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들 자유, 그리고 성장이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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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들 자유, 그리고 성장이란 것.
  • 이정숙
  • 승인 2019.12.31 0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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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화 - 이정숙 / 구산초교 교사, 인천교육연구소

 

 

경력이 쌓일수록 해마다 맞게 되는 아이들의 모습도 다르게 다가온다. 같은 2학년도 작년과 올해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었다. 그 다름이 당연하긴 하지만 샘물에게는 새로움보다는 점점 여리고 약한 모습들로 다가 온다. 아이들이 더 잘 울고, 더 잘 싸우고, 더 겁쟁이가 되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웅성되면서,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수연이가 샘물에게 왔다.

 

수연: 선생님 보건실 갈래요.

샘물: , 어디 다쳤니?

수연: 여기가 아파요.(허리를 가리킨다)

아이들: 아까 민중이가 밀었어요.

샘물: 민중이가 밀어서 다쳤어? 얼마나 세게 밀었길래. (눈이 그렁그렁한 민중이를 쳐다 본다.)

수연: ..... 아니요. 안 밀었어요. 그냥 허리가 좀 아파요.

샘물: 그래? (다른 아이들을 보며) 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민중이가 밀었대?

아이: 아니 그냥, 민중이랑 있다가 울길래.....

샘물: 허참! 그래서 함부로 말하는 거 아니랬지. 민중이가 얼마나 속상하겠니? (다시 수연이를 보며) 언제부터 그래? 어디서 다쳤어?

수연: 조금 ...아까부터.... 앉아 있는데 허리가 아픈 것 같아요.

샘물: ? 아픈 건 아니고 아픈 것 같아? !

수연: .......(허리를 꾹꾹 누른다.)

샘물: 그래, 이건 보건실 간다고 나을 것 같지 않은데.... 많이 아프니?

수연: 아니요.

샘물: 그럼 좀 앉아 있어 볼까? 계속 아프면 그 때 다시 말해 보는 건 어때.

수연: , 그럴게요.(돌아서 신나게 뛰어 들어간다.)

 

하루에 수도 없이 통증(?)을 호소하는 아이들. 공부가 하기 싫어서이기도 하지만 뭔가 불편함을 참지 못하는 아이들이다. 자기의 불편함을 혹은 존재감을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 통증을 내세운다. 하루에도 몇 번씩 호소를 하는 아림이는 이번엔 손등을 내 보이며 다쳤다고 보건실을 간단다.

 

샘물: 어디가 다친 데지?

아림: 여기요.

샘물: 안 보이는데?

아림: 여기요. 아까 종이에 베였어요.

샘물: 그렇구나, 아프겠네. 피 났었니?

아림: 아니요.

샘물: 그럼?

아림: 자세히 보면 여기 ...

샘물: (잘 보이지는 않지만 약간 붉은 자국이 미세하게 있음) ! 소독해야 할 정도는 아닌 것 같지만... 소독 밴드 붙여줄게. 계속 아프면 다음 시간에 보건실에 가보자.

아림: .

 

샘물이 뭔가 처치를 해 주어야 아이들은 안심을 한다. 그래서 샘물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의사가 된다. 고맙게도 아이들은 금방 회복하고 깔깔대며 죽을 듯 아파했던 표정이 없어진다. 대단한 의술이다.

 

피구는 초등학교 2학년이 하기에는 좀 어려운 게임이다. 항상 놀이시간은 조금씩 다친 아이들이 울고불고해서 게임에 재미가 없었다. 공을 무서워하는 아이들을 위해 말랑말랑한 공을 준비했고 얼굴을 맞히게 되면 점수를 세지 않기로 규칙을 정했다. 그래도 종종 머리를 맞게 되는 아이가 있고 아이들은 겁에 질려 맞기도 전에 울곤 했다. 여자아이들은 지레 겁을 먹고 피구게임을 싫어하거나 아예 아프다고 참여하지 않기도 했다. 샘물도 그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굳이 놀이시간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다른 반과 몇 번의 패배와 무승부를 경험하면서 경쟁이 붙다 보니 제법 공도 잘 피하고 요령도 붙어 가기 시작했다. 어느 날 늘 울던 현지가 얼굴에 또 하고 맞았다. 소리도 대단했다. 샘물은 걱정이 되어서 얼른 달려갔다. 그런데 웬일인지 현지는 게임 밖으로 나오지도 않고 공을 피해 다니며 게임을 계속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놀란 샘물이 현지에게 괜찮니?” 하고 말하자 현지가 달려오는 샘물의 표정을 보고는 얼른 제지하는 표정으로 손을 들며 괜찮아요라고 말한다. 샘물이 다시 묻자 참을만해요하며 요리조리 공을 피하고 있었다. 샘물은 머쓱해져 현지를 쳐다봤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참 아무렇지 않게 게임에 참여했다.

 

샘물은 몇 해 전 가르쳤던 선일이가 떠올랐다. 당시 4학년이었던 선일이는 두꺼운 안경을 끼고 늘 책만 읽고 있다. 삼십분이나 되는 중간놀이시간에도 다른 아이들이 딱치지기나 카드놀이를 하거나 아예 운동장으로 나가 축구를 하고 공놀이를 해도 꼼짝없이 앉아 책을 읽는다. 보다 못해 나가 놀 것을 권해도 한 번 씩 웃더니 미동도 않는다. 수영장엘 가면 물을 바라볼 뿐 풀장 안으로 선뜻 들어가지도 못한다. 할머니들이 계신 스파에 조용히 앉아있거나 성격이 비슷한 친구 용목이와 수영장 밖에서 이야기 하고 있을 뿐이었다. 상담하면서 선일이 행동에 대한 몇 가지 단서를 포착했었다. 선일이 어머니는 아이가 다칠까봐 집 안에서만 하는 활동을 주로 시켰다고 했다. 자전거를 타고 싶다고 했는데 위험해서 못하게 했다고 한다. 선일 어머니 말을 듣고 아이들 성장에 뛰노는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조심스레 건넸던 기억을 떠올렸다. 지나치게 안전함을 강조하느라 통제된 아이들. 멍들고 다치는 것을 두려워하느라 어느새 아이들은 겁쟁이가 되어간다. 아이들에게는 멍들 자유가 필요하다. 다소의 위험들을 만나고, 이를 극복하고 그 과정 속에 용기를 배우고, 협동심이나 도전 정신을 키울 수 있는 건강한 위험들이 소중하다. 어린 시절 넘어지고 까지고 다치는 그런 건강한 위험들이 우리들을 성장시켰었음을 상기할 일이다.

 

겨울 방학이 되었다. 아이들을 하나씩 안아주며 방학의 긴 이별을 아쉬워했다. 다 보내고 샘물은 교실 정리를 하고 있는데 늘 수줍게 있던 수연이가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집에 안 가고 교실 뒤를 맴돈다.

샘물: 수연이 왜 아직 뭐가 남았니? 안 가져 간 거 있어?

수연: 아뇨. (갑자기 샘물 곁으로 다가온다) 선생님 앞으로는 제가 더 나아진 모습으로 잘 할게요.

샘물: (울컥, 눈물 조금) 아냐. 수연아, 너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그런 말을 하다니) 수연이가 많이 컸구나. 수연이는 늘 잘하고 있었어. 방학 잘 보내고.

수연: 네 선생님도 잘 보내세요.

 

아무 말도 안 하고 빤히 쳐다보기만 했던 수연이의 첫 모습. 조그만 지적사항에도 엎드려 울고 놀이시간에도 가만히 앉아만 있던 아이. 어머니가 다리가 아프니까 과격한 활동하지 않도록 당부했지만 친구들과 친해지고 말이 많아지면서 점심시간이면 경도(경찰과 도둑잡기)’를 하느라 얼굴이 빨갛도록 신나게 운동장을 뛰어다녔던 아이. 이제야 친해지려니 헤어질 때가 되었다. 친해진 곳에는 이렇게 한 뼘 성장한 모습도 있었다. 유쾌하게 지저귀며 방학과 함께 교실 문을 뻥 차고 나가고 있는 아이들의 성장을 보면서 혼자 시원섭섭함이 다가온다. 샘물은 올해도 짝사랑을 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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