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에 머무는 온정의 봄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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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에 머무는 온정의 봄 햇살
  • 이진우
  • 승인 2020.04.06 09:09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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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의 동네 걸음]
(4) 햇빛은 미소가 되어 동네 길을 덮는다

열우물마을은 주로 북향이고  비탈진 곳에 자리하여 겨울철엔 햇빛이 잘 들지 않는다. 소방도로 옆 마을은 야구장처럼 둘러쌓인 곳이며 따라서 북서향도 있고 북동향도 있다. 북향의 비탈진 곳은 겨울철 햇빛이 부족하여 눈이 오면 골목길이 얼어 있어 연탄재를 부셔 놓았다가 녹는 바람에 질척이기도 했다. 더구나 마을은 난방을 연탄으로만 사용하는데 이 연탄마저 배달을 하지 않는다. 석유보일러이든 연탄보일러이든 산동네에는 배달이 어렵다는 맹점이 있어서 차가 오르지 못하는 골목의 많은 집들은 연탄봉사 활동이 있어  생기는 연탄으로 겨우살이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인지 마을 어르신들께선 봄이 반갑고 어서 추운 3월도 가고 연탄을 때는 4월도 어서 가기를 바란다. 십정동 208-6번지 목련나무집의 목련꽃이 다 떨어져서야 한시름 놓으시고 옛 행운할인유통 건물 뒷쪽의 마을주차장 양지바른 곳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 봄 햇살을 얼굴과 어깨, 무릎에 머물게 하시며 미소를 지으셨다.

열우물풍경 /63*91cm pen on paper, 2013
열우물풍경 /63*91cm pen on paper, 2013

겨울이 지나고 봄이 채 오지 않은 마을의 은행나무는 가지만 드러내고 있다. 
햇살은 어느새  맑고 부드러우며 따스하게 마을을 비춘다. 
골목길에서 만난 고양이에게 안녕하고 인사를 하니 귀찮은 듯 어슬렁 거리며 모른채 한다. 

열우물풍경 /60*73cm pen on paper, 2017
열우물풍경 /60*73cm pen on paper, 2017

십정동201-27호, 이 집의 노랑과 연두는 공공미술 열우물길프로젝트 일환이다.  집주인에게 이렇게 색을 칠하겠노라고 디자인 스케치를 보여주고 동의를 받아 여럿이 함께 색칠하였다. 이 집 앞에는 플라스틱 드럼통을 자른 화분과 고무통 화분이 있어 대추나무와 라일락이 자라고 있었고 냉장고 화분도 있었다. 드럼통을 잘라 만든 화분은 땅이 깊어서 대추나무가 자랄 정도이고 폐냉장고는 문짝을 떼어내고 누이고 나서 흙을 채우면 훌륭한 밭이 되었다. 어느해인가 가을에 이 냉장고 밭에는 김장용 배추가 튼실하게 잘 자라고 있음을 본적이 있다. 지금은 아직 봄이 지나지 않아서 채소를 심지 않았다. 

열우물마을의 집들은 마당이 있어도 작거나 없는게 대다수여서 주택 정원이 집문을 나와 길가 골목에 자리하고 있다. 꽃을 심으면 정원이고 채소를 심으면 밭이된다. 어느집 냉장고에는 양귀비가 이쁘게 자랐는데 사람들이 오고가니 주인이 뽑아 버렸다. 

동네길 /18*26cm pen on paper, 2016
동네길 /18*26cm pen on paper, 2016

상정로25번길 25 (십정동201-39호) 앞에서 길 따라 내려다 본 동네길에는 봄을 지나는 시절이 초록색을 덧 올리고 있다. 고무통 여러 개에는 토란이 자라고 있고 천사의 나팔도 키를 올리고 있다. 햇살은 먹을게 생기면 나눠먹는 이웃의 마음같은 미소로 동네길을 덮고 있다. 지난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이하며 동네 어르신들을 감싸 주었던 온정의 햇살이 마을을 가득 채우면 이 세상 어디에도 부럽지 않을 이야기들이 빛으로 색으로 담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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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연희 2020-09-29 12:41:19
이야기 때문에 그림이 생생히 살아나네요. 골목길 고무통에는 토란이 자랍니다.^^

이하얀 2020-04-08 21:27:48
십정동에서 지내온 사람으로써 추억이 방울방울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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