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사이와 거리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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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사이와 거리두기
  • 최원영
  • 승인 2020.06.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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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의 행복산책]
(107) ‘거리’와 ‘자리’

 

풍경 #147. ‘거리’와 ‘자리’

‘가깝다’라는 말은 물리적 거리뿐만 아니라 심리적 거리에서도 사용됩니다. 그래서 ‘나는 저 사람과 가까워’, 라고 말했을 때는 저 사람과 무척 친밀한 관계에 있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가까이 있다 보면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볼 수 없던 단점이 보여서 자주 다투기도 할 것이고, 가까우니까 예의를 지키기도 쉽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이 쌓여 오해가 생기고, 결국에는 헤어지는 일까지도 있습니다.

친해지고 싶어서 가까이 간 것이 오히려 아픈 이별의 빌미가 되는 게 지나치게 밀착된 ‘거리’라는 것, 그리고 친하면 친할수록 오히려 거리를 적절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하면 오랫동안 우정과 사랑을 나눌 수 있을 겁니다.

《지혜의 보석상자》라는 책에 이와 비슷한 예가 나옵니다.

자신의 집에서 숯을 굽고 장사를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천을 짜는 직공 친구가 왔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친구에게 제안했습니다.

“자네, 나와 함께 이곳에서 일하지 않겠어? 서로 도움도 되고, 가게를 따로 낼 필요도 없잖아.”

그때 친구가 말했습니다.

“그건 불가능해. 이유는, 내가 흰 천을 만들자마자 자네의 숯이 그걸 검게 만들 게 아니겠나.”

참 지혜로운 친구입니다. 이 친구들은 오랫동안 좋은 사이로 지낼 겁니다. 사랑과 우정에도 ‘예의’가 필요하다는 말은 적절한 거리에서 사랑과 우정을 나누어야 한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가에 따라 ‘자리’가 정해집니다. 좋은 자리일수록 중요한 역할을 맡은 사람을 상징합니다. 대통령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모임에 가든 가장 좋은 자리에 앉게 될 겁니다. 자리가 좋을수록 그 사람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었습니다.

《유머와 화술》이란 책에 프랑스 카르노 대통령과 수행원들을 불쾌하게 한 일화가 나옵니다.

파리에 사는 어느 부자가 유명인사를 초청해 연회를 열었습니다. 그곳에 간 대통령 일행이 연회장에 들어서자마자 곤혹스러워했습니다. 대통령과 수행원들이 앉을 자리가 여느 때와 달리 엉뚱한 곳에 배치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가장 좋은 자리에는 늘 대통령이 앉고 했는데, 이번에는 그가 당연히 앉아야 할 그 자리에 철도회사 사장의 이름이 적혀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좋은 자리는 프랑스 유명 문학가의 자리였고, 다음 자리는 화학 교수의 자리였습니다.

세어 보니 대통령의 자리는 열여섯 번째였습니다. 대통령의 얼굴은 화끈거렸고, 이를 보고 있던 수행원들도 당황했습니다. 그때 한 수행원이 부자에게 물었습니다.

“오늘 자리 배치가 잘못된 게 아닙니까?”

“저는 오늘 우리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 순서로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아니, 그렇다면 당연히 첫 번째 자리는 카르노 대통령이 앉으셔야 하지 않나요?”

“물론 대통령이 가장 위대하시지요. 그러나 제가 오늘 말하는 위대한 사람이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사람을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정한 순서입니다.”

부자는 여기까지 말하고 대통령을 향해 고개를 숙인 후 다시 말을 이어갔습니다.

“대통령께는 오늘의 이 자리 배치에 대해 죄송스러운 마음이 큽니다. 그러나 대통령 자리는 각하께서 물러나더라도 누군가 대신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저기 앉은 철도회사 사장은 우리 프랑스는 물론이고 세계 어디에도 찾을 수 없는 유일한 기술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저 사람이 자리에서 물러나면 그를 대신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다음에 앉으신 문학가나 화학자도 역시 그런 분입니다.”

그러더니 부자는 대통령을 향해 말했습니다.

“각하, 제 생각은 단지 그것뿐입니다. 각하께서 널리 이해하시고 양해해 주십시오.”

이 말을 들은 대통령은 비로소 불쾌한 마음을 걷어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나랏일을 해야 할 자리에서는 대통령이 당연히 가장 중요한 자리에 앉아야 할 겁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모임에서는 중심 자리는 그 모임 성격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에게 배정하는 태도가 옳은 태도일 겁니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을 볼 때마다 존경심이 올라옵니다. 자리가 요구하는 일에는 중심에 서서 정열적으로 일하고, 그 일이 끝나 퇴근한 다음에는 평범한 동네 아저씨, 평범한 동네 아주머니처럼 자연인의 신분으로 돌아갈 수 있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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