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뭉치와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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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뭉치와의 추억
  • 장재영
  • 승인 2020.05.0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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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치료 가족의 세상살이]
(102) 장재영 / 공감미술치료센터 기획팀장

나의 어린 시절을 추억해보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기억들 중 어느 정도 임팩트 있는 기억은 동물과 함께했던 순간이다.

금붕어, 병아리, 메추라기, 토끼, 기니피그, 햄스터, 거북이에 이르기까지 어린시절 정말 다양한 동물을 기르면서 애정을 쏟았던 기억이 난다.

그날은 평소처럼 시장을 놀러갔던 참이었다.

 

에이 아줌마 이거 쫌만 깎아주셔. 넘 비싸네.”

아니.. 이게 얼만데그려 이정도면 싸게 주는거여.”

그럼 덤으로 이거 좀만 더 줘봐요.”

.. 진짜 안 되는데 한 주먹만 더 드릴께 그럼.”

 

1990년대 즈음에는 요즘처럼 대형 쇼핑몰의 마트 같은 곳보다 재래시장이 더 많았는데 시장에서 어머니는 가격을 썩 잘 깎았다. 그날도 어머니의 흥정 솜씨에 감탄하며 재밌게 구경하던 도중 움직이는 솜뭉치가 눈에 확 들어왔다.

그 순간부터 누나랑 나는 다리를 땅에 붙인 채로 그 솜뭉치에서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그 동물은 다름 아닌... 토끼!

 

우리는 토끼를 향한 애정 공세를 시작하였고

무언가를 갈구하는 두 아이의 순수한 눈빛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어머니는 집토끼 두 마리를 사주셨다.

 

 

그렇게 토끼와 우리의 일상은 시작되었다.

다른 집 아이들이 그 당시 한창 유행이던 애완견 요크샤테리어와 마르치스를 동반하고 산책을 나갈 때 우리는 11토끼를 들고 등장해서 동네사람들의 관심을 한눈에 받았다.

당시는 애완용 토끼가 아직 없던 시절, 토끼를 위한 사료도 없었기에 우리는 날마다 토끼 먹이를 구하러 아파트 풀밭을 동분서주했다.

오늘은 101동에서 한바구니 뜯고 내일은 103동에서 한바구니 뜯고 어떤 날은 양치는 목동마냥 풀을 먹이면서 산책도 했다.

토끼들은 그렇게 풀을 뜯어먹여도 절대 주인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절대 도망은 치지 않았다. 지금도 품에 안겨 코를 씰룩이던 그 녀석들 생각이 많이 난다.

 

 

그 악의 없고 순수한 눈빛, 복슬복슬 보드랍고 하얀 털의 촉감과 지독한 오줌냄새...

 

동네 아이들과 얼음땡을 할 때도, 비석 까기를 하며 놀 때도 나와 토끼는 늘 붙어 다녔다. 시간이 지나고 무럭무럭 자라난 토끼들은 점점 우리 손에 감당이 안 되어 아파트 경비아저씨에게 맡겨졌지만, 새끼를 받아 또 기르고 또 기르면서 그렇게 2~3년의 시간을 보냈었다.

그리고, 그 시절 느꼈던 정서적인 행복감은 지금에도 두고두고 추억되고 있다.

 

미국 정신의학자 Katcher(1981)는 반려동물에 대한 정서적인 효과에 대해 이야기했다.

반려동물은 주인에 대한 평가나 재단하지 않는 모습을 통해 존중받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켜 주며 말이 통하지 않아 감정 교류는 어렵지만 감정을 이입을 할 수 있는 대상으로 수용받는 관계 형성을 통해 심리치료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하였다.

또한, 사회심리학자 Robert Weiss는 돌보고 배려할 수 있는 기회야말로 많은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하고 보람 있는 측면의 하나로 인간이 아니더라도 무엇인가 돌보고 행복하게 해주려는 책임 의식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을 형성하여 삶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 시절의 나에게 토끼는 정말 둘도 없는 친구였으며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매개체이자 사랑을 줄 수 있는 대상에 가까웠던 것 같다. 말을 알아듣지는 못해도 늘 내 곁을 지켜주며 맛있게 풀을 먹어주는 토끼들은 나로 하여금 필요한 존재라는 느낌을 갖게 하였고 그 덕분에 풍부한 유년시절을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나이를 먹고 직장을 다니면서 점점 마음의 여유도 없어지고 한동안은 일이 바빠 동물을 키울 여유가 없었지만 내 아이가 태어나면 꼭 동물과 함께하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다.

어머니가 내게 기회를 주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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