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없는 성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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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없는 성장은 없다
  • 최원영
  • 승인 2020.05.25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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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의 행복산책](105) 고통을 견디는 삶

풍경 #142. ‘걱정의 날’

작은 가게를 하는 친구가 요즘 상황이 얼마나 힘든지를 말했습니다. 작은 공장을 운영하는 친구도 말합니다. “너무 힘들어!”라고 말입니다. 저 같은 사람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힘겨운 모양입니다. 어서 빨리 코로나19로 인해 발생한 어려움에서 벗어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예전의 모습처럼 친구들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좋은 생각》이라는 책에 걱정이 많아 늘 불안해하는 사업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날 걱정에서 벗어날 방법을 고민하다가 문득 멋진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매주 수요일을 ‘걱정의 날’로 정하고, 걱정거리가 생길 때마다 걱정거리가 생긴 날짜와 내용을 메모지에 적어 작은 상자에 넣어두었습니다.

어느 날 상자 속 메모지를 살펴보다가 상자에 넣을 당시만 해도 큰 문젯거리였지만 훗날 다시 읽을 즈음엔 별로 큰 문제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그는 사람이 살면서 크게 고민하고 불안해 할 것은 별로 없다고 여기며 살고 있습니다.

맞는 이야기 같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이었습니다. 다음날 있을 미술 시간에 크레파스를 가져갈 수가 없어 선생님에게 혼날 것이 두려워 밤잠을 이루지 못한 일, 어른이 되어서는 전날 밤 회식 때 선배에게 술주정한 게 걱정이 되어 출근하기가 두려웠던 일, 평소 마음에 두던 아가씨에게 “차나 한잔하자”라고 말했지만 보기 좋게 거절당하고 죄 없는 술잔만 하염없이 들이키던 일, 이 모든 일이 그 당시에는 견디기 힘든 일이었지만, 세월이 한참 흐르고 난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별 것 아닌 일로 여겨지는 게 우리네 삶입니다. 그래서 어른들이 ‘세월이 약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풍경 #143. 고통 없는 성장은 없다

삶은 두 개의 극단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좋은 일’과 ‘나쁜 일’, ‘기쁜 일’과 ‘슬픈 일’, ‘즐거움’과 ‘고통’, 이렇게 말입니다. 시계추가 좌우로 움직이듯이 삶도 이 두 개의 극단 사이를 끊임없이 왕복하며 우리의 삶을 웃음과 울음으로 채우곤 합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고통스럽다고 해도 그 고통을 없애려고 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고통도 내 삶의 절반이니까요. 그것을 없애면 내 삶도 없어질 테니까요. 기다리며 견뎌내야만 합니다. 어차피 세월이 흐르면 시계추가 반대편으로 옮겨갈 것이니까요. 그때까지 조금만 견뎌내면 됩니다.

더운 여름날입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가다가 은행이 보였습니다. 그곳에 들어가니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너무나도 고마웠습니다. 에어컨에 대한 ‘고마움’을 그곳에서 일하는 분들은 과연 느낄 수 있을까요. 늘 그렇게 시원한 곳이니 시원함이 당연하다고 여길지도 모릅니다. 당연하다고 여기는 순간 감사함은 사라집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올라올 때가 행복한 겁니다. ‘감사’는 ‘당연시하지 않는 마음’을 뜻합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려면 무더위라는 ‘고통’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갈증이 심할 때 한잔의 물이 얼마나 감사할까요. 그렇다면 우리에게 다가온 갈증이라는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따뜻한 영혼을 위한 101가지 이야기》에 씨앗 이야기가 나옵니다.

씨앗 두 개가 봄날 비옥한 흙 속에 나란히 누워 있습니다. 첫 번째 씨앗이 말했습니다.

“나는 어서 자라고 싶어. 뿌리는 밑에 있는 땅속 깊은 곳으로 보내고, 줄기는 딱딱한 땅 위로 밀어내고 싶어. 봄이 왔다고 알리는 깃발처럼 내 부드러운 봉오리를 펼치고 싶어. 얼굴에 비치는 해님의 따사로움과 꽃잎 위에 떨어지는 아침이슬의 축복도 느껴보고 싶어.”

그 씨앗은 그렇게 자라났습니다.

두 번째 씨앗이 말합니다.

“나는 두려워. 내가 뿌리를 땅 밑으로 보내면, 어둠 속에서 무엇을 만나게 될지 모르잖아. 내 위의 딱딱한 흙을 밀고 올라가면 내 가냘픈 줄기들이 다칠지도 모르고, 또 봉오리를 펼 때 달팽이가 그걸 먹으려고 하면 어쩌지? 그리고 내가 꽃을 피우면, 어느 꼬마가 나를 땅에서 뽑을지도 몰라. 안 되겠어. 안전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훨씬 낫겠어.”

그래서 씨앗은 기다렸습니다.

이른 봄날이었습니다. 먹이를 찾으려고 마당을 여기저기 긁고 있던 암탉 한 마리가 안전해지기를 기다리고 있던 그 씨앗을 발견하고는 재빨리 먹어버렸습니다.

참 멋진 비유 같습니다. 고통 없는 성장은 없습니다. 행복한 삶이 있다면 언젠가는 불행한 삶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 삶입니다. 불행한 삶을 살고 있어도 어느 날에는 웃을 날이 오기 마련입니다. 이게 삶이니까요.

 

풍경 #144. 고통의 무게

《주는 것이 많아 행복한 세상》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여러 차례 강도짓을 저지른 범죄자 두 명이 한 수도자의 도움으로 회개했습니다. 두 사람은 수도자에게 자신들의 모든 범죄를 고백하고, 어떻게 참회하면 좋을지를 묻자, 수도자는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성지순례를 하라고 권했습니다. 그래서 둘은 큰 십자가를 만들어 길을 떠났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습니다. 십자가가 무거웠지만, 아직 그 정도쯤은 짊어질 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어깨가 붓고 저리기 시작했습니다. 한 가지 꾀를 생각해냈습니다. 바로 십자가를 변형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목공소에 가서 한 사람은 십자가의 긴 쪽을 잘라냈습니다.

“자, 이제 훨씬 짧아졌지만 그래도 십자가는 십자가지.”

또 한 사람은 십자가의 두께를 반으로 쪼개 두 개의 십자가를 만들더니 그중 하나는 바닥에 던져버렸습니다.

“자, 이제 훨씬 가벼워졌지만 그래도 엄연히 십자가야.”

이제 둘은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러나 먹을 것조차 찾기 힘든 사막에 들어서자 사정은 다시 나빠졌습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사흘 동안이나 사막을 헤맸습니다.

나흘째 되는 날, 저 멀리 지평선 너머에 마을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기쁜 마음에서 지친 몸을 이끌고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저녁 무렵이 되어 예기치 않은 장애물을 만났습니다. 가야 할 길 앞에 깊은 골이 패여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그 골짜기를 건널 수 있는 다리가 없었습니다. 둘은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찾았습니다.

“우리, 십자가로 임시 다리를 놓읍시다.”

그러나 한 사람의 십자가는 길이가 너무 짧았고, 다른 십자가는 길이는 맞지만, 두께가 얇아 약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풍요와 안락이 넘치는 그 마을을 코앞에 두고 굶어 죽고 말았습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에 이르면 누구나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온갖 꾀를 내어 고통의 무게를 줄일 묘책을 찾을 겁니다. 마치 두 명의 죄수가 십자가를 반으로 자르고, 얇게 자른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고통에서 잠시 벗어날 수는 있었지만 결국 그들은 죽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짊어진 고통의 무게가 곧 물이 있는 마을로 가는 열쇠였는데, 그들은 그것을 몰랐습니다.

힘들어하는 제 친구들에게 힘을 내어 조금만 더 버텨보자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지금의 이 고통과 힘겨움이 결국은 디딤돌이 되어 이전보다 훨씬 더 나은 삶으로 안내해주는 징검다리가 되어줄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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