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증과 ADHD, 명남이의 반으로 기억되는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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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증과 ADHD, 명남이의 반으로 기억되는 2019년
  • 최광일
  • 승인 2019.12.04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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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 애덜이야기]
제80화 - 이해하고, 성장하고, 행복하자 - 최광일 / 교사

 

2019학년 3월을 엊그제 시작했는데, 어느 덧 12월이다. 시간은 흐름이 아니라 공간 이동 같다. 3월의 공간이 12월의 공간으로 순간 이동하여, 삶의 흔적이 가물가물하다. 만남의 낯섦이 아직도 남았는데 헤어질 준비한다. 그럼에도 2019년을 10년 후에 바라보면 김명남(가명)의 반으로 기억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는 특수아동이다. 2018학년 까지는 특수아동을 담임하면 승진점수가 부여되었다. 일부 선생님이 승진 점수를 생각하고 특수 아동을 가르치곤 했다. 올해부터 점수가 폐지되어 그의 담임이 되었다. 큰 뜻보다는 여러 아이들과 만나면서 내가 성장하고 싶었다. 그러나 성장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명남이는 자폐증과 ADHD 성향이 있다. 다른 학생들에게 신체적이나 물리적인 피해를 전혀 주지 않았으나 대화는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폐는 친구들이나 선생님과 정의 오고감을 막았고, ADHD는 낯섦에서 오는 블편함을 초래했다. 선생님으로서잘 해주어야 한다는 당위나 마음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당위는 현실화해야 하고, 관계는 아프면서 깊어져야 했다. 그러나 초기에 나는 한계 상황이 되자 숨기려 하였고, 숨김은 자연스럽게 불안과 좌절을 낳았다.

명남이에게 어깨를 토닥거리거나 머리를 쓰다드며 주면서 가까이 다가서고자 했다. 아이는 폭력으로 신고한다고 반응했다. '내가 그의 슬픔을 이해하지 못하고 성급하게 다가갔구나'라는 반성보다는 당혹스럽고 이상하게 느껴졌다.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 잘못된 방향은 아이 쪽을 향했다. 그의 잘못이 아니라 다름인데. 잘못은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경솔하게 행동한 선생님에게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과 마음이 통했는지, 40일 만인 410일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무심하게 반응했다. 2019학년도 최고의 순간이였다.

선생님과 학생이 가까워졌고 아이는 밝아졌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 더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과 학생은 관심과 애정을 갖고 익숙해지면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아이 행동 변화는 아이 내면 깊이까지 들어가야 해서, 교사와 학생의 교육적 관계를 넘어선다. 또한 명남이를 바라보는 학생들의 시선도 한결같지 않다. 많은 학생은 친구로서 친절하게 도와주지만, 일부는 불편함을 드러낸다.

처음에 명남이 행동을 부드럽게 제지하고자 했다. 아이가 행동을 고치면, 그의 미래 생활과 반 아이들과의 관계와 불만이 줄어들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 행동은 고쳐지지 않았고 부드러운 감정은 점점 사라졌다.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 무엇을 해야 할까?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할까? 스스로 질문하고 답했으나, 같은 질문에 같은 대답만 반복되었다. 왜 그럴까? 질문은 하지 않고 답만 찾았기 때문이다.‘어떻게’, ‘무엇’, ‘어디서가 아니라 를 물어야 했다.

왜 명남이는 쉼없이 이야기하고 돌아다닐까?부터 묻고, 행동을 관찰해야 했다. 아이를 살피니 이해할 수 있는 단서들이 보였다. 명남이는 아침 독서나 평가할 때에 이야기하고, 모둠 토론이나 활동이 있을 때 조용하거나 돌아다닌다. 조용해야 할 상황에서 떠들고,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면 돌아다닌다. 마음껏 움직이고 떠들 수 있는 체육이나 놀이 시간에 얌전하게 책만 읽는다. 친해지고 싶은 친구와 앉으면 말수가 많고 커진다. 한 사람이 행동을 지적했을 때보다 여러 사람이 부탁했을 때 잠시 행동을 자제한다. 등등

명남이는 내가 여기에 있음을 친구나 선생님에게 간절하게 알리고자 우리를 불렀다. 행동의 원인은 모르지만, 그는 인정받고 싶었다.“내가 있다고 간절하게 부르는데, 선생님은 어설프게 바꾸려고 했으니 좌절할 수밖에 없다. 아이 행동을 교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름에 답하고, 그것을 교실 상황에 적응하도록 해야 했다. 침묵을 강요하지 않고 학급 공동체 속에서 해결해야 했다. 그런 과정 속에 명남이는 친구들과 살아가는 방식을, 다른 학생은 나와 다른 친구를 이해한다. 이해할 수 없는 아이들도 나오리라, 그들에게 이해할 경험이라도 제공해야 한다.

명남이는 아직도 쉼없이 이야기하면서 돌아다니고, 선생임은 잔소리를 한다. 그러나 잔소리는 교정보다 부름에 대한 응답이고, 일부 불만을 표현하는 학생들에게 명남이뿐만 아니라 너희들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표시다. 그러면서 너와 나, 우리는 함께 살아가고, 선생님은 이해하고 성장하면서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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