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장식품, 공공의 조형물로 거듭나야
상태바
미술장식품, 공공의 조형물로 거듭나야
  • 이병기
  • 승인 2011.05.03 11: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획 2] 제도 비리 관행, 과연 대안은 없나?


가구 디자이너 우치다 시게루가 만든 도쿄 롯폰기 힐스의 '의자 님께 드릴 것은 사랑뿐'  (스페이스빔 제공)

취재: 이병기 기자

1. '비리의 온상' 미술장식품 제도, 인천지역 실태
2. 미술장식품 제도 비리 관행, 과연 대안은 없나?


'장식'이란 사전적 의미는 '옷이나 액세서리 따위로 치장하는 것'을 뜻한다. '장식품'은 이런 '장식에 쓰는 물품'이라는 의미를 지닌 반면, '작품'은 '예술 창작 활동으로 얻어지는 제작물'이라는 뜻이다. "이름부터가 '미술장식품'이다 보니 작품의 질이 떨어지는 게 아니냐"고 지역의 한 작가는 지적한다.  

정부는 작년 8월 '문화예술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국회에 제안했다. 아직까지도 국회에서 계류중인 정부의 개정안은 '미술장식'을 '미술작품의 설치'로 하는 것과 건축주가 건축비용의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미술작품의 설치에 사용하는 대신, 더 낮은 범위에서 문화예술기금으로 출연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대중에게 공개된 장소에 미술작품을 설치하거나 전시하는 것을 '공공미술'로 정하고 이 사업에 문화예술진흥기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 개정안의 취지는 기존 '장식미술'이라는 개념을 '공공미술'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도 미술장식품이 더이상 개인만의 창작물이 아닌 공공조형물로서 시민, 지역, 주변과 어울려야 한다고 제안한다. 미술장식품 제도가 '비리의 온상'이라는 오명을 벗고 공공의 조형물로 거듭날 수 있는 방안에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미학, 미술비평가이자 연세대학교에서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임정희 교수는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미술장식품 제도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이유는 소위 '1%법'이라고 하는 제도와 결합돼 있기 때문입니다. '돈 나오는 구멍'이라는 거죠.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기로는 작품이 엉망이라든가 중간에서 돈을 가로채는 등의 얘기를 하지만, 본질은 예술가들에게 '돈'이 돌아가는, 확실한 사회적 작업 출처이기 때문입니다." - 임정희 연세대 겸임교수(미학, 미술비평가)

미술장식품에서 비리가 발생하는 이유는 작가들이 먹고 살 수 있는 기반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외국의 경우 사회안전망 제도가 있어 비정규직이나 예술가 등 간헐적, 자발적 실업상태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마련돼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사회적 구조 자체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우리 사회에서 소위 작가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정기적 수입을 가질 수 있는 기회는 극히 적다는 게 임 교수의 설명이다. 직업을 가진 소수를 제외하고 나머지 대부분의 작가들은 '각개격파'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래도 간헐적이지만 꾸준히 가늠할 수 있는 경제활동 영역이 미술장식품이라는 것이다.

시민이 참여하는 '심의위' 만들어야

프랑스 라데팡스의 조형물임정희 교수는 각 기초단체에서 운영하는 미술장식품 심의위원회를 '행정적인 편의주의'라고 비판했다.

"나도 미술장식품 심의위원을 오래 했지만, 불쾌해서 할 수가 없어요. 심의위원회라는 제도만 있을 뿐 수박 겉핥기 식으로 굉장히 한시적인 데 불과하다는 겁니다. 지금은 심의를 3D로 하는데, 직접 만들 수 있는 작가들은 없죠. 거의 100만원씩 들여서 돈 주고 맡기는 거예요. 작가들이 하려면 오지랖 넓게 뛰어다녀야 합니다. 이들이 공과 노력을 많이 들여도, 심의위에서는 상세하게 검토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많은 심의 안건을 처리해야 하기에 행정적인 편의주의가 심사 기조가 되는 겁니다."

지역의 작가들이 지적한 대로 '비주얼'이 잘돼 있는 장식에 눈이 간다거나, 어느 학교 미대를 졸업했느냐 등의 작가 공신력에 심의가 좌우된다고 지적한다. 심의위원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오래 활동한 사람, 젊은이보다는 경험 있는 사람이 명망성을 보장한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미술장식품이 새로운 실험의 장이 되거나, 새로운 작가들이 첫 발을 딛을 공간이 없다는 말이다. 문건상으로 나와 있진 않지만, 심의할 때 이미 잠재적으로 똑같은 것을 반복한다는 지적이다. 계속 똑같은 것만.

공모에 필요한 안건들을 아주 잘 보기좋게, 매끄럽게 처리하는 집단이나 방식이 선호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문제가 생기지 않는 방식. 이틀 안에 '심의'를 한다는 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지적이다.

또 이미 심의위원들과 조각가 사이에 인적인 관계망이 노출돼 있고, 사전에 전화를 받는다든지 하는 '사적 관계의 얽혀진 망'을 뚫기 어렵다고 한다.

임 교수는 "우리나라는 소위 전문가 집단에서 모든 걸 결정했지만, 외국은 심의위원회에 당연히 시민들이 들어가 있다"면서 "외국 심의위의 전문가는 한 영역에서의 전문가를 뜻하는 게 아니라 생활의 전문가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전문적인 관점만 가집니다. 자신들이 시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죠. 내가 그 공공조형물 앞에서 슬리퍼 끌고 왔다갔다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예술계나 미술계 안에서의 전문성도 필요하지만, 일반 시민들이 갖는 전문성도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아파트 놀이터에 두는 공공조형물이라면 어린이 보육교사, 의사 등 아이들과 관련된 일반 시민들이 심의위원회에 참여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공공조형물을 쓰임이나 기능에 따라 똑같은 절차가 아닌 다변화된 구조를 가져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전문가나 일반인 중 어떤 차이가 더 중요하다는 게 아니라, 다양한 의견이 수렴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공공조형물은 이런 다양성이 반드시 개입돼야 하는 영역이라고 임 교수는 강조한다.

폐쇄적 작품이 아닌 환경적 맥락 읽자


프랑스 라데팡스 조형물 (건축물미술장식DB www.publicart.or.kr)

"작품에 공공성이나 환경성, 작품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계속되는 문제는 다양성이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화랑 안에서 전시되는 작품이나 건물 밖에 설치되는 작품이나 차이가 없습니다. 작가들에게 환경적 맥락을 읽어주는 훈련이 안 됐기 때문입니다."

그는 "요건을 맞추기 위해서만 했지, 유기적으로 살아있는 조형물은 없다"라고 일축했다.

공공조형물은 작품 자체의 생명력만이 아니라 밖에 위치하면서 사람들과 소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술작품은 더이상 '작가의 폐쇄적 작품'이라는 의미로만 절대 얘기될 수 없다고 그는 강조한다.

관람자나 사회가 빠진 상태로 공공조형물이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이는 모더니즘(감각적, 추상적, 초현실적인 경향의 여러 운동)보다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임 교수는 설명한다. 나아가 현재처럼 각 기초단체에서 분리돼 심의하는 방식보다 지역의 이해관계를 벗어나 보편적인 척도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그는 제안한다.

"작가들에게도 학습이 필요하고, 사회에도 학습이 필요합니다."

타키스, 호수 위의 신호등(파리, 라데팡스) 스페이스 빔 제공사회에서 학습이 필요하다는 얘기는 한 조형물이 '누구의 작품'만이 아니라 '우리의 작품'이라는 인식을 시민 스스로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들도 작품을 혼자 하기보다는 필요에 따라 도시계획자나 인문학자들과도 교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그는 조언한다.

임 교수는 "내 작품이 아니라 함께 한다는 인식이 있어야 하고, 작업을 할 때 여러 다른 분야와 협업을 가능하게 하는 게 공공조형물의 특징이어야 한다"면서 "지금은 예술가의 시각이나 예술성이 독점적으로 행해지고 있다"라고 말한다.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도 다르고 그곳의 역사적 부분도 다른데, 물리적 공간으로만 추상화해 다뤄지고 있다"면서 "공공조형물이 예술성보다 더 중요한 점은 커뮤니티의 활성화, 즉 사회와 접촉면적을 넓혀주는 매개 역할을 하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우리의 공공조형물은 형식적이고 추상화 돼 있습니다. 구체적이지 않다는 거죠. 공공성이 둥둥 떠있습니다. 작품이 설치된 이후 흉물처럼 남아 있거나 작가의 경력으로만 여겨지곤 합니다. '내 작품은 어디어디에 있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차라리 화단을 가꾸고 조경을 잘 하는 게 낫습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이 작가만 탓할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작가의 사회화 과정에 학교나 사회에서 이런 훈련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공공조형물 확대는 시민 참여의식 개선으로

아울러 시민들도 참여와 제시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깨달아야 한다고 그는 충고한다. 이미 설치된 작품을 놓고 '웃기다' 하지 말고, '내 의견을 어디에 말하면 됩니까?'처럼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서울 퍼블릭 아트 (건축물미술장식DB www.publicart.or.kr, Wlak company-바엔다이닝)"공공조형물은 '내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것'. 이를 공유자산이라고 할 때 그 쓰임새를 시민 차원에서 늘리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멀찌감치 떨어져 보는 게 아니라는 말이죠. 작가 측면에서는 사회와 연줄이 필요하고, 사회도 예술에 근접해야 하고, 참여와 권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바로 이부분이 공공조형물 측면에서 확대될 수 있는 가능성입니다."

최근 국회에서 논의되는 문화예술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과 관련해 임정희 교수는 "개정안의 목표나 취지가 일반 작가와 사회에 더 많이 전달될 수 있어야 한다"면서 "법이 지속력이나 생명력을 지니려면 시민들의 각성이나 참여가 보장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라고 평가했다.

"법안 개정을 위한 공청회를 보면 조형물과 관련된 사람들로만 바글바글 합니다. 일반 시민들은 없죠. 공공조형물은 작가나 예술계 안에서만의 일이 아닙니다. 일반 시민들이 어떤 것들을 원하는지, 어떤 점들이 시민들에게 권위감을 갖게 하거나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지, 쌍방향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런 노력 없이 굉장히 위계적으로 개정안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공공조형물은 '생활권역에서 일어나는 문화활동'이라는 이유다. 예술의 전당 갤러리 안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다니는 도서관, 거리에서 일어나는 활동이기 때문에 생활권역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그는 제안한다.

"공청회에서 의견을 듣는 방식이 매우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사회적 공론화가 조금 더 넓고 다양하게 이뤄지는 게 필요합니다. 법 개정 공포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 자리, 형식적 논의가 아닌 실질적인 내용들이 법 시행령에 포함될 수 있는지 배려해야 합니다."

임 교수는 "미술장식의 문제는 어느 한 곳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갖는 전문가 이데올로기도 있고, 각 영역이 통합이나 협업 체계를 가질 수 없는 한국사회의 문제"라며 "아직 공공성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 사적이거나 분산된 흐름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