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하고 만만한 공간, 불편함을 상쇄하는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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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하고 만만한 공간, 불편함을 상쇄하는 매력
  • 위원석
  • 승인 2020.04.17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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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책방, 그 너머의 기록]
(4) '딸기책방', 간절한 마음 담아낸 점포 창고 - 위원석 / '딸기책방' 책방지기

 

<작은책방, 그 너머의 기록>은 인천과 강화 지역에서 작은 책방을 꾸려가는 사람들이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요즘 세상에 책방을 열어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텐데, 그들은 왜 굳이 작은책방을 열고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문화를 말하는지 질펀하게 수다떨려고 합니다. 좁은 골목길에서 우연히 맞닥뜨린 작은책방, 그 길모퉁이에서 책방 사람들이 들려주는 소소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책방시점, 책방산책, 우공책방, 딸기책방, 나비날다책방 순서로 일주일에 한 번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딸기책방 전경
딸기책방 전경

댁의 동네는 안녕하십니까?

따스한 봄기운과 함께 여러 빛깔 꽃들이 강화를 찾아왔어요. 읍내로 들어오는 길엔 꽃 빛을 닮은 파랑, 분홍, 빨강, 초록 옷의 선거운동원들이 목 좋은 사거리마다 길게 늘어서 큰 소리로 인사를 하고 구호를 외칩니다. 나라의 일꾼을 뽑는 선거라고 하지만 지역에 대한 공약을 빠뜨리지 않습니다. 후보마다 좋은 지역, 좋은 동네를 만들겠다고 합니다. 좋은 동네 만든다는데 마다할 사람 없지요. 그런데 저마다 내놓는 공약은 다릅니다. 어떤 동네가 좋은 동네일까요?

땅값이나 집값이 오르면 동네가 좋아지는 거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명문대를 많이 보내는 학교나 학원이 있는 동네가 좋은 동네라 믿는 사람도 있는 모양입니다. 기준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좋은 동네가 되자면 무엇보다 동네 사람들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하겠죠. 또 문화를 누릴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고 이런 문화를 함께 나눌 이웃들이 함께한다면 바랄 나위 없겠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동네 문화 아지트, 동네 책방 하나 있다면 좋은 동네라 부를 만합니다.

만만한 공간, 딸기책방

딸기책방은 강화 읍내(강화읍 동문안길33)에 있는 동네 책방입니다. 책방 앞에 서면 70년대 이발관 옆으로 60년대 골목이 삐뚤거리며 뻗어 있습니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강화산성 동문이, 오른쪽으로는 정겨운 80년대 세탁소와 카페가 있어요. 옛 정취가 아직 남아 있는 곳입니다. 1945년에 등기가 되었다는 책방 건물은, 뒷산에서 베어 끌고 내려온 것 같은 구불구불한 나무들로, 집주인과 이웃들이 서툰 손길로 얼기설기 서까래를 올렸을 것 같은 구옥이에요.

75년 전에 대충 지은 막집이니 오죽할까요? 성심껏 손을 보고 다듬었지만 불편한 점은 한둘이 아닙니다. 단열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 한여름, 한겨울을 보내자면 그만큼의 인내와 비용이 필요하고요. 흙으로 지은 집이니 수시로 닦아내도 책 위에 고운 흙먼지가 뽀얗게 않는 탓에 방문객들에게 민망할 때가 여러 차례입니다.

하지만 이 공간은 여러 불편함을 상쇄할 만큼 매력적입니다. 아늑하고 편안하며 무엇보다 만만합니다. 이 공간의 이런 매력에 이끌려 우리는 책방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딸기책방 안

딸기책방 창업기

2017년 6월 마지막 직장을 떠났습니다. 1995년 5월 첫 사회생활을 출판사에서 시작해 20년이 넘도록 출판 밥을 먹었으니, 직장을 나서면서도 자연스레 출판사 창업을 계획했지요. 출판사 이름을 '딸기책방'으로 정해 놓고 본격적인 창업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이름만 딸기책방이지 정말 ‘책방’을 하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출간 아이템을 기획하며 날마다 강화도서관으로 몇 달 간 출퇴근을 했는데요, 창업 초기에 출간할 신간 목록들이 준비되고 사무실을 구해야 할 시기가 되었습니다. 막연하게 사무실은 출판사들이 모여 있는 서울 합정역 인근에 얻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지요.

그즈음, 점심시간이 되면 도서관을 나와 강화읍 이곳저곳을 산책하는데 재미를 붙였습니다. 강화도에 10년 넘도록 살았지만, 서울 직장으로 출퇴근하며 주말에만 집 주위를 맴돈 정도여서 읍내 산책은 처음이었어요. 물 좋고 산 좋은 줄로만 알았던 강화의 진짜 매력은 읍내에 있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습니다.

선사시대와 중세, 근대와 현대의 흔적이 얽히고설켜 있는 강화 읍내 곳곳에는 보석 같은 풍경들이 숨어 있습니다. 고려궁지나 강화성공회성당처럼 이름난 유적지도 멋지지만 오래된 뒷골목의 허름한 구옥들조차 단정한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보잘것없는 마을,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집에서조차 그곳에서 일상을 유지하는 사람의 간절한 손길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어느새 양철 지붕이 날아갈까 매달아 놓은 벽돌, 자동차 타이어로 꾸며놓은 화단, 골목길 화분에 키우는 상추, 정성껏 쌓아 올린 돌담… 누가 뭐라든 자신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공간을 살아가는 누군가의 꼬질꼬질한 흔적들이 무척 고맙고 멋지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산책길 중 가장 좋아했던 동문안길 빈 점포에 ‘임대’ 현수막이 붙었습니다. 당장 전화를 걸어 임대 계약을 했지요. 창고로 쓰던 점포에 들어와 석 달 동안 열심히 천장을 뜯고, 바닥을 깔고, 벽을 고치고, 형편껏 꾸몄습니다.

내가 존경심을 갖게 된 읍내의 오래된 골목처럼, 실로 꿰맨 듯 간신히 버티고 있는 낡은 집처럼, 딸기책방도 그곳에 사는 사람의 간절한 마음이 담긴 공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끄럼 없이 우리의 간절함이 드러나서 찾아오는 사람도 거추장스러운 경계심을 무심히 벗어던질 수 있는 공간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딸기책방의 문을 열었습니다.

책을 만들고 파는 곳, 딸기책방

딸기책방은 “글과 그림이 만나 즐거운 책”을 모아 파는 곳입니다. 어린이 그림책부터 어른들이 보는 그래픽 노블까지.... 그림이 있는 책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 분야의 책들은 우리가 오랜 기간 만들어 온 책이기도 하고, 또 즐겁게 읽는 책들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글과 그림이 만나 즐거운 책”을 만들기도 합니다.

책을 파는 곳에서 책을 만들다 보니 뜻밖의 장점들이 여럿입니다. 그중 가장 큰 장점은 책에 대한 독자의 반응을 가까이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거예요. 책방지기가 잘 모르거나, 딱히 좋아하지 않던 책인데 의외로 많은 독자가 좋아하는 경우도 꽤 있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 오래된 질문을 다시 꺼내 놓게 됩니다.

‘좋은 책이란 건 뭘까?’ 20년 넘게 고민했지만 고민의 중심은 언제나 책 만드는 사람 입장에 있었던 거예요. 독자의 입장에서 좋은 책을 생각하지 못했던 ‘우물 안 개구리’였고, 전문성 있다고 우쭐거리며 뾰족한 시각으로 책을 대했던 ‘삐딱이’였던 게 아닐까 하는 반성도 하지요.

딸기책방은 긴 복도처럼 생겼습니다. 긴 공간의 안쪽 끝은 작업실이지만 저의 출판 관련 업무는 바깥쪽 끝에 있는 계산대 테이블에서 이루어집니다. 그곳에 앉아 들어오고 나가는 손님들과 눈을 맞추며 기분 좋은 인사를 나누고, 독자들과 책에 관해 수다를 떠는 것은 유쾌한 일과입니다.

날씨에 맞는 음악을 고르고, 커피를 내려 서빙하고, 새로 나온 신간들을 도매상에 주문하는 일 또한 딸기책방 주인이 누릴 수 있는 호사이지요. 그중 가장 큰 즐거움은 ‘독자의 소리’를 듣는 일입니다. 무심하게 모니터를 보며 바쁜 업무를 하는 듯하지만, 귀는 쫑긋 세워 책 읽는 소리를 들을 때가 많습니다.

연기 혼을 불사르며 주인공 대사를 읽어주는 엄마 목소리, 숨겨두었던 귀염을 발휘하는 아빠 목소리, 그 소리에 까르르 웃어 넘어가는 아이들 숨소리, 어떤 책을 살지 조곤조곤 상의하는 일행들, 그림책 책장을 넘기며 “어떻게! 너무 멋져!”를 연발하는 그림책 애호가들, 그림책 이야기를 나누다 펑펑 울어버리는 학부모 모임까지… 독자들의 책 읽는 소리와 모습은 그림책방 서점지기들을 행복하게 합니다.

책 만드는 책방의 즐거움

책 읽는 사람이 없어졌다고 말합니다. 출판 시장은 불황이고, 출판 산업은 사양 산업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1995년, 제가 첫 직장으로 출판사에 입사할 때도 집안 어른들은 출판이 사양 산업이라며 걱정하셨습니다. 제가 출판에 발을 디딘 이후 매년 출판계는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며 암울해 했지만, 25년이 지난 지금도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이 있고 책에 대한 열정을 품은 작가와 편집자들이 있습니다.

딸기책방의 책방지기들이 “글과 그림이 만나 즐거운 책”을 좋아하듯, 딸기책방이 글과 그림이 만나 즐거운 곳, 책과 사람이 만나 즐거운 곳, 작가와 독자가 만나 즐거운 곳으로 자리하기를 늘 바라고 노력합니다.

아직 부족한 게 많은 책방이지만, 만 2년 만에 책방을 걱정해 주는 단골도 생기고, 엄마 손을 이끌고 책방으로 나오는 꼬꼬마 독자들도 생겼으니, 10년 안에는 아주 멋진 동네 책방이 되어 있지 않을까요? 딸기책방 책방지기들은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멋진 책방 될 때까지 열심히 걸어보렵니다. 지켜봐 주신다면 큰 힘이 될 거예요!

관련기사 →
딸기책방 작가되기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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