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쇠무릎 식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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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쇠무릎 식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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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2.24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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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이충하 -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회원

 

동화 작가 김향이님의 나는 쇠무릎이야.”를 읽고 느낀 바가 있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꽃밭에 쇠무릎은 볼품없는 외향 때문에 늘 다른 꽃들의 따돌림을 받는다. 어느 날 손녀와 함께 찾아온 할머니 자신을 발견하고 반색하며 말씀하신다.

이것은 쇠무릎이며 사람들의 병을 낫게 해주는 약초이다!”

이 말을 듣고서야 쇠무릎은 자기가 세상에 중요한 존재임을 알게 된다는 이야기다.

 

   나는 산야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쇠무릎입니다.

   울퉁불퉁 생김도 쇠무릎처럼 못생긴 것이

   꽃도 꽃답게 피우지 못하니 모두들 쳐다보지도 않네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다른 꽃들에게 놀림을 받던 쇠무릎은 이 세상이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하지만 자신이 사람의 병을 낫게 해주는 약초라는 사실을 알고 자신의 쓸모를 알게 되는 과정이 내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지난해 여름 발을 헛디뎌 3정도의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를 겪었다. 허리의 3번 요추 한쪽이 찌그러져 복원 수술을 하고 한 달 후에는 일상에 복귀할 수 있었다. 필자의 나이가 78세로 노령이라 할 수 있는데 그 정도 상처로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이 기적 같다. 지난날들을 돌이켜보니 어렸을 적부터 어머니가 해주신 쇠무릎 식혜가 떠오른다.

 

쇠무릎은 여러해살이로 예로부터 관절치료에 자주 쓰였다고 알려져 있다. 외할머니께서 무릎이 아파 여러 해 동안 고생하시다가 쇠무릎 식혜를 해 드시고 좋아지셨다 하며 시집가는 딸에게 아프기 전에 예방하라고 당부하셨다 한다. 어머니는 길을 가다 쇠무릎을 보면 지나치지 않고 뿌리를 캐 모아 말려 두었다가 우리 전통 식혜에 쇠무릎 달인 물을 가미한 쇠무릎 식혜를 해주셨다. 물론 나만을 위해 만드신 것은 아니고 아버지께서 약주를 못 하시니 약주 대신 쇠무릎 식혜를 자주 만들어 주셨다. 어머니도 드시고 우리 남매들에게도 뼈를 튼튼하게 해주는 좋은 약이라 하며 아낌없이 나누어 주셨다. 그 시절 명절 때가 아니고 평소에 식혜를 맛보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다. 먹을 식량도 부족한데 식혜를 만들어 먹을 수 없었다.

 

어머니께서는 건강해야 일을 잘할 수 있다.” 하시며 먹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으셨다. 대신 우리에게는 늘 일을 열심히 하라 이르셨다. ‘어느 날 당신이 내 이름 불러주신다면 나는 쇠무릎처럼 당신에게로 가서 건강과 행복을 선물해 드리렵니다.’

우리 남매들은 거역하지 않고 아버지 어머니 일손을 열심히 도와드렸다. 그날은 쇠무릎 식혜를 한 사발씩 보너스로 나누어 주셨다. 우리 집에는 늘 웃음이 떠날 날이 없이 즐거웠고 이웃사람들도 웃음소리가 떠날 날이 없는 우리 집을 부러워하였다.

 

초등학교 2학년 때로 기억 된다. 6.25 사변을 겪으며 온 나라 국민들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시련을 겪고 있을 때다. 우리 마을은 산골 외진 곳에 자리 잡고 있어 피난 간 사람도 없고 피난 온 사람도 없이 밀물과 썰물이 지나간 뒤 갯벌처럼 조용히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더욱이 우리 집에는 아버님은 50세에 가깝고 내 위로 누님들만 셋이라 징집 문제에도 걱정이 없었다.

밖에서 뛰어 놀다가 배도 고프고 목이 말라 식혜 생각이 났다. 집에 와 부엌의 항아리를 열어보니 식혜 항아리다. 한 그릇 퍼먹고 맛있어 다시 한 그릇 더 먹으려는데 어머님이 뒤에 서 계셔 깜짝 놀랐다. 어머니께서 안방에 계시다가 인기척을 듣고 나오신 것이다. 야단치실 줄 알았는데 먹고 싶으면 어머니나 누나들에게 달래서 먹어야지 사내녀석이 부엌을 들락거리면 졸장부밖에 안 된다고 하시며 한 그릇 더 떠주셨다.

 

어머니가 당부하신 말씀으로 시대가 몇 번을 변하였는데 이제까지도 주방에 얼씬거리지 못하는 어줍잖은 늙은이가 되어 아내의 핀잔을 가끔씩 듣는다. 돌이켜 생각하면 다른 아이들은 추위와 굶주림으로 생과사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고생하고 있을 때 밥투정이나 하며 소년시대를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사회에 나가 생존경쟁을 하면서 인내심의 임계점에 섰을 때는 견디어내지 못하고 한발먼저 물러서는 쓰라림을 맛보기도 한다. 그래도 어머니의 작은 지혜가 나의 평생 건강을 돌보아 주었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아내역시 어머니의 말씀을 귀담아듣고 봄과 가을 두 차례 경동시장 약재상에 가서 쇠무릎이 가미된 한약을 지어 온다. 쇠무릎 식혜는 우리 집 식구들과 늘 함께하며 친해졌고 건강을 지켜주었다.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이웃마을에까지 부지런하기로 소문이 날만큼 쉴 사이 없이 일을 많이 하셨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허리나 무릎이 아파 고생하지 않고 큰 병 없이 건강하게 70수를 누리셨다. 우리 팔 남매 중 나보다 열 살 위인 큰 누님께서 73세에 돌아가시고는 나머지 칠 남매는 지금도 무릎이나 허리가 아파 고생하는 사람 없이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그것은 당연히 어머니의 사랑이 담긴 쇠무릎 식혜 덕분이다.

오늘은 어머니의 사랑과 지혜가 그리움이 되어 마음이 아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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