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정가제 개정 논의에 관한 아벨서점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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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가제 개정 논의에 관한 아벨서점의 생각
  • 곽현숙
  • 승인 2020.10.05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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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곽현숙 / 아벨서점 대표

2020년 9월 25일 자 [인천in] 기사에 배다리 ‘나비 날다’ 책방 권은숙 대표의 글이 실려있다.

요점을 추리면,

‘도서정가제 개정 논의가 국회에서 한창 논의 중이다. 그래서 인천에 동네책방 6곳이 국회 의사당 앞에서 일인 시위를 하고 있다. 피켓에는 ‘도서정가제 개악 반대, 도서 정가제가 사라지면 동네 책방도 사라진다.’ ‘도서정가제가 흔들리면 책방뿐 아니라 책 문화 생태계가 무너진다.’

이 기사를 보면서 수년전 정가제가 없던 시절, 신학기 학생 참고서가 책방 경제에 중심을 이룰 때, 배다리 초입에 있었던 두 책방에서 새 책 참고서 가격을 20%에서 25%까지 내려 받아 인천 전역의 학생들이 몰려들어 끝이 안 보이는 줄을 서서 사가던 모습이 떠오른다.

첫해는 멋 모르고 당하고 두 해, 세 해 가면서 학교 앞 작은 책방들이 인천에서만도 30여점이 문을 닫았다.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 나라 경제가 좋아지면서 새 책이 더 많이 팔리는 추세였다. 당시 배다리 헌책방들은 다른 이유로 그만 두기도 했지만, 학교 앞으로 새 책방을 차려 이동한 헌책방이 더 많았다. 헌책방은 급격히 줄어 20집도 못되게 남았다.

배다리에 참고서 도매점들이 많았는데, 학교 앞으로 이사간 그 책방 주인들을 길에서 만났을 때 피골이 상접한 얼굴에 가득 찬 수심을 잊을 수가 없다. 신학기 두세 달 판매로 경제적 여유를 축적 해놔야 일 년 운영비 걱정 없이 살아낼 수 있기에 신학기 장사는 중요했다. 그러나 철없는 사람들의 ‘작당’으로 삶을 꾸릴 일 년의 경제를 도난당한 것뿐 아니라 마음이 난도질당한 것이다. 인천만이 아니라 똑같은 일들이 서울 경기도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고 한다.

 

배다리 지업사 이두환 선생 말씀이, 옛날 부자의 그늘은 20리를 드리운다고 했다. 없이 사는 사람들에 귀 기울이는 삶이었다는 것이었다. 지금의 기업들은 돈 되는 일이라면 서민의 밥그릇도 낚아 채어 기업의 배를 채우는 것이 오늘의 모습이다.

이런 무질서 속에 그래도 도서계에서는 ‘도서 정가제’가 질서를 잡아주었다. 많은 책방들이 급속히 확대되온 멀티미디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음에도, 마을 안에 책방들이 생겨나는데 힘을 실어준 정책이었다고 본다. 도서정가제라는 기본이 도서계를 지켜주는 힘이었다.

참신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 동네에 열린 책방을 열고, 좋은 책을 선정해서 독자를 늘려가는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흐믓한 마음에 참 살맛을 느끼게 했다. ‘책방은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삶의 아름다움 볼 수 있는 눈을 열어가게 하는 ‘마음의 학교’였던 것이다.

필자는 어느 책 축제에 초대받아 사회자가 ‘이런 책 축제를 어떻게 보는가?’라고 묻는 말에 이렇게 답한 적이 있다. ‘책 축제란 마음이 빈곤한 사회에서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책방에 들어서는 순간 축제의 장이 열립니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집으로 들어서는 마을 어귀에 친근한 책방이 있다고 상상해봅시다. 그 문을 열고 들어서며 마음이 가는 책들의 제목에 설레는 눈빛을 맞추는, 그 축제를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축제란 마음의 흥을 일렁이게 하는 에너지의 연출 아닌가요?’

 

헌책방이기에 책을 정리하려고 오시는 분들을 많이 대하게 된다. 책을 그냥 버리기에는 마음이 힘들어 가져 오셨다는 분들이 90%는 된다. 함부로 할 물건이 아니라는 마음들을 본다. 집 정리를 하면서 모든 것은 내어 버려도 책은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기에 소중하게 묶어서 몸소 책방에 부려 놓는다. 책은 함부로 다룰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온몸으로 증언하신다.

25년 전 한 손님이 어린이 위인전 책 값을 묻는다. 12만원이라고 답하니 옆 책방에서는 10만원에 판다고 한다. “저희는 12만원입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아이들이 알고 싶은 사실을 잘 도울 수 있도록 노력한 책입니다. 저희가 남는 돈은 3만원입니다만, 그 돈은 우리 책방을 유지해야 할 소중한 돈입니다. 그리고 이 책의 가치로 볼 때 이 정도의 값은 귀한 돈으로 치루고 봐야 책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엔 그래도 책값이 싸서 이 책을 발굴하고 만들어 열심히 공급하는 출판사에 매번 감사하며 팔고 있습니다. 손님들도 그런 마음으로 구매하시면 좋은 책들이 많이 만들어 지겠지요?”

아무 소리 없이 듣고 있던 손님은 나가더니 30분쯤 후에 다시 들어와 ‘한국 위인’ ‘세계 위인 ’두질을 24만원을 주고 사가셨다. 귀한 가치에 손 들어준 양심! 이렇게 아벨책방에 피워진 양심들이 성실히 책을 사랑하게 하는 힘을 실어주었고 노력하게 도와주었다. 헌책방이기에 책값을 물건 사듯이 쉽게 ‘500원 정도는...’ 하고 흥정을 해 들어오는 손님에게 ‘아니요, 책 값 인 걸요!’ 말한다. 이 대답엔 책에 대한 예의를 손님에게 원하는 동시에, 열심히 하겠다는 힘을 같이 끌어내는 책 지기의 답이다.

 

'책'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이 많이 어려운 때다. 정가제를 폐지하자는 소리도 그 속에서 나왔겠지만 그러나, 그 일만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여기에서의 폐지라는 말은 ‘책 사랑’이 제 길로 흐르는 일을 파괴하는 일과 같다고 생각한다. 책 문화 파괴를 넘어서 살아있는 글들이 살아있는 가슴으로 흐르는 생명 원천의 길을 폐지하는 행위와 같은 것이다.

책값은 무엇인가? 작가와 책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수고와 독자 간에 소중한 약속이다. 서로 소통하는 중심에 서있는 반석인 것이다. 그래서 책값은 잘 정해야하고 독자도 성실히 예우하여 약속이라는 반석을 반듯하게 놓아야 한다.

짧은 기간이지만 도서 정가제는 마을 책방들이 살아나게 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작은 책방, 그리고 이곳들을 찾는 주민들을 지키려는 노력을 통해 서로 마주보며, 서로의 안녕을 인사하는 사이가 되어 위로해 왔다. 배다리 마을 책방들도 여섯 집으로 줄어들더니 최근 다시 두 집이 늘어 가고 있다.

‘민의의 전당’ 국회는 국민의 삶 기본에 무엇을 지켜 주어야 할 지 생각해야 한다. 국회는 국가라는 배경을 기둥으로 삼고 말없는 다수 국민들이 소신 있는 삶을 펼치도록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 받은 곳이라 생각한다. 그 중요한 국회에서 도서정가제 폐지를 논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담하다. 책방을 꾸려 48년, 수없는 위기를 자괴감이 들도록 격어 불감증이 될 만도 한 나이가 됐지만, 감히 우리 배다리 책방들을 대표해 말한다.

- 도서 정가제 지지

- 완전 도서 정가제 지지

- 도서 정가제 폐지는 수많은 마을의 책방들을 파괴하는 개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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