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이라는 이름의 야만
상태바
오만이라는 이름의 야만
  • 공주형
  • 승인 2011.03.21 1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성칼럼] 공주형 / 인천대 기초교육원 초빙교수


윌리엄 터너, <노예선> 혹은 <바다로 던져지는, 죽었거나 죽어가는 노예들, 몰려오는 태풍>,
캔버스에 유채, 1840년, 보스턴 미술관

태풍이 몰려온다. 붉게 타오르는 하늘과 시꺼멓게 뒤집힌 바다는 비극의 무대로 손상이 없다. 진노한 듯 요동치는 하늘과 바다 사이에서 위태로움이 널을 뛴다. 이제 곧 살아 있는 자들이 죽은 자와 죽어가는 자들을 바다에 던질 것이다. 이제 곧 갈매기와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바다에 버려진 이들을 덮칠 것이다.

'극적인 빛의 화가'로 불리는 영국 화가 윌리엄 터너(1775~1851)가 1940년 그린 <노예선>은 비단  감당할 수 없는 자연의 위력 앞에 무기력한 인간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바다로 던져지는, 죽었거나 죽어가는 노예들, 몰려오는 태풍>이라는 다른 제목을 가진 이 그림은 인간의 잔혹함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시간은 17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실은 배는 몇 달째 항해 중에 있었다. 노예선 안의 상황은 '살아 있는 짐'으로 보험 문건에 분류되어 있는 노예들에 맞춤한 열악하기 그지 없는 것이었으니, 노예선 안의 전염병은 예견된 일이었을지 모른다.
 
살아 있는 짐을 살아있는 상태로 영국으로 가져가는 게 임무였던 노예선 선장은 뜻밖의 결정을 한다. 죽은 노예와 죽을 것 같은 노예를 팔과 다리에 채운 수갑도 풀지 않은 채 식인 상어가 득실대는 바다 속으로 내던져 버리는 일이었다. 그렇게 해야 '잃어버린 짐'에 대해 배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노예선>은 1939년 출간된 토마스 클랙의『노예 거래 폐지의 역사』를 통해 이 사건을 접한 터너기 이듬해 그린 그림이었다.

'금잔디색의 하늘과 석류빛 바다의 지나친 광기', '정신 나간 화가', '재주는 훌륭하나 그것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상식을 벗어난 기행', '과거의 성취를 한 순간에 무너뜨린', '바보 같은 실험'. 인간에 대한 인간의 만행을 고발한 그림에 대한 당대의 반응은 싸늘했다.

대영제국은 1933년 이미 통과된 노예 폐지 법안에 대해 자랑스러워하고 있었고, 그럼에도 여전히 성행하고 있는 노예무역의 실상을 국민들은 거짓이라 믿고 싶었다. 역사의 진실과 화가의 진심은 왜곡되었고, 언론은 그것을 부추겼다. 대영제국의 명예를 걸고.

바다 건너 일본에서 악몽 같은 소식이 속속 도착한다. 믿을 수 없는 것은 급작스럽게 닥친 이웃나라의 비극이기도 하지만, 절망스러운 것은 대재앙 언저리에 머무는 태극 생수, 하나님의 경고, 반사 이익과 같은 단어들이기도 하다.
 
생명을 보험금과 맞바꾼 <노예선>의 잔인함을 야만이라 손가락질하며 문명인을 자처하지만, 정작 남의 불행 앞에서 나의 잇속을 셈하는 우리는 정말 문명인일까.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속 열대인에게 문명인이란 전염병을 퍼뜨리는 의사, 하나의 신을 강요하는 선교사, 동물과 사람 사냥에 열중하는 휴머니스트에 불과했듯이 우리 역시 오만이라는 이름의 야만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