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울 작은 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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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울 작은 자매
  • 강태경
  • 승인 2020.07.29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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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강태경 / 인천노인종합문환회관 소통의 글쓰기반

셋째 언니는 나하고 아홉 살 차이다 오빠는 다섯 살 차이. 그래서 어릴 땐 항상 세 살 아래 동생과 놀고 싸우고 부딪치며 살았다. 엄마가 외출하시고 집안 식구 모두 나가고 없을 때는 항상 동생이 내 놀이감이 된다.

“OO아 머리 지질래? 내가 예쁘게 해 줄게” “응 해줘” 동생을 부엌으로 데려가 연탄 뚜껑 열고 연탄구멍이 막힐 때 쑤시는 쇠부지깽이를 연탄불에 꽂아 넣는다. 좀 있다가 꺼내면 불이 벌겋다 아무래도 이 부지깽이로는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벌겋게 단 쇠부지깽이를 부뚜막에 잠시 식힌다. 이제는 될 것 같다 부지깽이를 동생 머리 가까이에 대고 한 손으로는 머리카락을 조금 잡아 부지깽이에 감는다 연기가 풀풀나고 머리카락 타는 냄새도 난다. 부지깽이를 얼른 떼어내고 조금 더 식혀야 된다고 생각한다. 머리카락을 보니 오글오글 됐는데 좀 탄 것 같다 만져보니 부셔지기도 한다.

좀 더 식힌 부지깽이에 그 다음 머리카락을 조금씩 감는다 앞 머리가 완성 되었다. 놀노리하고 여린 머리카락이 들려 올라가 이마가 좀 더 튀어 나와 보인다. 아무래도 예쁜 것 같지는 않다. 갑자기 엄마한테 야단맞을 생각을 하니 걱정이 된다. 엄마가 들어오실 것 같은 시간에 동생 혼자 두고 살짝 집을 나간다. 지루하게 여기저기 날이 어둑할 때까지 혼자 논다. 아버지가 퇴근 하실 때를 기다렸다가 같이 들어온다. 엄마에게 물론 야단을 맞았다. 아이들 외모에 그다지 신경 안 쓰는 어머니는 물만 묻히면 금방 풀어지는 걸 아셨던 것 같다 많이 혼내시지는 않았다.

“우리 부침개 해 먹을래?”

“응, 해 먹자” 오늘도 집에 동생과 둘이다.

밀가루 풀고 후라이팬을 연탄불에 올려 기름도 두르고 하얀 부침개를 그럴듯하게 만들었다 맛을 보니 영 맛이 없다. “어어 똑같은데!” 그 맛없던 부침개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다 소금을 넣을 줄 몰랐다는 걸. 또 어느 날은 엄마가 복주머니 만드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이걸로 복주머니 예쁘게 만들어 줄게.” “만들면 나 줄거야?” “그래, 이리와 봐” 동생을 데리고 작은방에 가서 쪼그리고 앉아 그동안 모아 두었던 천 조각을 보여 주고 재단한다. 쉽지 않다. 며칠이 걸렸다. 구멍도 뚫고 끈도 꿰었다. 엄마가 만든 모양이랑 비슷하다. 그런데 입이 열리지 않는다.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주머니 입이 열리지 않아 동생에게 선물은 주지 못했다. 몇 년 더 자란 후에 알았다 주름을 한 쪽씩 따로따로 접어서 끈을 꿰어야 한다는 것을!

내 작품이 시원찮아도 동생은 나만 따라 다녔다. 하지만 동생이 커가면서 갈등이 생기기도 하였다. 딸 다섯에 아들 하나인 우리 부모님에게 오빠는 떠받들어 모셔야할 존재다. 동생 역시 엄마에겐 같은 손가락을 깨물어도 막내가 더 아픈 애닯은 존재였다. 가운데 끼인 나는 심부름꾼에다 일꾼이었다.

 

어느 날 엄마가 밭에서 솎은 어린 배추를 우물에 가서 씻어 오라고 하셨다. 동생도 같이 따라왔다. 두집 걸러 밭모퉁이에 있는 우물은 장마가 지면 좀 뿌연 물이 지상에 가까워지게 많고 가물면 물이 내려간다.

어느 해는 너무 가물어 나는 우물 바닥으로 내려가 조금씩 나오는 고인 물을 바가지로 두레박에 퍼 담고 위에서 두레박을 끌어올리기도 했다. 그래도 물은 늘 충분한 편이었다. 우물 가장자리는 바닥을 떼어낸 드럼통을 엎어 놓았다. 삼단 중 한 단 정도가 위로 올라와 있다. 성인들 무릎 정도 높이가 된 것 같다 두레박으로 퍼 올리는 물 때문에 늘 녹이슬어 있었다. 녹물이 줄줄 흘러 내리지는 않았다. 우물 속 둘레는 돌로 울툭불툭 쌓아서 조심하면 잘 내려갈 수 있었다.

오늘은 물이 맑고 깊은 날이다. 우물 옆 넓은 돌 위에서 배추를 씻고 대야에 물을 버려야 한다. 동생이 바싹 다가와 있다. “옷 버려, 뒤로 좀 물러나” 동생이 뒷걸음질하다 우물에 퐁당 빠졌다. 동생이 빠져 사라진 우물을 내려다 본 나는 가슴이 철렁!서늘했다. “엄마 ~ 엄마 ~” 소리치며 발이 땅에 닫는둥 마는둥 집으로 달려갔다 “엄마! 엄마! OO이가 우물에 빠졌어” 허둥대기는 엄마도 마찬가지다. 갈고리 달린 밧줄이 있어야 하나? 뭐로 건지지? 갈팡질팡하다가 모두 우물가로 달려갔다.

동생은 지나가던 어떤 아저씨에 의해 이미 우물 밖으로 건져 내어져 있었다. 그 후로 나는 기억이 없다. 지나가던 어떤 아저씨가 동생이 빠지는 것부터 봤는지, 혼비백산하여 집으로 달려가는 나를 봤는지는 알 수 없다. 그 아저씨가 우물을 들여다보니 깊게 빠졌던 동생이 떠올라 양쪽 팔로 튀어나온 돌을 잡고 버티고 있는 걸 들어가 안고 올라왔다고 한다.

동생은 앞뒤가 약간 튀어나와 동글동글한 두상에 가늘고 노르스름한 머리카락을 가졌다. 엄마는 잘 빗겨지지 않는 동생 머리를 빗겨주시면서 “성질머리를 닮았나, 머리는 왜 이리 찌드릉째드릉 하는 거야?” 하시면서도 막내의 머리를 쓰담고 또 쓰담으시곤 하셨다. 목탁같이 예쁜 그 막내딸 잘못 되었으면 나는 내 명대로 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 어린 시절 다 잊고 그 후로도 나는 늘 동생과 다투고 싸우면서 자랐다. 어머니는 시비를 가리지 않으셨다. 아예 가릴 필요가 없었다. 싸움하다 들키면 나는 언제나 부정심판 어머니에 의해 판정패를 당하여 혼나기만 했으니까. 지금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어머니가 동생만 안고 쓰담쓰담하셨던 것은 동생의 인생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나는 단호하게 말하곤 한다. 지금도 제 부탁 들어주지 않으면 삐쳐 동생은 우리 집에 오지도 않으니까. ‘그래도 네가 있어 나는 풍요롭게 살 수 있었다. 건강하게만 살아라. 내 동생 막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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