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이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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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이 위험하다"
  • 이병기
  • 승인 2011.05.0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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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면 잠복기간 30년 - 180여개 정비사업 추진중인 인천시 대비책 절실


불법으로 석면을 철거한 것으로 밝혀진 부평5구역 재개발지구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사진: 건강한 노동세상)

취재: 이병기 기자

우리 아버지는 비계공(飛階工)이다. 아버지가 만든 '아시바' 위에서 아저씨들은 건물을 짓는다. 10명이 죽고 8명이 다쳤던 1970년 인천제철 용광로 폭발 사건. 노동자들의 목숨이 사그라진 그때부터 아버지는 인천제철 보수공사 작업을 시작했다.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가끔씩 아버지를 따라 현장에 나갔다. 바다가 땅으로 변하고, 땅에는 건물이 들어선다. 40톤, 50톤, 60톤짜리 생산공장이 생겨난다. 아버지는 '아시바'만 세우는 줄 알았는데, 청소와 잡일도 함께 한다. 공사장 주변엔 뿌연 먼지가 자욱하다.

아버지가 인천제철에서 정식으로 일하게 된 것은 1974년도로 기억한다. 1981년 9월 생산공장 건설이 끝날 때까지 12년 넘도록 아버지는 이곳에서 흩날리는 먼지 속에 비계를 세웠다. 우리 가족도 아버지를 따라 8년 동안 인천제철 인근 송림동에서 생활했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 들어 석면 소비량이 급속도로 증가했다. 1950년, 1960년 각 610톤과 631톤이었던 반면, 1970년대 3만664톤을 시작으로 1975년 6만1305톤까지 증가했으며 1985년에는 6만1846톤에 달했다.

당시 석면은 뛰어난 단열성과 내마모성, 인장력, 전기절연성 등의 장점을 뽐내며 건설현장 곳곳에서 사용됐다. 건물의 슬레이트나 천정재 등의 건축자재와 브레이크 라이닝, 석면마찰재, 가스켓, 석면 방직제품 등 산업용을 비롯해 일반 생활 주거 공간에서도 다량이 쓰였다.

나는 이곳에 얼마 만큼의 석면 시멘트가 사용됐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뜨거운 열을 감당해야 하는 용광로 건설 작업에 석면이 빠졌을 리는 없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석면이 아버지의 목숨을 앗아가리라고는 전혀 생각치 하지 못했다.

그간의 경력을 인정받아 인천제철 일이 끝난 아버지는 '도급 오야지(팀장)'가 됐다. 이후 대우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 한진 등의 공사현장에 일을 나갔다. '오야지'를 달았더니 전보다는 현장 일이 줄었다. 예전만큼 뿌연 먼지를 마시지 않아도 됐다.

2008년 날벼락 같은 소식이 들렸다. 아버지가 '악성 중피종'에 걸렸다는 것이다. 나는 잘 모른다. 그러나 의사 말에 따르면 악성 중피종은 보통 석면에 노출된 사람에게 생기는 병이라고 한다. 거의 30년 동안 몸 속에 있던 석면이 아버지의 생명을 옭아맸다.

2010년 1월. 아버지는 72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우리 가족은 근로복지공단에 유족 급여를 청구했다. 공단은 '유해인자'에 노출된 마지막 사업장을 기준으로 판단한다고 했다. 우리는 아버지의 흔적을 따라갔다. 예전 아버지와 함께 현장에서 일했던 아저씨들의 얘기를 듣기도 했다. 

우리 일을 맡은 노무사 말에 따르면 근로복지공단이 산업안전 보건공단에 역학조사 심의를 의뢰한 결과 현대제철(구 인천제철)에 관한 석면관련 보고서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고 한다. 그는 아마도 석면 보고서가 결정적 증거가 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 때문인지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4월13일 석면과 아버지의 죽음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인정했다. 시나브로 스며든 석면이 30년이 지나 한 생명을 앗아갔다. 인천지역에서 완료됐거나 공사 중인, 혹은 예정된 200곳이 넘는 재개발과 재건축 터 주변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30년 후 모습을 생각하면 걱정스럽다고 노무사는 말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중피종이 발생했더라도 석면에 노출됐던 환경을 입증하지 못하면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한다. 건설노동자들은 일일이 계약서를 작성하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건강관리 수첩 등도 작성하지 않는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나중을 위해서라도 건설노동자들의 근무 이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장치를 국가가 강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위 사례는 지난 4월13일 근로복지공단에서 유족급여신청승인을 받은 A씨 가족의 이야기를 담당 노무사인 강경모 노무법인 현장 공인노무사 인터뷰와 공단 제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석면피해 '주민감리단' 구성해야


부평교회 앞에서 공놀이 중인 아이들

"인천에는 현재 총 212개의 정비사업이 완료됐거나 추진중입니다. 석면 피해가 발생하면 막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방책을 만들면 석면으로 인한 주민들의 건강 피해를 막을 수 있습니다. 시는 하루빨리 석면 예방정책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는 추후 석면피해로 발생하는 국가의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합니다." - 장안석 건강한 노동세상 사무국장

현재까지 인천지역에서 완료됐거나 진행중인 재개발·재건축 정비사업이 212곳이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인천시 재개발·재건축 홈페이지에 따르면 3월31일까지 사업이 완료된 곳은 16곳, 공사가 시작된 곳은 7곳, 관리처분인가가 난 곳은 3곳이다. 또 중구 인천역 주변과 남구 제물포역 역세권, 서구 가좌거점의 세 곳은 주민 반발로 재정비촉진지구에서 해제된 상황이다. 

사업시행자는 관리처분인가 이후부터 석면 해체작업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당장 석면관리가 시급한 곳은 총 10곳으로 집계된다. 현재도 중요하지만 더욱 신경을 써야 할 것은 나머지 183곳의 정비사업 지역에서 석면관리가 어떻게 이뤄지냐 하는 점이다. 

앞서 사례에서도 나타났듯이 석면의 피해는 짧게는 10년에서 길게는 30년 이상 잠복기를 거처 나타난다. 인천의 경우 정비사업이 거의 대부분 지역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어디에서도 석면피해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인천대학교가 송도로 이전한 이후 작년 도화동 옛 인천대 본관과 공학관 등의 건물 내부 철거 과정에서 석면 피해의 우려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당시 인천대학교와 계약을 맺었던 한 업체는 건물 내 재활용품을 수거하면서 석면이 포함된 천정 텍스를 아무런 조치 없이 뜯어내 인근 학교와 주택가에 석면 분진을 비산시켰다.

다행히 인천대 주변 주민들과 환경단체에서 석면 방치 사실을 적발해 공사를 중지시키고 그 심각성을 알렸다. 인천시는 선 석면제거, 후 건물 해체를 원칙으로 인천시 석면협의회와 주민감시단을 구성했지만, 지금은 활동이 미미한 상태다. 

최근에는 부평5구역 재개발지구에서 석면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

부평5구역 재개발지구는 전체 세대수 중 약 20%가 석면이 7~15% 함유된 슬레이트 지붕의 영세가옥이었으며, 주상복합과 상가 건물에는 석면이 3~5% 함유된 천정재(텍스)와 밤라이트(화장실 칸막이 용도) 등이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부평5구역 내 종우빌딩의 석면 처리 확인 결과 천정에 뜯다 만 텍스가 그대로 남아 있다.

주민들은 석면이 함유된 슬레이트가 2008년 8월부터 방치돼 있었고, 철거과정에서 다량의 석면 가루가 비산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재개발 지구 내 위치한 부평교회는 2년 넘도록 석면철거공사 현장에 있었으며, 인근에는 어린이집과 학교, 노인정, 도서관 등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주민들의 신고로 현장에 나온 노동부 인천북부지청 감독관은 해당 지역이 석면 불법철거와 파손된 석면 잔재로 인한 오염 건물임을 확인했으며 작업중지 명령과 작업자 출입 금지, 석면 오염정화 작업 실시 등을 업체에 지시했다. 이번 조치를 받은 업체는 지난 2010년 9월경에도 석면 불법 철거로 벌금 200만원을 낸 것으로 드러났다. 

장안석 사무국장은 "석면 철거업체는 불법으로 석면을 해체하는 게 벌금을 내는 일보다 이윤을 더 많이 낼 수 있어 이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라며 "정부의 솜방망이 처벌을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에서 시행하고 있는 것처럼 인천시도 '주민감시단'이 아닌 '주민감리단' 개념으로 강화한 주민감시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처음 석면 조사시부터 폐기물 매립까지 전 과정을 점검하는 기구가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인천시는 최근 각 기초단체별로 재개발 지역 주민과 시행사 등이 함께 모여 재개발·재건축 주민감시단을 구성하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황인근 인천시 환경정책과 생활환경팀장은 "노동청 감독관이 인천지역의 모든 석면관리 현장에 나가기는 인력 등에서 한계가 있다"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정비사업 인근 주민들이 직접 나서서 석면 피해를 관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황 팀장은 "행정적인 권한이 나눠져 있기 때문에 인천시가 석면 유출 업체를 직접 처벌할 수는 없다"면서 "노동부에 관심을 갖고 시민을 위해 열심히 해달라고 당부하는 방법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또 지난 도화동 인천대 부지 석면피해 과정에서 추진됐던 인천시 석면관리 조례안은 국회에서 계류중인 '석면안정관리법'이 공포된 이후 본격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시 관계자는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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