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포천 상류, 만월산 계곡 - 옛과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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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포천 상류, 만월산 계곡 - 옛과 지금
  • 장정구
  • 승인 2020.06.18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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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구의 인천 하천이야기]
(31)굴포천② - 묘지와 광산 그리고 복원
굴포천 발원지, 만월산 칠성약수
굴포천 발원지, 만월산 칠성약수

“우와~ 인천 도심에서도 반딧불이를 만날 수 있어요!”
“묘지가 빼곡한 만월산에서 반딧불이 불빛은 또 다른 묘미가 있어요”
굴포천 상류, 만월산 계곡에는 개똥벌레 반딧불이가 산다. 여름밤이면 계양산과 인천대공원, 인천가족공원 등 인천 도심에서도 반딧불이를 만날 수 있다. 만월산에서 관찰되는 개똥벌레는 늦반딧불이와 파파리반딧불이다. 파파리반딧불이는 6월과 7월 밤 10시부터 새벽 2시쯤 활동하고 늦반딧불이는 8월과 9월에 관찰된다. 늦반딧불이와 파파리반딧불이 모두 암컷은 날개가 퇴화되어 날 수가 없다. 애벌레는 육식성으로 얕은 개울에 서식하는 달팽이나 다슬기를 먹는다. 반딧불이는 자체 발광 빛으로 짝을 찾는다. 사람들이 도시를 밝히기 위해 켜놓은 가로등은 짝을 찾을 수 없게 하는, 반딧불이 종족보전을 위협하는 불빛이다. 인천 도심에서 반딧불이가 짝을 찾을 수 있는 곳은 계양산과 인천대공원, 인천가족공원 정도이다.

‘칠성약수 개발 1973년7월7일, 보수 1982년4월20일, 칠성약수보호위원 1985.11.7. 발족’
겨우내 얼었던 물줄기가 이어졌다. 만월산 칠성약수다. 칠성약수는 굴포천 발원지이다. 졸졸 흘러나오는 칠성약수의 콘크리트 벽에는 부평의 굴포천과 만월산을 사랑하여 지키고자 하는 109명의 이름이 빼곡하다. 만월산의 굴포천 상류 계곡은 부평공동묘지라 불렸던 인천가족공원이다. 만월산 능선을 따라 포장도로가 나 있다. 가족공원 관리용 순환도로다. 과거에는 자유롭게 차량으로 돌아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성묘 등 별도로 허가를 받아야만 차량 출입이 가능하다. 평소 차로 만월산에서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는 지점에 칠성약수가 있다.

칠성약수에서 내려다 본 공동묘지
칠성약수에서 내려다 본 공동묘지

칠성약수를 등지고 내려다보면 좌우로 묘지가 가득하다. 하얀 돌멩이들이 점점이 박힌, 콘크리트 옹벽 계단이 얼추 세어봐도 20층이 넘는다. 옹벽과 옹벽 사이에는 묘지와 비석들이 가지런하다. 부평공동묘지는 인천에서 가장 큰 공동묘지이고 전국적으로도 손꼽히는 규모다. 화장장인 승화원을 비롯하여 금마총, 추모의집, 만월당 그리고 평온당 등. 2020년 현재 납골당에만 10만기가 넘는 유골이 안치되어 있단다. 1백7십만㎡가 넘는 만월산 서쪽 계곡부에는 4만기의 묘지가 있다. 이외에도 수목장, 잔디장, 회랑형 봉안당, 외국인묘지. 인천을 살았던 인천사람들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 인천에서 출발해 제주로 향하다가 4월 16일 아침 참사를 당한 세월호의 일반인희생자추모관도 인천가족공원의 굴포천 옆에 있다. 인천가족공원은 일제강점기 자연적 공동묘지로 시작해 1971년 건설부가 묘지공원으로 결정했다.

일제 강점기에 판 것으로 추정되는 부평토굴
일제 강점기에 판 것으로 추정되는 부평토굴

‘인천부평공설묘원 붕괴함몰 사건 이후 안전점검에 나선 인천시는 17개의 광석채굴장 중 5개 채굴장이 채광폐석으로 채워지지 않은 공동상태로 버려져 있음을 밝혀냈다. 특히 5개의 미충천 채굴장 중 지하1백30미터 ~ 2백60미터의 수직 구간인 3곳은 남동구와 부평구에 걸쳐있는 부평농장 중심 일대의 주택공장 밀집지역이어서 또 다른 붕괴함몰 위험이 있어 신속한 안전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1993년 6월 동아일보 보도내용이다. 만월산에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은광산이 있었다. 영풍광업이 1987년까지 운영했던 은광이다. 부평문화원 자료에 의하면 부평은광 광업권은 1937년 9월 등록되었고 명칭은 ‘부평광산(富平鑛山)’이었다. 일본인이 대표자로 광업을 시작했고 본격적인 광산 개발은 1965년부터란다. 일반적으로 은광산에서는 금이나 동, 아연 등의 광산에서 부수적으로 산출되는데 국립지질조사소(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 4km이상 시추조사한 결과 부평은광은 은 위주의 광산이었다고 한다.

만월산이 과거 주안산이라고 불렀다. 구리가 많아서 붉은색을 띠어 붙은 이름이란다. 동암(銅岩)이라는 지명도 광산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은광이나 동광은 화산활동의 증거다. 한남정맥 산곡동 구간에는 일제강점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토굴들이 있다. 확인된 토굴만도 20개가 넘는데 어떤 것은 얼마 전까지도 새우젓토굴로 사용되었다. 이 부평토굴의 주요 암석이 화산암의 일종인 유문암이다. 과거 부평에서 화산활동이 활발했다는 또 다른 증거다. ‘부평은 분화구다’는 말이 상당히 과학적인 근거를 갖춘 주장인 셈이다. 1970년대 은이 유망한 수출광물로 떠오르면서 부평광산은 국가적 주목을 받았다. 정부 지원과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로 우리나라에서 두 손가락에 꼽히는 은광이 되었다. 광명동굴에 자극을 받은 인천시가 몇 년 전 부평은광에 대해 안전도검사를 실시하고 관광콘텐츠 개발용역을 발주하여 관광자원화할 계획이라는 발표가 있었으나 그 이후의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굴포천 상류, 인천가족공원 구간을 원통천이라고도 부른다. 가족공원 입구, 부평은광 시설들이 있던 곳은 저수지로 변했다. 칠성약수에서 시작된 굴포천은 막힌 보가 트이고 덮인 아스팔트가 열리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인천가족공원 입구에서 굴포천은 콘크리트 속으로 들어간다
인천가족공원 입구에서 굴포천은 콘크리트 속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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