을 통합 발행하고 한다고 하지만, 정작 시장에 유통되는 상품권은 그리 많지 않아요. 많이 발행만 하면 뭐합니까? 들어오지를 않는데요. 그나마 설과 추석 명절이 되면 상품권이 조금씩 들어오긴 하지만 그때 뿐이에요."

그는 "이번에 온누리상품권이 통합되고 나서 소비자들에게 할인 혜택을 준다고 하니 소비자들이 얼마나 사용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이전보다는 좀 나아지겠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인천시는 대형마트와 SSM(Super Super Market)이 증가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전통시장의 상권활성화를 위해 지난 2006년부터 재래시장상품권과 온누리상품권을 발행하고 있다. 

그러나 설과 추석 명절 대목에 잠깐일 뿐, 평상시에는 발행된 상품권을 사용하는 소비자들이 별로 없다고 상인들은 답답함을 호소한다.

인천시의 전통시장상품권 판매 및 유통 현황을 보면(2010년 11월말 기준)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총 255억원 어치를 발행했다. 이중 상품권 (명절과 평상시) 상품권 판매액은 249억5천700만원으로에 명절(설과 추석)에만 79%(197억8천900만원)에 이른다. 평상시에는 21%에 불과하다. 시가 재래시장 상품권 이용률을 높이기 위해 대목인 설과 추석을 전후로 유관기관을 비롯해 기업체, 시민단체 등의 협조를 얻어 판매실적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시는 일반 시민들의 상품권 구입률을 높이려고 현금으로 3만원 이상 구매하는 고객에게는 3% 할인 혜택을 주고, 상품권 환전 업무를 대행하는 시장별 상인회에는 최고 1%의 수수료 지원 혜택 등을 주는 전국형 온누리상품권으로 전환했다. 올해 목표는 명절(설과 추석 각각 20억)에 40억원과 평상시 10억원으로 총 50억원이다.

이 상품권은 중소기업청이 2009년 7월 출시해 인쇄와 유통, 수수료를 전적으로 지원하고 있으며, 서울과 제주도를 제외환 전국 지자체에서 유통되고 있다.

시 관계자는 "대형마트 입점 등으로 날로 쇠퇴하고 있는 전통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면서 "올해는 전통시장 시설 현대화 확충 뿐만 아니라 상인들의 자생력 향상을 위한 교육에도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달부터 통합된 온누리상품권은 상반기에 지역 내 새마을 금고 50개 지점에서 판매되고, 하반기부터는 농협 118개 지점과 새마을금고 50개 지점에서 판매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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