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과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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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과 욕망
  • 김선
  • 승인 2020.09.01 1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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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당과 고전읽기 도전하기]
(2)이방인-㉔면회온 마리와 죄수인 뫼르소

인천in이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서유당과 함께 어렵게만 느껴지던 동·서양의 고전 읽기에 도전합니다. ‘서유당의 고전읽기모임인 하이델베르크모임Jacob 김선(춤추는 철학자), 김현(사회복지사), 최윤지(도서편집자), 서정혜(의류디자이너), 소순길(목사), 이광남(칼럼니스트)’ 등이 원서와 함께 번역본을 읽어 내려가며 삶의 경험을 나누고 있습니다.

 

두 번째 고전읽기- 알베르 카뮈(김화영 역), 이방인 L’Etranger, 민음사.

: Jacob 김 선

 

Entre les deux grilles se trouvait un espace de huit à dix métres qui séparait les visiteurs des prisonniers.

두 철책 사이에는 팔 미터 내지 십 미터가량 되는 간격이 있어 면회인과 죄수를 갈라놓고 있었다.

 

  뫼르소는 면회실로 가기 위해 기다란 복도를 거쳐서 층계를 지나 끝으로 또 다른 복도를 따라갔다. 누군가를 만나는 여정이 힘겹다. 널따란 창으로 빛이 들어오는 아주 큰 방에 들어섰다. 방은 길이로 칸을 지르는 커다란 철책 두 개로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다.

 

BBS News, 2015.09.10
BBS News, 2015.09.10

 

비무장지대처럼 가운데 부분인 두 철책 사이에는 팔 미터 내지 십 미터가량 되는 간격이 있어 면회인과 죄수를 갈라놓고 있었다. 앞으로 그 거리이상으로 단절될 것이다. 뫼르소 앞에는 줄무늬 옷을 입고 얼굴이 햇볕에 그은 마리가 보인다. 아직은 무언가가 보이는 다행스런 상황이다.

  뫼르소가 서 있는 쪽에는 수감자들이 몇 명 있었는데 대부분이 아랍인들이었다. 수감자인 뫼르소 본인은 물론 아랍인들도 뫼르소가 낯설다. 뫼르소만큼이나 마리도 무어인들에게 둘러싸여 면회 온 두 여자 사이에 끼여 낯설어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입을 꼭 다물고 있는 검은 옷차림의 키가 자그마한 노파이고 또 한 사람은 뚱뚱한 맨머릿바람의 여자인데 몸짓을 많이 섞어 가며 목청을 돋워서 지껄이고 있었다. 기운이 남아 있는 자의 외침처럼 들린다. 철책 사이의 거리 때문에 면회인이나 죄수들은 아주 큰 소리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다들 보이스 콘테스트하고 있다.

  뫼르소가 방안에 들어섰을 때 소란한 목소리가 방의 크고 텅 빈 담벼락들에 반사되어 울리고 하늘에서 유리창들 위로 흘러내린 세찬 빛이 방안으로 뻗쳐 있었다. 면회가 처음인 뫼르소는 정신이 얼떨떨할 것이다. 본래의 자리로 가고 싶을 것 같다. 뫼르소의 감방은 그보다 조용하고 어두웠다. 면회 공간에 익숙해지는 데는 잠시 동안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마침내 뫼르소는 밝은 빛에 드러난 얼굴 하나하나를 똑똑히 볼 수 있게 되었다. 무언가를 볼 수 있을 때가 다행인 것을 지금은 알 수 없을 것이다. 간수 한 사람이 철책 사이의 복도 끝에 앉아 있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대부분의 아랍인 죄수들과 그 가족들은 서로 마주 향한 채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들은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다. 체념의 외침인 것이다.

  그처럼 소란스런 가운데도 그들 사이에 나직한 말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이 신기하다.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그들의 희미한 속삭임은 그들의 머리 위에서 교차하는 말소리에 대해 일종의 지속적인 저음부를 이루고 있었다. 아랍인들 의사소통의 음향을 읽고 있을 여유가 있는 것이 놀랍다. 그러한 모든 것을 뫼르소는 마리에게로 다가가면서 한순간에 알아챘다. 벌써 철책에 달라 붙어서 마리는 있는 힘을 다해 자신에게 웃어 보이고 있었다. 뫼르소가 웃을 순 없으니 그녀가 웃는 것일 수도 있다. 뫼르소는 그녀가 매우 아름답다고 생각했으나 그런 말을 그녀에게 하지는 못했다. 웃음을 멈추게 할 마력이 뫼르소에게 있는 것 같다.

  어떠냐고 마리는 큰 소리로 말했다. 그냥 그렇다고 뫼르소는 답하며 잘 지내는지 마리에게 묻는다. 뭐 필요한 것은 없냐고 마리는 묻고 아무것도 없다고 뫼르소는 답한다. 거리의 단절이 대화를 단백하게 하고 있다. 말이 끊어지고 마리는 여전히 웃고 있다. 할 수 있는 유일한 제스처다. 뚱뚱한 여자는 뫼르소 옆의 남자를 향해 울부짖고 있었다. 아마 그녀의 남편인 듯 솔직한 눈매를 지닌 키가 큼직한 금발의 사내였다. 울부짖음이 대화인 것이다. 그들은 무슨 말인지 이미 시작된 대화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 마리는 레몽이 안부 전하더라고 소리를 질러 말하자 뫼르소는 고맙다고 답했다. 그러나 뫼르소의 목소리는 옆 사내의 목소리에 뒤덮여 버리고 말았다. 보이스 콘테스트라는 점을 잊고 말하니 당연한 결과다. 뫼르소의 왼편에 있는 손이 가냘프고 키가 작은 청년은 아무 말이 없었다. 이 청년은 보이스 콘테스트에 관심이 없으니 조용한 것이다. 뫼르소는 청년이 자그마한 노파와 머주 대하고 있으며 두 사람 다 서로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뫼르소는 그들을 더 관찰할 여유가 없었다. 희망을 품어야 한다고 마리가 외쳤기 때문이다.

 

워터하우스 - 판도라Pandora, c.1896, private collection.
워터하우스 - 판도라Pandora, c.1896, private collection.

 

 판도라의 상자에서 나오지 못한 유일한 선인 희망이라는 말을 하는 마리는 뫼르소에게 모든 선물즉 판도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말이 뫼르소에게 들리는 지금은 희망적이다.

  뫼르소는 그럼하고 대답했다. 그와 동시에 뫼르소는 마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입은 옷 위로 그녀의 어깨를 꼭 껴안고 싶었다. 뫼르소는 얇은 천에 욕망을 느꼈고 그 천 말고 또 무엇에 희망을 품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욕망의 지점과 시점은 사람마다 다른가 보다. 마리가 하고자 한 말도 아마 그런 뜻이었으리라고 착각까지 한다. 마리가 줄곧 미소를 짓고 있었다는 사실 만으로 말이다. 이제 뫼르소의 눈에 보이는 것은 그녀의 반짝이는 치아와 눈가의 잔주름뿐이다. 마리의 눈에는 무엇이 보였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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