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경고, 원전 의존이냐 불편한 삶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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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경고, 원전 의존이냐 불편한 삶이냐
  • 박영일
  • 승인 2011.04.19 17: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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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시평] 박영일 교수 /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지난 3월 11일 발생한 일본 대지진의 참혹한 모습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 사고가 발생하고 한 달이 지났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그 참사의 진상을 가늠할 수 없고 안정화 작업은 착수 조차 못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발표한 원전사고등급도 당초 4등급에서 한 등급씩 올라가기 시작하여 최고 7등급이 되었다. 이는 ‘방사선 물질이 대량으로 방출되어 나라 경계를 넘어 광범위한 지역 생태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정도’의 대형 사고를 가리킨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이 악화됨에 따라 그 동안 설마 하면서 막연하게 생각하던 원전 재앙이 얼마나 무서운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방사성 물질이 계속 누출되고 있음에도 접근이나 통제가 불가능하여 수습이 불확실하고 가능하더라도 몇 십 년이 걸릴 것이라는 무서운 비보만이 연일 날아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원전은 인간에게 생명 자체를 대가로 요구하면서 ‘원전 의존이냐, 폐기냐’를 묻고 있다. 인류는 이미 원전이 빚은 끔찍한 참상을 몇 차례 겪었다. 특히 1986년 체르노빌 사고는 충격적이었다. 수천 명이 방사선 피폭으로 숨졌고 기형아 출산, 각종 암이 발병하여 수십만이 병마에 시달리다 죽어가는 고통을 겪고 있다. 유럽 전역의 토양, 물, 바다가 오염되고 생명산업인 농축수산업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그러나 교훈은 오래 가지 못했다. 지구온난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유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자 원전이 화석연료의 대체에너지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그 배후에는 이윤만을 추구하고 생명을 경시하는 원전산업과 이에 동원되어 부역하는 정치권력, 테크노크라트, 지식인과 언론의 오류가 존재한다. 그들이 원전 위험을 평가하는 이른바 ’확률적 평가‘에는 처음부터 핵연료가 녹아내리는 노심융해는 고려될 여지가 없었다. 그 결과 우리 뇌리에는 어느새 원전이 값싸고 안전한 ‘청정에너지’로 둔갑해 자리 잡았다. 가시지 않은 일말의 불안감은 현대문명의 총아인 전기를 확보하기 위한 ‘필요악’으로 불식되었고 관리만 잘 하면 안전하다고 믿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후쿠시마 원전에서 바로 그 노심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원전을 정당화했던 안전기준도 무용지물로 밝혀졌다. 바로 이 때문에 세계 각국에서 원전 중지와 전면 포기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시민의 요구에 부응하여 각국 정부도 원자력 이용에 대한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다. 
  
한국 사회의 불감증

원전 사고에 대한 세계적 각성과는 대조적으로 한국 사회는 불감증에 빠져 있다.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인 한국 정부와 주류 언론은 이웃나라의 원전사고를 먼 산 불구경하듯 방관하면서 끄덕도 하지 않고 있다. 정부 여당은 사고 직후에는 ‘편서풍이 부니’ 안심하라‘는 정도였고 한반도에서 방사능이 검출되고 불안이 확산되자 불순세력의 선동 탓이라고 매도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술 더 뜨고 있다. 무슨 배짱인지 ‘한국 원전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큰소리치고 있다. 아무리 평소에 국민의 안전이나 생명에는 아랑곳도 하지 않고 돈만 된다면 무엇이라도 하는 정권이라지만 후쿠시마원전 주변 주민의 피난지역이 반경 30km에서 확대되고 있는 처참한 현실을 보면서도 안전 타령을 하고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심지어 원전을 치적 홍보로 삼을 정도니 말이다. 원전 르네상스를 부르짖으면서 원전 의존도를 현재의 31%에서 59%까지 높이겠다는 계획에 변함이 없다고 큰 소리치고 있다. 

시민들 사이에서도 방사능 검출 소식에 당황하고 허둥댈 뿐 진지한 문제의식을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기득권 세력, 특히 정부 여당, 원전 자본과 이에 부역하는 전문가들과 언론의 ‘값싸고 깨끗한 청정에너지 원전’이라는 왜곡된 사고프레임에 세뇌된 때문일 것이다. 그들에게 국민의 생명과 안전, 후세의 건강을 걱정하는 최소한의 양식이나마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한국에는 21개 원전이 가동 중에 있다. 세계 5위의 원전의존대국으로 원전이 전력사용량의 31%를 담당하고 있다. 세계 전체 평균 14%의 두 배에 달하고 일본의 30%보다도 높다. 그들은 한국은 일본과 달리 지진이나 해일(쓰나미) 위험이 없어 안전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연재해는 언제 어떻게 발생할지 아무도 모른다. 

더구나 한국은 국토가 협소하여 원전의 밀접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다. 일단 원전 사고가 터졌다하면 피할 곳도 없이 다 죽어가야 할 처지다. 또한 지진만 위험한 게 아니다. 관리 소홀이나 노후화로 무슨 일이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른다. 한국 사회는 평범한 안전사고에도 예방을 위한 제도와 관리·운영에서 허술하다. 비행기 추락과 같은 인재가 끊이지 않는 사회임을 직시해야 한다. 

더욱 주목할 점은 남북 간 첨예한 군사적 대립이다. 더구나 이명박 정부는 북한과 교류협력을 거부하고 남북대결을 부추기고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정부 여당에게 더욱 놀라울 점은 그렇게 열렬하게 북한의 도발과 공격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면서도 이를 원전 사고와 결부시키지 않고 있는 무의식이다. 동시에, 분쟁지역에 대한 무분별한 파병을 늘리고 있어 이제 테러공격도 배제할 수 없는 형편이다.    
  
에너지사용을 효율화하자 

진정성이라곤 없이 임시변통에 패거리 이익만 챙기는 무능한 정부에게 기대할 것이 거의 없다. 이제 국민이 나서 직접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내야 할 때다. 에너지정책의 근본을 다시 묻고 정부에 원전 의존을 중단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우리 자신도 새로운 각오로 임해야 한다. 에너지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을 전환하지 않는 한, 원전 포기로 인한 발전 수요가 다시 화석연료로 쏠릴 것이다. 세계 10대 에너지소비대국이라는 한국의 위치를 감안하면 이는 가뜩이나 치솟는 유가에 불을 붙일 뿐만 아니라 지구온난화를 부채질할 것이다.  

에너지정책의 기본방향을 공급확대에서 수요억제로 전환해야 한다. 공급에서도 화석연료, 원전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풍력‧태양광 등 재생가능에너지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그렇지만 현재의 기술적, 경제적 조건에서 원전을 전면 대체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장기적 목표를 설정하여 재생가능에너지개발에 부단하게 최선을 다하되 근본적인 대책은 에너지 사용의 효율화와 소비억제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실제로 한국의 에너지소비효율은 OECD 제국에서 최하위권이다. 일본의 1/3수준이다. 더욱이 수치상의 성장에만 집착하는 현 정부에 들어와서 에너지효율은 더욱 악화되었다. 경제성장률 1%를 위한 에너지소비증가율인 에너지탄성치가 지난 3년 사이에 0.8에서 1.15로 급격하게 악화됐다. 수익자부담의 원칙이 관철되도록 산업용 에너지요금을 현실화하여 에너지다소비형 산업구조와 생산기술을 개선해야 한다. 

시민의 일상생활에서도 에너지소비를 줄여야 한다. 기본적으로 좀 더 불편하고, 좀 더 가난하고, 좀 더 느린 삶을 감수해야 한다. 덜 쓰고 덜 먹고 덜 버리는 삶을 각오해야 한다. 전기료를 비롯한 에너지가격을 더 부담하고 세금도 더 내자. 좀 더 춥고, 좀 더 덥게 지낼 것을 각오하자. 
   
부족한 인간에게 완벽함이란 있을 수 없다. 원전에 의존하는 한, 언젠가는 사고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문제는 언제, 어디서 일어나느냐에 있다. 한번 터졌다하면 회복불능의 원전 위험이 상존하는 현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좀 더 불편한 삶도 감수해야 할 것이다. 후쿠시만 원전 사고가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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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 2011-04-16 09:48:02
에너지 소비를 정말 줄여야 하겠습니다. 불편하더라도. 특히 전라남도에 있는 원자력 발전소에 문제가 생기면 편서풍이 불면서 전라남도와 경상남도 모두가 폐허가 될 지도 모를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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