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자라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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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자라는 여행
  • 은옥주
  • 승인 2019.12.04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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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치료 가족의 세상살이]
(91) 할머니와 손자의 2박3일 - 은옥주 / 공감심리상담연구소 소장

 

올해는 손자와 둘만의 여행을 시작한 것이 큰 즐거움 이었다. 태어 난지 5년 밖에 안된 손자는 처음 1박 2일 여행을 계획할 때 조금 긴장하는 듯 했고, 나도 아이 엄마 아빠도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이제는 부모와 떨어져 할머니와 단 둘이 여행에 익숙해져 좋아한다.

11월에는 예산, 서산, 태안 일대를 2박 3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아이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마다 물어서 운전하랴 대답하랴 참 바빴다. 먼 길이라 지루할까봐 고속도로 휴게소마다 들러서 맛있는 것도 사먹고 여행지도를 얻어서 살펴 보는 재미도 쏠솔했다. 추사 김정희 고택에서는 곳곳에 걸린 추사체를 유치원에서 배운 것들만 골라내어 ‘석 삼(三)’, 칼 도(刀)‘, ’날 일(日)‘ 큰 소리로 읽으며 자랑스러워 했다.

잘 정돈된 묘소를 보고는 죽음에 대해 궁금해 했다.

“김정희 선생님이 죽었어?”

“응 돌아가셨어.”

“그럼 할머니도 죽어? 나도 죽어?”

아이는 삶과 죽음의 문제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고 나는 가능한한 감정을 배재한채 대답하려고 노력했다.

 

김정희 고택
김정희 고택

 

내친김에 덕산의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도 들렀다. 이해하기 좋게 잘 정리된 기념관을 천천히 둘러보던 아이는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를 궁금해 했다. 이순신 장군이 일본을 무찔렀는데 왜 또 일본이 우리나라를 빼앗았는지 아이는 이해할 수 없는 듯 했다.

“일본이 왜 우리나라를 먹었어?”

“일본 사람들은 다 나쁜 사람들이야?”

나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가능하면 있는 그대로의 역사적 사실을 말해주려고 애를 썼다. 조그만 꼬마에게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를 설명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아이는 도시락 폭탄이나 물통 폭탄을 살펴보며 갑자기 고문당하고 죽어가는 윤봉기 의사가 안타까운 듯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로봇 이야기를 꺼냈다.

“할머니, 아이언맨이 나타나서 무찔러 버리면 되는데. 아이언맨은 다 이겨요”

눈을 빛내며 아이다운 응원을 보냈다.

방문객들이 남긴 메시지가 가득 붙어 있는 곳에서 자기도 한자 적는다며 책상 앞에 앉아 한참이나 가만히 끄적였다.

“뭐해?”하고 물으니 “고민하고 있어요”하고 머리를 갸우뚱하더니 엎드려 정성을 다해 그림도 그리고 글씨도 썼다.

 

윤봉길 기념관에서
윤봉길 기념관에서

 

윤봉길 기념관에서
윤봉길 기념관에서

 

아이의 조그만 머릿 속에 나라에 대한 사랑이 자리잡고 있는 듯해서 마음이 찡했다.

어둠이 내리는 수덕사에서 산채비빔밥을 먹고 갈대가 흔들리는 천리포 수목원에서 숨바꼭질을 했다.

 

갈대숲에서
갈대숲에서

 

물웅덩이에서 돌팔매질을 하며 동그랗게 물결이 번져가는 것을 즐기고 해미읍성 넓은 성안에서 가오리 연을 날리며 신나게 놀았다.

 

 

만리포 해수욕장
만리포 해수욕장

 

만리포 해수욕장 넓은 모래 사장에서 두꺼비 집을 짓고 밀물이 밀려오기 시작하자 방파제를 쌓았다. 첫 번째 방파제는 파도가 삼켜버리자 두 번째 세 번째 방파제를 쌓으며 아이는 자연 속에서 지치지도 않고 놀았다.

같이 뛰어놀다가 지친 사람은 오히려 나였다. 아이를 들쳐업고 ‘둥개둥개’하며 어르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 사이에 커서 뒤뚱거리며 따라가는 내가 안쓰러워 기다려 주는 작고 멋진 꼬마가 되었다.

펜션에서 매일 저녁 지도를 보며 우리들이 왔던 길로 짚어보더니 제법 멋진 우리나라 지도를 그려내었다. 얼마전에 갔던 강원도를 기억해내고 태백산맥을 그릴 땐 마음이 뿌듯했다.

 

 

아이의 마음 속에 아름다운 내 나라가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으면 좋겠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중독의 폐혜가 심각하여 걱정이 되는 요즘이다. 어린 아기들이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아이의 뇌가 미처 발달되기도 전에 스마트폰에 노출되면 좌뇌와 우뇌가 균형있게 발달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중독된 뇌는 일반적인 자극에는 반응하지 않고 강렬한 자극에만 반응하는 ‘팝콘 브레인’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자연에서 노는 즐거움을 알게 해주면 조그만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의 가상 세계에만 빠져 있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들도 있다. 내년부터는 한창 일하느라 바쁜 딸과 사위를 대신하여 아이와 같이 아름다운 우리나라를 찾아가는 역사여행을 계획해 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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