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 가기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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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 가기 싫어요"
  • 장현정
  • 승인 2020.09.0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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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치료 가족의 세상살이]
(111) 언어의 자기조절 기능 - 장현정 / 공감미술치료센터장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일곱 살 아들 돌돌이가 말했다.

아이, 오늘 치과 가는 날이야? 치과 가기 싫어

밥맛도 없는 듯 뒤적거리며 뮝기적 뮝기적 밥을 먹었다. 아침을 먹는 내내 아이는 말했다.

 

치과 안가고 싶어. 꼭 가야돼?  안가면 안돼?”

치과 가야 해서 기분이 안좋아.”

치과에서 이빨에 주사 놓는 것 그것 때문에 싫은 거야.”

 

치과에 가야만 하는 이유를 아이도 알고 있다. 이미 여러 차례 설명했다. 그래도 치과 치료가 너무 무섭고 싫은 모양이라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아이의 말에 매번 진지하게 대답해주기가 번거로울 정도로 계속 묻고 또 물었다. 그래서 아이의 질문에 그래. 엄마도 치과 싫어해. 그래그래.” 정도로 대답을 하며 겨우겨우 밥을 먹였다.

 

아이는 오늘 이빨을 하나 빼야 한다. 이전에 치료했던 치아에서 염증이 생겼다고 한다. 또한, 떼워야 할 치아가 하나 더 있다고 한다. 마취는 꼭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는 현관 앞에서 느릿느릿 신발을 신고 차에 타는 순간에도 툴툴댔다. 그러다 갑자기 물었다.

 

나 오늘 치과치료 받으니까 선물 하나 사주면 안돼?”

 

교정을 시작했다는 또래 친구가 큰 장난감을 하나 받았다는 말이 떠올랐나보다. 지난번부터 갖고 싶어하던 장난감이 있었는데 이참에 장만하고 싶었는지... 영리한 녀석. 하지만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앞으로 영구치가 나올 때마다 계속 이빨을 빼야할텐데 매번 장난감을 사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치과 문 앞에서도 안가고 싶다던 아이는 의외로 씩씩하게 치료를 잘 받고 나왔다. 물론 마취를 하는 순간에 잠깐 울기는 했지만, 이빨은 언제 빠졌는지도 모르게 쑥 빠져있었다. 본인도 이빨이 너무 쉽게 빠져서 의아했던 모양이었다. 여세를 몰아 떼우는 치료까지 순식간에 마쳤다. 아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치료가 그렇게 아프고 힘들지 않았던 것이었다. ‘생각보다 쉽네 뭐’ 하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집에 돌아왔다.

 

아이는 처음 빠진 앞니가 신기한지 계속 거울을 들여다 보고 빠진 치아 구멍 사이로 혀를 내밀곤 했다. 친구들과 친구엄마들, 선생님들을 만나면 이빨을 보여주며 자랑을 했다. 그동안 이빨을 먼저 뺀 친구들이 꽤나 부러웠었나 보다.

 

사실, 치과 가기 전에 너무 말을 많이 해서 듣기 힘든 정도였다. 가야 할 것을 알면서도 왜 저렇게 같은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또 묻고 저러나 싶기도 했다. 유아들은 어른들처럼 속으로 말하는 기능을 아직 잘 사용하지 못한다. 어른들은 속으로 생각하고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말들이 훨씬 많지만, 아이들은 아직 모든 생각을 말로 표현한다.

 

그래서 나의 아들 돌돌이는 자신이 두려워하는 모든 두려움을 수 많은 말들로 표현했던 것이다. 끊임없이 두렵고 두렵고 두렵다고 말이다. 같은 생각이 계속 들고 같은 마음이 계속 들었기 때문에, 당연하게 같은 이야기를 계속 했던 것이다. 말을 막는 것은 아이들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막는 것과 같을 수 있다.

 

언어의 여러 기능 중에 또 다른 중요한 기능은 자기조절기능이다. 때문에 언어 발달이 지연되는 경우, 짜증이나 과격한 행동 빈도가 더 높아질 수 있다. 아이가 계속 말을 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불안을 다스리기 위한 하나의 방법인 것이다. 막상 돌돌이가 치과에 가서 무사히 치료를 잘 받고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전날부터 계속 말로 자신의 불안을 표현하고 마음을 다스리려 노력한 덕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만, 그만보다는 그래, 그래정도로 최대한 담백하게 반응하며 그냥 말을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아이들의 이런 말들은 엄마들의 불안을 자극하기 때문에, 때때로 듣고 있기가 힘들다. 엄마들도 두렵고 불안하고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이때 내가 사용한 들어주기담백하게 반응하기는 부모가 연마해야 하는 중요한 기술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돌돌이는 또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유치가 빠지고 영구치가 나는 과정이 아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나 보다. 다 아는 아야기를 또 하고 또 한다.

 

어른 이빨이 나지 않고 어린이 이빨 그대로 살 수 있으면?”

만일 세상에 강철로 된 이빨이 있다면? 만일에.. 만일에...”

예전에는 이빨을 지붕에 던졌어? 새 이빨 나오라고 던졌어?“

엄마는 밥 먹다가 이빨이 빠졌어? 이빨이 밥알인 줄 알고 먹을 뻔 했어?“

 

빠진 앞니가 훤히 보이는 조막만한 입으로 재잘대는 네가, 참 귀엽다

* 이빨 빠진 아들
일곱살 돌돌이, 이빨이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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