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전달하는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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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전달하는 목소리
  • 정민나
  • 승인 2020.08.06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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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나의 시 마을]
아벨의 중고서점 - 김희중

아벨의 중고서점

                                  - 김희중

선택받은 자의

성스러운 제물

순결한 양의 피

대속을 위한 피

아벨서점 이곳에

이런 이름으로

끝까지 내쳐지지 않는

양서의 초원에서

양껏 풀을 뜯는

순수한 어린양들

귀한 작품을 받쳐든

에덴의 동산은

역사와 문화가 느티나무처럼

유장하게

배다리 책방골목에서

새로운 잎을 피워내고 있다

우리가 힘들고 지칠 때 우리 곁에 정서적으로 육체적으로 균형을 잡아주는 존재가 있다면 얼마나 복된 일인가? 코로나 19로 지난 학기 재택 수업을 하면서 필자는 한 학기 나름 분투한 때문인지 방학이 되었는데도 피로한 마음과 몸이 회복되지 않았다. 그것을 알고 멀리 사는 딸이 싱싱한 화분을 몇 개 보내 주었다. 그 화분을 들여놓고 그 자리에 있던 시들한 화분은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아파트 문고 야외 베란다에 가져다 놓았다. 우선 충분히 환기를 시켜주고 우기에 적당한 습도와 온도로 되살아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김희중의 아벨의 중고 서점에 나오는 아벨은 하나님에게 성스러운 재물인 양의 피를 받치는 돈독한 신앙자이다. 신에게 사랑을 받는 동생 아벨을 질투한 나머지 형인 카인은 아베를 죽이는데 인간의 죄를 대신한 것이 순결한 양의 피와 선량하고 순수한 아벨의 생명이었다면 시인은 아벨의 서점 또한 대속의 동일한 의미로 본 것이다.

아벨 서점은 새 책방이 아니라 중고 서점이다. 원래 책 주인이 내어놓은 책을 새롭게 진열하여 필요한 사람들이 읽게 하는 이 행위는 대속과 가까운 의미의 부활을 상기시킨다. 그리하여 이 중고서점에 진열된 책들은 끝까지 내쳐지지 않는 순결하고 성스러운 양의 피와 같은 사물이 된다. 이 때 시인은 양서로 치환하는 위트와 순발력을 발휘한다. 양이 대속을 위한 피가 되어 새로운 생명들을 살렸다면 양서들은 초원에서 양껏 풀을 뜯는 어린양처럼 학생들과 젊은이들의 영혼과 정신을 되살리는 성스러운 제물이 된다.

가난하고 쇠락한 존재들을 치유하도록 돕는 사람이나 동물이나 사물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을 상기할 때 독자는 다시 사랑과 아름다움을 느낀다. 지리멸렬한 삶과 자기와의 화해는 치유의 전망으로 시를 쓰는 시인을 만났을 때도 가능하다.

시인 정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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