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당신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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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당신을 만났습니다"
  • 인천in
  • 승인 2020.08.03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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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의 행복산책]
(110)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별인사

풍경 #150.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별인사

 

《누군가 미워질 때 읽는 책》에 개구리 세 마리 이야기가 나옵니다.

무지개 연못 한가운데 작은 섬이 하나 있었습니다. 연못가에는 조약돌들이 깔려있고 잡풀들이 우거져 있었습니다. 그 섬에는 툭하면 싸우는 개구리 세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날이 샐 때부터 공연히 옥신각신 말다툼을 했습니다.

“연못에 들어오지 마. 이 물은 내 거야.”

“그 섬에서 나가! 그 땅은 내 거야!”

“하늘은 내 거야.”

이런 식으로 매일 싸우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갑자기 하늘이 어두컴컴해지면서 멀리서 천둥소리가 울리더니 번개가 쳤습니다. 섬은 순식간에 거센 물줄기에 휩싸이게 되었고 빗줄기가 하늘을 메우더니 연못은 온통 흙탕물이 되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물이 불어나 섬은 점점 작아졌습니다. 개구리들은 춥고 겁이 나서 덜덜 떨었습니다. 그들은 거세게 출렁이는 시커먼 물 위에 아직 솟아 있는 몇 개 안 되는 미끄러운 바위 위에 매달렸습니다.

그러나 바위들도 곧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바위가 하나 밖에 남아 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개구리들은 모두 그 위에 웅크리고 앉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셋이 그렇게 붙어 있으니까 점점 무서움은 덜해지고 함께 희망을 나누게 되자 마음이 든든해졌습니다. 그렇게 얼마를 지나자 연못의 물이 조금씩 빠지더니 다시 연못은 제 모습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개구리들은 이제 더이상 다투지 않고 사이좋게 살았습니다.

위기상황에서는 서로 의지하게 되지만, 위기상황에서 벗어나면 그때부터 다투기 시작하는 게 인간의 심리인가 봅니다. 동화 속 개구리들도 같습니다. 평화롭고 먹고 살 만할 때는 으르렁거렸던 개구리들이 위기가 닥치자 그제야 비로소 서로에게 의지하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평화로울 때도 자신의 곁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살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위기는 사람을 바꾸어놓곤 합니다. 코로나19가 우리의 일상을 바꾸어놓은 것처럼 말입니다. 지극히 사소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코로나를 통해 알게 된 것은 참 좋은 일인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병상에 둔 가난한 시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무명의 전업 작가이어서 원고료도 몇 푼 되지 않았고 여기저기서 부르는 강의 요청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있는 병원까지 걸어가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집에서 병원까지는 무려 십여 킬로미터나 되었습니다. 시인은 철둑길 사이에 핀 꽃을 꺾어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삼 년째 깨어나지 못하고 누운 아내 곁에 그는 꽃을 조심스레 놓았습니다. 그 옆에 예쁜 그림엽서도 한 장 놓았습니다. 엽서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당신이 내 곁에 있어서 행복해.’

그날은 아내의 생일이었습니다.

김형수 선생이 쓴 《긍정의 생각》에 나오는 이 예화를 읽으면서 제가 병상에 누운 아내를 둔 남편이 되어보았습니다. 엽서에 ‘당신이 내 곁에 있어서 행복해.’라는 글을 쓸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철길에서 꺾은 꽃과 슬픈 사랑의 심정으로 쓴 엽서를 아내의 머리맡에 놓을 때의 심정은 또 어땠을까. 미소를 지으면서 놓았겠지만, 마음속엔 눈물이 바다를 이루었을 겁니다.

이번에는 삼 년째 식물인간으로 사는 아내가 되어보았습니다. 남편을 생각해봅니다. 생활력은 없지만 그래도 착한 남편입니다. 신혼 때는 그에게 희망도 걸어보았습니다. 돈 벌어올 생각은 하지 않고 구석방에 종일 앉아 시를 쓰는 그가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병들어 꼼짝도 못하고 죽음만을 기다리는 지난 3년 동안 그렇게도 답답했던 남편, 버스비도 없어 걸어오는 남편, 그러나 그 사람만이 병실을 찾아주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미안했습니다. 그동안 더 잘해주지 못해서 말입니다. 이젠 잘해주고 싶어도 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나는 죽음이 두렵습니다. 그러나 늘 남편이 곁에 있어 줍니다. 참 고맙습니다.

《참 좋은 당신을 만났습니다》에 짧지만 강렬한 삶의 메시지를 주는 글이 있습니다.

“평생 산골에서 일하느라 허리가 굽고 치아는 하나밖에 없는 99세 노모를 위해 손수레를 만들어 900일 동안 여행한 74세 아들이 있다. 나는 제목을 이렇게 붙이고 싶다.

‘당신과 함께 하는 시간이 내 생에 가장 행복했습니다.’

저도 이런 작별인사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또 이런 작별인사를 들을 수 있는 저이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사는 동안 많은 사랑을 나누어야만 할 겁니다. 그 사랑이 아름다운 추억의 앨범 속에 차곡차곡 쌓여 세상을 떠날 때 그런 작별인사를 하고, 들을 수도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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