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피아니스트의 외로운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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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피아니스트의 외로운 선택”
  • 한인경
  • 승인 2020.02.07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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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경의 씨네공간] (42) 『피아니스트의 전설, The Legend Of 1900』

 

 

<한인경의 씨네공간>2016년부터 그해 주목받은또는 다시 주목하는영화들을 선정하여 평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193월부터는 미추홀구의 예술영화관 '영화공간주안'과 한인경 작가와의 협약 하에 <인천in>에 게재합니다. '영화공간주안'이 상영하는 예술영화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는 기회를 나눕니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

피아니스트의 전설, The Legend Of 1900

 

천재 피아니스트의 외로운 선택

 

 

개 봉 : 2020. 01. 01 재개봉(121/이탈리아), 제작 1998

감 독 : 쥬세페 토르나토레

: 팀 로스, 프루이트 테일러 빈스, 멜라니 티에레

장 르 : 드라마, 판타지

등 급 : 15세 관람가

 

출처 : 영화『피아니스트의 전설』
출처 : 영화『피아니스트의 전설』

 

 1.

 

2020 새해가 열리면서 개봉한 영화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 스토리의 시작도 1월 첫날이다. 20세기가 시작하는 1900. 유럽의 노동자들을 싣고 기회의 땅이었던 신대륙 미국으로 향한 여객선 버지니아호, 일등석 선실에 버려진 갓난아기, 그 이후로 배 안에서만 오로지 생활했고, 삶의 마감까지 배와 함께한 천재 피아니스트 나인틴헌드레드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

 

이 영화는 두 가지 점에서 개봉 전부터 화제를 끌었다.

 

첫째는 쥬세페 토르나토레(1956) 엔니오 모리코네(1928)라는 세계적 거장들의 만남이다. ‘베스트 오퍼’(2013), ‘말레나’(2000), ‘언노운 우먼’(2006), 그리고 최고의 마스터 피스 시네마 천국’(1988)까지 쥬세페 감독. 그의 스토리를 풀어가는 저력은 관객들에게 오로지 스크린에 집중하게 만든다. 거기에 금상첨화로 엔니오 모리코네라는 영화음악계에서 그야말로 살아있는 전설과 손을 잡았다. 위 쥬세페 감독의 영화 외에도 원스 어픈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삽입곡 ‘Childhood Memories’, 참으로 강렬했다. 예고 없이 심장을 두드리듯 뿜어 나오는 팬 플루트의 애잔한 선율은 잊지 못할 것 같다. 영화 미션가브리엘의 오보에는 또 어떠한가. 두 사람의 필모그래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출처 : 영화『피아니스트의 전설』
출처 : 영화『피아니스트의 전설』

 

두 번째는 OST. 전설의 피아니스트가 주인공인 영화다. OST를 빼놓고 영화를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두 장면을 들고 싶다. 그의 유일했던 절친 맥스를 옆에 앉히고 파고가 심해 출렁거리는 선실에서 고정 장치까지 풀고 ‘Magic Waltz’를 연주한다. 또 하나의 장면으로는 실존 인물인 재즈의 창시자라는 젤리 롤 모턴과의 피아노 배틀을 들고 싶다. 물론 대역이 연주했다고 하지만, 두 배우들의 연주 연기도 전혀 감상에 방해되지 않았다. 피아노 연주자가 아닌 배우들이었기에 더한층 박수를 보낸다. 상큼한 'The Crave'와 건반 위에서 춤추는 듯한 ‘The Finger Breaker’, 엔딩 크레디트에서 들을 수 있는 Lost Boys Calling'까지 빠져보시길 권해드린다.

 

재미있는 장면으로는 나인틴헌드레드가 혼신의 힘을 다한 연주 후에 그랜드 피아노 스트링에 담뱃불을 붙이는 장면이 나온다. 그 현에 닿은 담배는 불이 붙는다. 담뱃불이 붙을 정도로 달궈진 그의 연주에 경청하던 사람들도 그가 이겼음을 환호로 답한다.

 

 

2.

 

상자 속 아기.

석탄실 흑인 노동자 대니 부드맨에 의해 발견되었고, T.D.라는 회사의 레몬 상자에 눕혀 있었고, 그 해가 1900. 이러한 사연의 끈으로 이 아가의 이름은 대니 부드맨 T.D. 레몬 나인틴헌드레드라는 긴 이름을 갖게 된다. 아버지가 된 대니는 아이를 서류나 비자 문제 등으로 뺏길까 두려워 배 안에서 숨겨서 키운다. 나인틴헌드레드가 10살도 못돼서 아버지 대니 부드맨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나인틴헌드레드는 다시 혼자가 된다. 8, 피아노를 발견하고, 자석에 끌리듯 건반에 앉아 연주를 하게 되고, 그 이후로 소년 ‘1900’에게는 남다른 재능이 있음이 서서히 알려지게 된다.

 

출처 : 영화『피아니스트의 전설』
출처 : 영화『피아니스트의 전설』

 

성인이 된 나인틴헌드레드는 절친이 된 트럼펫 주자 맥스와 버지니아호 악단에서 연주를 하면서 지낸다.

 

그의 천재성은 빠르게 퍼졌고 육지에서 활동한다면 부와 명예가 기다릴 텐데도, 내리려 하지 않는다. 배가 생활 터전의 전부였던 그가 하선 결심을 딱 한 번 하긴 했었다.

우연히 나눴던 대화, 평생 땅만 알았던, 모든 것을 잃었고, 딸 하나만 남았는데, 그 아이를 위해서 자신의 운명과 싸우고 있다는 한 남자. 그 남자가 처음으로 보게 된 바다에 대한 회상과 그가 들었다는 바다의 목소리는 마치 미지의 해방구처럼 가슴 깊이 남아있었다.

 

, 바다의 목소리는

바보 같은 놈아, 인생은 무한한 거야. 알아듣겠어?”

바다의 목소리’. 정작 그는 평생을 바다에서 살고 있는데 말이다.

 

나인틴헌드레드는

뉴욕에 닿으면 내릴 거야. 육지에서 바다를 보려고. 바다에서는 안 들리는 목소리가 들린데, 인생은 무한다고 말해준대, 그러고 나면 인생도 다르게 보인데.”

 

불안함, 두려움을 누르고 트랩으로 내리면서 연인도 만나고 다른 인생을 그렸지만 육지가 자신에게 너무 큰 배라는 생각에 그만 되돌아 다시 배로 오른다.

 

맥스는 계약 기간이 끝나면서 배에서 내리게 되고, 세월이 흐른 뒤, 그들은 안타까운 결정을 눈앞에 두고 생의 마지막 대면을 한다. 마치 타이타닉호가 연상되는 버지니아호는 폭파 해체를 앞두고 있고, 배 안으로 폭파용으로 다이너마이트가 계속 옮겨지고 있다. 관계자는 배 안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했다고는 하지만, 배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려 하지 않는 친구의 성향을 알기에, 하루의 말미를 받고 친구를 찾아 배 안으로 들어간다. 나인틴헌드레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들었던 사랑의 테마 곡이 녹음된 레코드를 튼다. 폐허 같은 내부 어느 한구석에서 나인틴헌드레드는 모습을 나타내고, 맥스의 절절한 설득과 나인틴헌드레드의 바깥세상에 대한 두려움은 최고의 긴장을 준다.

 

 

도시를 봤어. 끝이 안 보이더군, 자넨 도시의 끝을 본 적이 있어? 정말 내리려고 했어. 피아노 건반은 시작과 끝이 있지, 어느 피아노나 건반은 88개야. 그건 무섭지가 않아. 무서운 건 세상이야. 건반들로 만드는 음악은 무한하지, 그건 견딜만해. 좋아. 하지만 막 배에서 내리려고 했을 때 수백만 개의 건반이 보였어. 너무 많아서 절대로 어떻게 해 볼 수 없을 것 같은 수백만 개의 건반, 그걸로는 연주할 수가 없어. 피아노를 잘 못 선택한 거지. 그건 신이나 가능한 거지.”

 

맥스는 절대 꺾일 것 같지 않은 친구의 의지를 읽고 눈물 범벅이 된 얼굴로 배에서 내리고, 그 배는 바다 한가운데서 폭파되고 만다.

 

 

3.

 

영화 포스터
영화 포스터

 

 

영화는 시종 맥스가 관찰자, 화자로 친구 나인틴헌드레드를 회상하면서 진행된다.

내가 맥스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배 밖의 사람들의 도움을 청해서 강제로라도 데리고 나갔을까? 실화에 근거한 서사구조가 아니고 알레산드로 바리코의 노베첸토 Novecento’라는 모노 극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실제 상황이라면?

 

, 유한한 공간인 배가 전부였던 그는 인생은 무한하다는 바다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지만, , 앞날에 변화를 그렸지만, 즉 하선을 시도했었지만 포기했고, 죽음을 선택했다.

 

수백만 개의 건반으로 보였다는 육지는 자신이 절대로 만들 수 없는 음악으로 다가왔고 그 두려움, 섬뜩함은 숨통을 조여 왔을 듯. 육지 사람이 된 후 어느 날 해변에 서서 문득 듣게 될 것 같았다는 바다의 목소리를 붙잡고 있었던 나인틴헌드레드. 마지막 순간까지 인생은 무한하다는 바다로부터의 메시지를 들을 수 없었지만, 친구도 연인도 모두 잊힐 것이라 자신을 가두며 살았지만, 실현 가능한 그만의 무한한 음악을 선택했다. 이십 세기 초라는 시대적 배경에 재즈라는 장르가 유행했다. 재즈, 필자의 얕은 지식으로 자유로움, 쏘울 soul, 즉흥성, 계속 이어짐 등의 단어가 떠오른다. 이 천재 피아니스트의 영혼과도 잘 매치가 되는 장르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의 음악은 세상에서 빛을 보지는 못했고, 그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연주가였다. 그의 고뇌에 찬 선택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생각게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전부인 음악과 함께 했을 때만 존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새해, 어제와 오늘이 뭐 완전히 다른 틀 속에서 돌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큰 경계를 넘고 새날을 맞이했다.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뭔가 희망적으로 달라지고 싶어 하는 시기다. 새로운 각오와 결심으로 그 어느 때보다 무장이 단단할 것 같다.

 

늘 생각하지만, 인생은 결과보다는 과정이다. 내가 살아가는, 나를 살게 하는, 살고 싶게 하는, 살아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유한한 인생길, 아름다운 과정을 밟으며 미지의 무한을 만들어 가는 수많은 우리의 이웃을 그려본다. 한동안 바다를 마주하면 천재 피아니스트의 외로운 선택이 보이고, 들리고 그려질 것 같다.

한인경/시인·작가·인천in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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