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이 오면 바지락 씻는 소리를
상태바
이별이 오면 바지락 씻는 소리를
  • 정민나
  • 승인 2020.03.26 06: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민나의 시마을]
이별이 오면 - 문태준
사진 출처 = 바다림

 

이별이 오면

                    - 문태준

 

이별이 오면 누구든 나에게 바지락 씻는 소리를 후련하게 들려주었으면

바짓단을 걷어 올리고 엉덩이를 들썩들썩하면서

바지락과 바지락을 맞비벼 치대듯이 우악스럽게

바지락 씻는 소리를 들려주었으면

그러면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입을 틀어막고 구석구석 안 아픈 데가 없겠지

가장 아픈 데가 깔깔하고 깔깔한 그 바지락 씻는 소리를 마지막까지 듣겠지

오늘은 누가 나에게 이별이 되고 나는 또 개흙눈이 되어서

 

 

이 시에서 화자는 이별이 오면 왜 하필 바지락 씻는 소리를 들려주었으면 할까?

바지락과 바지락을 맞비벼 치대면 껄끄럽고 불협화음의 거센 소리가 들린다. 마음이 복잡한 화자는 눈을 질끈 감고시끄러운 그 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누군가와 이별을 한 화자 자신의 마음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같다. 그의 심정은 현재 개흙 묻은 바지락처럼 텁텁하다. 그것을 털어내는 화자의 심정은 가장 아픈 데가 깔깔하다. 하지만 그 바지락 씻는 소리를 끝까지 듣노라면 바지락을 캐어 개흙이 잔뜩 묻은 바지락을 종태기에 담아, 시퍼런 바닷물에 씻고 있는 섬사람들을 떠올리면 묘하게 이별의 아픔이 덜해진다.

 

섬사람들은 바닷물에 바지락을 씻는다. 그들은 개흙이 잔뜩 묻어 끈적거리는 검은 바지락을 덜그럭 거리며 요란하게 씻는다. 거친 생활력에 빗대면 유약한 사랑의 아픔은 온데간데 없어진다. “바짓단을 걷어 올리고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자신의 삶에 열중하는 사람들은 보기만 해도 싱싱하고 힘찬 느낌이 든다. 처음에는 무심히 바지락 씻는 소리를 들었는데 점점 그 소리가 달리 들리기 시작했다면 그 이유는 뭘까?

 

바지락은 구석구석 여러 번 씻어야 그 검은 개흙이 다 씻겨 나간다. 개흙이 씻겨 나가는 모습만큼 바지락 씻는 소리 또한 후련하게 들린다. 이별의 아픔을 씻어낸 것은 건강한 생활력을 대면한 이후의 일이다. 하지만 인간의 삶에서 이별 뒤에 아름다운 사랑은 또 온다.

 

여기서 비우면 채우고 채우면 다시 비우는 생의 비의가 드러난다. 하여 슬픈 이별이 올 때 화자는 누구라도 자신에게 바지락 씻는 소리를 들려주기를 바란다. 순환하는 삶의 한가운데에서 화자는 참 현명한 생각을 하였다.

 

시인 정민나

 

사진출처 = 바다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