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시팬티와 성교육의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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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시팬티와 성교육의 부재
  • 박교연
  • 승인 2020.05.06 0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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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박교연 / '페이지터너' 활동가

지난달 4월 27일, 울산 모 초등학교 학부모가 ‘초등학교 1학년 선생님 정상적인가요?’라는 글로 담임교사의 성희롱을 폭로했다. 해당 40대 남자 교사는 온라인 개학 후 첫 주말 효행숙제로 아이들에게 팬티를 직접 빨고 사진으로 인증하라는 숙제를 내줬다. 그리고 인증사진에 ‘울 공주님 분홍색 속옷 예뻐요’, ‘예쁜 잠옷, 예쁜 속옷 부끄부끄’ 등의 댓글을 남겼다. 이 남교사는 작년에도 학생들에게 똑같은 숙제를 시킨 뒤에 숙제영상을 모아 ‘섹시 팬티, 자기가 빨기’라는 제목으로 유튜브에 올린 전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에게 섹시팬티가 웬 말이냐며 논란이 식지 않자, 남교사는 이건 성희롱이 아니라 소통의 문제라며 서로간의 오해가 있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해명이 통하지 않자 29일에는 본인의 SNS에 “더 이상 교육이 맘카페나 익명의 네티즌들로 휘둘려서는 안 된다”며 글을 올렸다. 남교사는 이번 논란을 ‘마녀사냥’이라고 규정하며 “(제가) 교직을 나갈 때 나가더라도 또 다른 마녀사냥이 발생하지 않게 맘카페 실명제를 위한 서명 운동을 전개하고 싶다. 여러분의 가족도 저같이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배상훈 프로파일러는 29일 시사본부에서 “범죄전문가로서 볼 때 이것은 성범죄의 초입 단계”라고 단언했다. 또한, 성범죄를 소통의 문제라고 변명한 교사도 문제고, 문제교사를 그동안 제지하지 않은 교육청도 문제라며 “이 행위가 반복적으로 일어났다는 것을 보면, 이 사안의 본질에 대해서 정확히 이해를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왜냐하면 담당 공무원의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하지만 않았더라도 성범죄를 주의로 무마하려는 시도는 없었을 것이고, 교육청 자체 징계로 아동복지법 형사 처분을 대신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교육청의 이런 부족한 성인지 감수성 문제는 비단 어제오늘일이 아니다. 교육부는 2015년 이후 ‘성교육 표준안’을 개정한 적이 없다. 2015년 1월에 6억 원을 들여 성교육 표준안을 제정하였으나 시대착오적인 표현과 부적절한 내용으로 논란을 빚자, 2017년에 내용을 약간 수정 및 보완하여 다시 배포한 게 끝이다. 그런데 수정한 자료에서조차 시대착오적인 부분은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 ‘여자는 무드에 약하고 남자는 누드에 약하다’라거나 ‘유난히 조건이 좋은 알바는 하지 말고, 이성 친구와는 단둘이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게 성폭력을 예방하는 방법’이라는 등 여전히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하고 피해자에게 성폭력의 책임을 묻는 부적절한 내용이 많다.

2018년에는 학교 내 성폭력을 고발하는 ‘스쿨미투’가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왔고, n번방 운영자 140명 중에 25명이 10대라고 밝혀진 것을 보면 분명 제대로 된 성교육은 국영수보다 더 시급하다. 최근 일어난 디지털성범죄 사건 274건 중에서 검거된 피의자 221명의 29.4%(65명)가 10대 청소년이었고, 성착취물을 공유하는 한 사이트 운영자는 만 12세였다. 10대 남학생들 사이에서는 n번방 사건을 두고, ‘남성들이 뭐 XX, n번방을 내가 봤냐 XXX들아’라고 적힌 여성 비하 이미지를 SNS 프로필에 올리는 행위가 놀이처럼 번지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부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실정에 맞는 성교육 표준안을 만들고, 성교육을 정규교육과정 속으로 편입하는 일이다.

그런데 지난달 4월 12일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인지 감수성 교육 강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지만, 교육부는 성교육 체계 자체는 손댈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n번방 이후 범정부 태스크 포스(TF)를 꾸려 대책을 논의하면서도 성교육 주무 담당자들을 참여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청소년 성범죄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는 명백히 잘못된 판단이다.

현재 청소년은 디지털 매체와의 접촉이 잦고, 성을 학교에서보다 인터넷을 통해 먼저 배운다.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4명 중에 1명꼴로 인터넷에서 성을 먼저 접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디지털 성범죄가 10년 전보다 23배나 증가했기 때문에 청소년 역시 디지털 성범죄에 분별없이 노출이 되고 있다. 범죄에 노출이 되면 인터넷 특성상 익명성이 죄의식을 중화시키기 때문에 그 유혹에 넘어가기가 너무 쉽다. 아직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청소년 우범화와 성범죄 피해를 막을 방법은 오직 제대로 된 성교육뿐이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도 “성매매와 포르노그래피가 용인되는 남성중심사회가 어떻게 성착취·성범죄로 연결되는지, 이런 문화나 범죄에 가담했을 때 어떤 처벌을 받는지, 또 묵인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다시 말하지만 스쿨미투, n번방, 섹시팬티가 교육계에 남긴 과제는 명확하다. 교육부는 청소년에게 인권과 성평등, 반폭력, 민주시민성에 기반하는 ‘포괄적 성교육’을 실시해야한다. 우리는 자라나는 미래의 새싹들에게 이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 성적 대상화, 강간문화, 성착취 구조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기반이 되는 토양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 성평등과 페미니즘은 반드시 우리 모두의 상식이 되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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