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 멈춰 돌아보는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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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 멈춰 돌아보는 12월
  • 서원영
  • 승인 2019.12.18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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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화 교사상 - 서원영 / 작전초교 교사

 

 

12월은 마법 같은 힘이 있다.

늘 앞만 보며 뛰어가다가도 이때가 되면 한 번은 진지하게 뒤를 돌아보게 하는 그런 힘 말이다.

어김없이 12월이 됐고, 올 해도 뒤를 돌아본다.

1월부터 12월까지의 큰일들이 주마등처럼은 아니고 천천히 복기하듯 지나가다가 문득 꽤 먼 곳으로 시선이 갔다.

난 교사 잘 하고 있나?’

17년 전부터 짚어봐야 하는 질문이 떠올랐으니 11개월 전에서 멀어도 꽤 멀리 가버렸다.

 

이왕 간 김에 한 번 되짚어보자 생각했다.

 

처음 발령난 때로 돌아가보기 전에 가까운 작년부터 살펴보고 가야겠다.

작년에 학교에 온 교육실습생-경인교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물어본 질문이다.

마음에 두고 있는 교사상 중에 이렇게 되고 싶다는 롤모델 선생님이 있는가?’

아니면

내가 최소한 저런 선생님은 되지 말아야지 하는 반대급부 선생님이 있는가?’

 

나에게 하고 싶은 질문을 교대 학생들에게 했던 것이다. 사실 나는 처음 교사가 될 때 후자쪽이었다. 딱히 존경하는 교사상은 없었고, ‘절대 저런 교사는 되지 말자며 이를 악물던 대상은 몇 있었다.

오죽하면 발령 초기에 목표가 좋은 선생님은 못돼도, 나쁜 선생님은 되지 말자!’였다.

-당시 개봉한 영화에 나온 유명한 대사 중 하나인 우리 사람은 되기 힘들어도 괴물은 되지 맙시다.’에서 따온 것이다.-

부정적인 목표의 장점은 최소한 나쁜 사람은 안 된다는 거다. 근데, 그게 끝이다. 나쁜 사람이 안 되는 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그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아마, 닮고 싶은 혹은 되고 싶은 교사상이 없이 그렇게 최소한의 목표로만 살아왔다면 나는 그저 딱 나쁘지 않은 교사 정도로만 살면서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행인건 교사가 되고 나서 정말 좋은 선생님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옆 반에서, 같은 학년에서, 그리고 같은 학교에서 배울 것이 너무 많은 선배교사들을 만나면서 내게도 롤모델이란 것이 생겼다.

학급운영은 이 선생님처럼, 교육철학은 최 선생님처럼, 수업준비는 박 선생님처럼, 학년운영은 김 선생님처럼.

배울 점이 많은 분들을 너무 많이 만나다보니 그 안에서 가장 배우고 싶은 것들을 세분해서 뽑아낼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자양분으로 지금껏 버텨오고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덕에 지금은 목표가 바뀌었다.

나를 보고 나같은 선생님이 되는 꿈을 꾸는 학생이 생기는 한 해 되기.’

가 목표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모든 애들이 교사를 꿈꾸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어린 시절의 나처럼 선생님을 부정적으로만 기억하지는 않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돌아보니 참 운이 좋은 교사로 살고 있었다. 내가 갈 길을 먼저 걸어가면서 내게 길을 제시해주는 사람을 1명이 아닌 여러 명 만난다는게 얼마나 큰 행운인가!

어느덧 나도 24살 신규가 아닌 누군가에게 내가 걸어온 길을 보여줘야 하는 선배교사의 나이로 접어들고 있는 요즘이다.

내년부터는 누군가에게 길이 되어 줄 수 있는 교사로 살아가기!’를 새로운 목표로 추가해야겠다.

17년의 세월 간 받아온 행운을 조금씩이나마 나눠주며 17년을 더 살다보면 2036년쯤에 다시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봤을 때 조금은 덜 부끄럽지 않을까 조심스레 행복회로를 돌려본다.

 

, 위에 교육실습생들에게 던진 질문의 결과다. (당시 총 16명 정도의 학생이 있었다.)

 

되고 싶은 선생님이 있는 학생들이 절 반 이상,

저렇게 되지 말자는 선생님이 있다는 학생이 20%정도.

특별한 롤모델도 없고, 피하고 싶은 교사상도 없는 학생이 나머지 25%정도였다.

 

나 같은 학창시절을 보낸 학생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내 예상과는 달라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그런 선생님들을 만난 그들의 학창시절이 부러웠고, 그런 선생님들 때문에 선생님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 선순환의 구조가 아름다워 보였다.

부디 출발부터 좋은 목표가 있는 저 실습생들이 교단에 섰을 때는 나보다 더 운이 좋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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