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신뢰를 어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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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신뢰를 어찌 할까?
  • 박병상
  • 승인 2011.04.1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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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in 칼럼] 박병상 /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방사능 비'를 걱정한 초등학생들이 우비를 입고 우산을 쓰고 학교로 가고 있다.

최근 한 금융회사가 해커에게 고객의 주소와 주민등록번호는 물론이고 비밀번호와 신용정보까지 유출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회견장에 나온 그 회사의 사장은 고객의 신뢰를 잃은 사고를 머리 숙여 사죄하면서 책임질 일이 있다면 책임지겠다고 밝혔지만, 잠재 고객들은 정보를 해킹당하고도 두 달이나 몰랐던 회사에 자신의 돈을 선뜻 맡기고 싶지 않을 것이다. 금이나 현금다발이 아닌 컴퓨터의 숫자로 거래하는 요즘세상에서 금융회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신뢰가 아닌가.

후쿠시마 핵발전소 방사능 유출에 대한 시민들의 걱정이 높아지자, 여당 대표가 작심한 듯 “방사능 불안감을 조성하는 불순세력”이 있다고 군사독재 시절이나 등장했을 ‘색깔론’을 내세워 세상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일본산 생선을 비롯해 전국 95군데의 방사선량을 측정해도 문제가 전혀 없었다면서 원내총회장에서 “사회불안을 조성하고 국가를 전복시킬 생각을 가지고 행동하는 불순세력에 대해서는 당당히 맞서 제압해야 한다!”고 포문을 연 그는 초등학교 휴교를 요구한 ‘일본 대지진핵사고 피해 지원정책 전환을 위한 공동행동’과 전교조, 그리고 학교장 재량으로 휴교가 가능하게 한 경기도 교육감을 좌파로 몰아붙였다고 언론은 건조하게 보도했다. 결코 선정적이지 않았다.

국민들을 패닉상태로 몰아갔다면서 언론의 선정성을 비난한 같은 정당의 정책위의장이 “정수장에 비닐을 덮어서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호들갑을 떤다”면서 “10년 내내 목욕하고 마시고 물 뒤집어써도 아무런 해가 없을” 정도의 방사선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폈는데, 한 네티즌은 그 정당 책임자들의 으름장에 울분을 표했다. 가족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퇴근한 저에게 모든 옷을 다 벗으라더니 얼마 입지 않았던 외투며 바지까지 몽땅 세탁기에 집어넣고 가차없이 빨아버리”는 자신의 아내를 불순세력으로 제압할 겐가 분노한 것이다. 다른 네티즌은 자식 키우는 민중의 당연한 걱정을 불순세력의 소행의 결과로 몰고가는 그 정당의 대표를 방사능보다 무서운 존재라며 비꼬았는데, 제압할 것인가.

군홧발로 짓누르다 돈으로 언론을 매수한 군사정권의 시절을 그리워한 것인지, 여당의 정책위의장은 언론의 보도 태도를 문제 삼았지만, 언론을 제압하기에 앞서 그는 정부와 관계당국의 태도는 어떠했는지 유권자의 눈높이에서 직시해야 했다. 편서풍만 되뇌며 안전을 강변하다 외국에서 다른 발표가 나올 때마다 번복을 거듭하지 않았던가. 정부의 무사안일을 비판하는 건 제4부라 일컫는 언론의 당연한 책무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방사능 물질이 공기와 빗물에 검출되자 담당 부처의 책임자는 “하루 2리터의 물을 2년 반 마실 경우 엑스레이 한 번 촬영할 때 받는 정도에 불과”하다고 언론 앞에서 말했지만 시민들은 신뢰를 잃은 정부의 주장을 미더워하기 어렵다. 많은 보건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걱정해야 할 일은 일시적인 방사선량이 아니지 않은가.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방사성물질이 누출되는 한 방사능은 대기나 바다에 농축될 수밖에 없다는 건 엄연한 과학적 사실이다. 따라서 시민의 신뢰를 염두에 두는 정부라면 누적되는 방사선량을 알려주며 대책을 세워야 했다.

정보를 독점하는 정부는 시민을 홍보 대상이나 가르쳐주어야 하는 무지한 존재로 취급하려는지 알 수 없지만, 결코 불합리하지 않은 대조적인 과학 정보가 언론매체나 인터넷으로 즉각 알려지는 요즘, 대부분의 시민들은 정부가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순진하거나 단순하지 않다. 시민들을 바보 취급하는 순간 정치권은 감당하기 어려운 역풍을 맞을 수 있다. 비록 언론을 통해 정부가 발표하는 정보만 들을 수 있을지라도, 엑스레이를 함부로 받지 않으려 하는 시민들은 정부가 밝히지 않은 사실을 안다. 기계로 검출한 방사선의 양이 극히 미량이라 해도 걱정거리라는 것을. 엑스레이처럼 몸을 투과하는 방사선과 달리 요오드나 세슘과 같은 방사성 물질이 몸에 극미량이라도 흡수될 경우 개인의 건강이 염려된다고 의학 전문가는 밝히지 않았던가. 반감기가 30년인 세슘을 보자. 근육이나 장기의 조직에 박힌 상태에서 방사능을 배출할 경우 암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방사성 물질이 호흡이나 음식을 거쳐 체내에 흡수될 확률은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복구되는데 걸리는 시간이 늘수록 커진다.

우리나라 여당 대표가 제압해야한다고 보는 불순세력은 누구인가. 목숨을 내놓고 수습하려 애쓰는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직원들인가. 자료를 감추다 일본의 언론과 시민들의 비난을 받은 일본 동경전력 책임자인가. 극미량의 방사성 물질도 위험하다고 밝힌 의학 전문가인가. 그런 사실을 감히 보도한 우리 언론인가. 엑스레이 선량의 수천분의1 이하의 방사능이 섞인 빗물을 조금 맞았다고 다짜고짜 겉옷을 몽땅 세탁기에 넣은 이 땅의 아내들인가. 아니면 언론을 보고 정부의 무사안일을 비판한 네티즌인가. 이번 여당 책임자들의 불순세력 발언으로 으스스한 군사독재 시절을 기억해낸 시민들은 유권자다. 자식을 키우는 유권자에 으름장 놓은 정치인을 시민들은 기억할 게 틀림없다.

시민이 정부의 발표 내용을 미더워하려 해도 그리 못하는 건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방사능에 국한하는 게 아니다. 등록금 반값을 공약으로 지지를 호소했던 후보가 정권을 잡은 뒤 공약 이행을 위한 신뢰할만한 정책을 펴지 않았다는 걸 분명히 기억하는 시민들은 밀양과 부산 사이에 갈등을 유발시킨 뒤 백지화한 동남권신공항에 대한 약속위반만을 잊을 리 없다. 이동통신비의 인하를 약속했던 책임자가 우리나라의 통신비가 참 싸다고 말한 사실도 기억할 게 틀림없는 시민들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방사능 유출에 대한 정부의 발표를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렵다. 운하가 아니라 4대강을 살리려는 사업이라고 강변하는 정부의 홍보는 어떤가. 지구온난화 대책이라는 주장, 홍수와 가뭄의 대책이라는 주장, 생태계를 보전한다는 주장, 과연 신뢰할 수 있나. 아무리 제압하려고해도 4대강의 흐름을 가로막는 사업의 문제를 끊임없이 지적하는 시민단체와 전문가의 목소리는 결코 묻히지 않는다. 시민들은 장마와 국지성호우가 얼마나 무섭게 쏟아지는가에 따라 올해든 내년이든, 현 정부의 신뢰를 다시 물을 가능성이 높다.

노력하기에 따라 잃은 돈은 금방 복구할 수 있고 한 번 잃은 건강도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회복될 수 있지만 무너진 신뢰는 여간해서 되찾기 어렵다고 흔히 말한다. 해킹당한 금융회사는 뼈를 깎는 반성과 노력을 고객에게 보여준다면 신뢰를 회복할 수 있겠지만 정부, 아니 정권은 어떨까. 유권자의 기억은 쉽게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은 요즘세상에 없다. 무너진 신뢰를 진정 회복하고 싶다면 정책 결정에 앞선 정부는 시민들의 불편부당한 생각을 투명하게 묻는 자세가 필요할 텐데, 요즘 정부와 여당에서 보여주는 행태는 백년하청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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