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의 성은 왜 억압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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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의 성은 왜 억압되는가
  • 전영우
  • 승인 2020.01.02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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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우의 미디어읽기] (10) 영화 '억압받는 다수'로 성교육하다 직위해제된 교사
프랑스 단편 영화 '억압받는 다수'
프랑스 단편 영화 '억압받는 다수'

 

행복하냐 물어보면 행복하다고 답할 청소년이 과연 몇 명이나 될지 모르겠다. 한국의 청소년은 과도한 중압감에 짓눌려 있기에 얼마나 행복하다고 느낄지, 행복을 느낄 시간이 있을지 의문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학원으로 내몰리고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에서는 대학 입시라는 목표를 위해 한눈을 팔 시간도 없는 것이 이 땅의 청소년들이다.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금기시되는 것들이 하나 둘이 아니지만, 그중에서 가장 금기시되고 억압받는 것이 성이 아닐까 한다. 우리 청소년들에게 성은 금단의 열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년을 위한 성교육은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실시하고 있는데, 성교육도 종종 문제가 된다. 광주에서 중학교 교사가 성평등을 교육하다 직위해제되었다는 기사가 있었다. 교사가 성 윤리 수업을 하면서 프랑스 단편 영화 <억압받는 다수>를 보여줬는데 이 영화에 불편함을 느낀 학생들이 신고를 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영화를 직접 봤는데, 딱히 문제가 될 내용은 없었다. 성차별을 당하는 여성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남녀 역할이 바뀐 가상의 상황을 묘사했을 뿐이다. 영화를 제작한 푸리아 감독도 학생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제가 촬영한 이미지들은 불평등한 우리 사회의 거울일 뿐”이라며 “잘못된 싸움을 하지 말아 달라. 성차별에 대해 알려주려던 사람과 싸워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라고 했다.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된 것은, 한국 청소년들의 성이 너무 억압받은 나머지 지나치게 민감하고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되어 생긴 일이 아닌가 싶다. 한국 청소년들에게 있어서 성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절대 넘어서는 안될 금기이며, 따라서 성에 대한 편견을 갖게 되었기에 나타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아닐까.

 

청소년들의 첫 성경험 연령은 서구권이 대략 17~18살인데 비해 한국은 무려 22세에 가깝다. 사실 놀라운 일도 아닌 것이,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성에 대한 보수적인 태도와 억압적인 분위기를 봤을 때 충분히 짐작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한국 청소년들은 성에 관한 한 서구 청소년들과 비교하여 지진아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다. 성에 대한 이렇게 완고하고 고루한 태도는 한국이 세계 최하위권의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는 원인에 일조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인간의 성적 능력은 10대 즉 청소년기에 정점에 이른다. 남성의 경우 중, 고등학생 때 성욕이 최고조에 이르고 20대에 접어들며 서서히 감소하기 시작한다. 그러니 우리 청소년들은 신체적으로 성욕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에 부당한 억압을 받으며 생활하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연스러운 생리적 욕구를 억압하면 당연히 부작용이 생기게 마련이다.

 

우리는 왜 청소년의 성을 억압하게 되었을까? 어린 나이에 무책임한 임신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공부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물론 성에 대해 기본적으로 매우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가 일조했을 것이고. 무엇보다 청소년은 통제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사회적 인식이 가장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성뿐만이 아니라 청소년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너무 많다. 교복만 해도 통제를 용이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이다. 우리 청소년들은 지켜야 할 것이 너무 많고 금지된 것도 너무 많다.

 

그런데 이렇듯 성에 대해 보수적이고 엄격한 사회이지만, 그 이면을 들춰보면 한국만큼 음성적으로 성이 방종한 나라도 드물다. 성매매는 엄연히 불법이지만 다양한 종류의 성매매업소는 어디에서건 쉽게 찾을 수 있다. 인터넷을 통해 성매매를 알선한 조직이 검거되었다는 보도는 너무 자주 접하고 있다. 매매춘이 합법인 유럽 일부 국가는 차치하고라도 엄격한 청교도 윤리를 강조하는 미국을 보더라도 특정 지역에서만 성매매가 이루어진다. 반면 한국은 표면적으로는 성에 엄격하지만 매매춘 산업은 오히려 더 성업 중이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회 구석구석까지 음성적으로 퍼져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자연스러운 인간 본능인 성을 억압하니 음성적 매매춘이 기승을 부리는 것은 필연적 결과이다.

 

억압한다고 해결되지 않는 매매춘 문제처럼, 청소년의 성도 무작정 억압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며 오히려 광주 중학교에서 발생한 성교육 문제처럼 엉뚱한 부작용을 가져온다. 자연스러운 신체적 현상이고 종족 번식을 위해 필요한 성욕인데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무작정 통제하고 억압하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일이다. 성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청소년에게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를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입시 위주의 교육에 몰두하게 만드는 학벌주의를 타파할 방법을 모색하고 해결책이 제시되는 2020년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청소년이 행복해야 건강한 사회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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