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책방, 더 많이 더 널리 퍼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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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책방, 더 많이 더 널리 퍼져야
  • 홍지연
  • 승인 2020.09.04 14: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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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방, 그 너머의 기록]
(22) 홍지연 / '책방 산책' 책방지기
2시간만에 고른 세 권의 책

 

책방지기의 24시

띵똥~ 카카오톡이나 문자로 책 주문이 들어온다. 정기적으로 책을 사러 오는 단골들이거나 새로운 책들을 나보다 더 빨리 알아채는 ‘책사랑꾼’ 독자들이다. 빠르게 메모를 하고 잊지 않도록 오늘의 주문 책 목록을 정리해둔다. 예전 같으면 문을 열고 책방을 지키고 있을 시간에 책방지기는 종일 핸드폰을 옆에 두고 노트북 앞에 앉아 있다. 언제 어느 때 전화와 문자, sns로 주문이 들어올지 모르니 상시대기다. 상시대기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새벽 1시. 오전 11시에서 낮 12시 사이에 도매처에서 책이 온다.

손님들 주문책과 책방지기가 큐레이션 한 책들이 매일 들어온다. 들어온 책들을 정돈하고 오전 비대면 배달, 워킹·드라이브 스루 배달을 한다. 배달을 마치고 책방에 들어와 환기와 청소를 하고 오늘은 또 어떤 새로운 책들이 나왔는지 살피고 키워드를 정리하여 앞으로 들어올 책 목록을 작성해 둔다. 예약손님이 있을 경우엔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 오후 3~4시쯤 두 번째 책들이 도착한다. 출판사 직거래 책이거나 주 도매처에 없는 책들이 들어온다. 시 한편, 안부를 묻는 메모를 간단히 써 넣어 택배 나갈 책들을 싸두고, 저녁 배달 준비를 한다.

당일 주문, 당일 배송! 10% 할인과 5% 적립, 단 한 권도 배송비 무료인 시대에 이곳의 독자들은 불편을 무릅쓰고 ‘천천히, 조심히’를 당부하며 책을 많이 주문하지도 못하는데 배달까지 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한다. 책방지기는 할인과 적립, 빠른 배송도 못해주는데 단 한 권이라도 이곳에서 주문하고 기다려주는 독자들에게 미안하다. 서로가 서로를 지키는 일이 거리를 두는 일이니 만날 날을 기다리며 이 시간을 위로하고 응원하며 차분히 견디고 있다.

단 한권의 주문도 소중한 날들

 

 

 

 

 

 

 

 

 

독자들의 이야기가 숨 쉬는 곳, 동네책방

언택트 시대, 온라인 시스템을 밀쳐두고 이곳을 찾는 이유는 뭘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만 3년 동안 골목길 안 작은 책방에서 펼쳐진 일들을 떠올린다. 어린이 마을학교로부터 시작한 어린이 독서모임, 청소년 독서모임, 주민독서모임 등 각종 독서모임과 글쓰기 모임, 저자와의 만남과 심야책방, 책방나들이. 이곳을 찾는 독자들은 책을 주문하고 읽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놓거나 타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곳, 여기에 오면 마음껏 누구하고나 책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책방의 서가는 책방지기 개인의 개성과 취향을 넘어 동네와 마을, 지역 독자들의 개성과 취향이 담긴 서가로 변해간다. 새로 나온 책을 살필 때에도 단골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미처 알지 못했던 분야와 내용의 책들을 독자들이 가져다 놓으면 좋겠다고 활발하게 권하기도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책에 대한 이야기는 개인을 넘어 동네책방에 쌓인다. 책 필사모임도 하고 책갈피 뜨개모임도 해보자 하고, 오래된 그림책을 팝업북으로 만들어 보자, 만나고 싶은 저자를 모셔 오자고도 한다. 책방 문 앞에서 ‘여기가 뭐 하는 곳인가’ 머뭇대던 아이들과 ‘여기서 책이 팔리겠냐’며 안타까워하던 이웃들은 이제 ‘여기서 무슨 재미난 일을 해볼까’ 반가운 아이디어들을 끝없이 내어놓았다.

 

지난 6월 시인들과 함께 한 온라인 북토크

 

온라인 대면을 준비하는 시간

아이디어들을 모아모아 하반기에 야심차게 준비했던 책방 행사들이 모두 잠정 연기되거나 비대면으로 전환되었다. 책방지기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책을 살피고 들여다보는 일이 하루의 절반 이상이어야 하는데 요즘은 비대면 온라인 준비로 하루의 절반 이상을 보낸다. 밴드톡과 카카오라이브톡 sns 라이브를 하나씩 테스트 해가며 만남을 준비한다. 아이들에게 며칠에 걸쳐 전화를 했다. 종일 집에서 온라인 수업만으로도 지쳐있는데 온라인 독서모임을 하는 것이 힘든 일은 아니겠냐고 물었다.

아이들은 대부분 독서모임을 하고 싶다 했다. 만나면 더 좋겠지만 어떤 방법으로라도 책수다를 실컷 떨고 싶다고 했다. 성인독서모임 ‘술독-술술 읽는 독서모임’도 읽은 책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올리고 그 글에 댓글을 다는 방식으로 모임재개를 시작하자고 했다. 9~10월에 있을 3인의 저자 북토크도 온라인으로 진행한다. ‘비대면’은 물리적인 거리두기일 뿐 우리는 여러 방법을 통해 ‘대면’하고 ‘손’ 잡고 있다. 동네, 마을, 지역사회의 ‘관계 맺기’는 계속되고 있고 그 안에서 오히려 작은 공동체의 힘을 느끼고 있다.

지난 6월 온라인북토크 촬영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2017년 남해 바닷가 통영의 작은 출판사에서 나온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이미경>이란 책이 잔잔한 돌풍을 일으켰다. 작가가 20여 년 동안 그린 200여 점의 구멍가게 작품 중 80여 점을 직접 쓴 글과 함께 엮어낸 책으로 독자들에게 따스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위로와 감동을 주는 책, 3대가 함께 읽을 만한 책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책이다.

그 즘 우리 동네 마지막 구멍가게가 사라졌다. 모퉁이 가게 바깥엔 평상이 있었고, 조립식 앵글(선반)마다 가게 주인의 손길에 따라 각종 먹을거리와 잡화들이 가지런하게 놓여있던 곳이 24시간 대형 프랜차이즈 슈퍼마켓이 되었다. 정감 있던 오래된 단골 구멍가게, 평상은 사라졌고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판매대를 가진 곳이 되었다.

간판을 바꿔 단 날, 장사가 잘 되지 않았느냐고 물었을 때 아주머니는 “자리도 괜찮고, 워낙 오래 해서 자리 잡은 곳이라 장사가 안 되지는 않았어요. 아휴, 유통이 너무 힘들어서 일일이 도매체크하고 가격도 천차만별이고 수수료를 내더라도 이게 낫겠다 싶어서 바꿨지. 근데 가게 문을 24시간 열어야 한다니까 그게 또 힘이 드네. 그래서 온 식구가 돌아가면서 지켜요. 우리 애들이 도와주겠다며 바꿔보자고 해서 바꿨는데 애들이 또 힘들어 하네. 이래도 저래도 먹고 사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에요.”

큰 돈을 쥔 재벌그룹들은 대형마트를 넘어 동네슈퍼마켓을 거의 잠식했다. 유통과 물류 시스템에 투자하고 편리함을 앞세워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던 작은 구멍가게들을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곳으로 똑같이 만들고 거기에 자신들의 간판을 내걸었다.

요즘 동네책방들의 가장 큰 이슈는 ‘도서정가제법 개악’이다. 2014년 개정된 현행 ‘도서정가제’가 완전하지는 않지만 사라져갔던 작은 책방들을 차츰차츰 동네 곳곳에 보이게 했다. 2015년 전국 101개에 불과했던 독립서점은 2020년 650개로 대폭 늘어났고, 지역에서 전통적인 서점으로 자리를 지키던 서점들은 감소폭이 대폭 둔화됐다. (2013년 2,331곳→ 2015년 2,165곳 → 2017년 2,341곳 → 2019년 2,312곳)

도서정가제 법이 개악되면 고유의 동네마다 갖는 독자들의 이야기들이 쌓이고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동네책방들을 모조리 문 닫게 만들고 말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엔 큰돈을 쥔 20년 동안 유통과 물류시스템에 투자한, 편리함을 앞세운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들의 간판을 내걸은 서점들이 자리할 것이다.

그 곳에 동네와 마을, 지역의 책 이야기들은 과연 차곡차곡 담길 수 있을까? 부디 어느 날 <나와 우리의 이야기가 담겨 행복했던 동네책방의 날들>이 란 책이 출간되지 않기를 바라며, ‘도서정가제 개악 반대’ 지지 서명을 퍼 나른다. 그리고 어느 날엔 ‘완전정가제’가 도입되어 읽고 나누고 쓰고 나누며 저마다의 책과 함께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쌓여가는 ‘동네책방’이 더 많이! 더 널리! 퍼지길.

[도서정가제 개악반대 지지 서명] https://bit.ly/3gjhr9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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