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명절에 일어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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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명절에 일어난 일
  • 조영옥
  • 승인 2020.10.0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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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조영옥 /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소통의 글쓰기반 회원

 

“아니?, 왜 이렇게 옷이 다 젖었지?, 여기가 어딘데?”

차가운 느낌이 들면서 깨어났다. 고개를 들어 어슴푸레한 주변을 살펴보니 거실 바닥에 물이 흥건하게 고여 있고 그 위에서 내가 엎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어린 손녀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내 옆에 다가와 손을 잡는다.

“할머니, 이젠 괜찮으세요?”

“윤교야!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할머니가 왜 이렇게 물속에 엎어져 있냐?” 묻고 나니 그제야 생각이 돌아온다. 물을 한 모금 마신 것까지는 알겠는데 그 다음은 전혀 기억에 없다. 나도 모르게 쓰러지고 잠깐 정신을 잃었나 보다.

그날따라 남편은 친구와 점심 약속이 있어 나가고 손녀와 둘이만 집에 있었다.

“엄마, 저는 언제 핸드폰을 가질 수 있나요? 6학년 언니 될 때 까지 기다려야 하나요?”

“그럼, 아직은 너에게 핸드폰이 필요하지 않아, 위치를 알려주는 간단한 폰이 있나 알아보고 그 때 결정할 거야”

딸은 손녀인 윤교에게 말했다. 엄마한테 얻어내기는 틀렸다고 생각했는지 제 아빠에게 말해서 결국은 카톡이나 포털사이트를 검색해보는 정도의 핸드폰을 하나 갖게 되었다. 바라던 것이 제 손안에 들어와서 그런지 소녀는 기뻐하며 화면에 예쁜 고양이도 올려놓고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않는다. 그 재미에 빠져 제 방으로 들어가면 불러야만 겨우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그 날도 제방에 있던 손녀가 물 먹으러 거실로 나왔다가 쓰러져 있는 나를 보고는 너무나 놀래서 어쩔 줄을 몰라 한 것이다. 엄마에게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아 다시 제 아빠에게 겨우 연락이 닿아 알려 놓고는 “119에 알려야 하나” 하고 할머니를 살피고 있을 때 내가 깨어났다고 한다. 아이에게 덥석 핸드폰을 들려주었다고 지청구를 받던 사위가 전화로 연락을 받고 남편과 아들, 딸에게 연락을 하게 된 것이다.

전부터 풍선에서 바람 빠지듯이 몸의 기운이 멀리 달아나는 것을 느꼈다. 피곤해서 그러려니 하고 무시한 채 이것저것 차례 준비를 했다. 몇 년 전부터는 두 동서가 서로 역할을 분담해서 음식을 준비해 와서 예전 보다는 훨씬 수월하고 일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내가 준비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남편은 “힘든데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쉬어. 대강 지나가면 되지” 라고 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음식 냄새가 나면 “이게 무슨 냄새인가요? 구수한 냄새가 나내요.” 하면서 주방을 기웃거리는 그에게 식혜 한 그릇을 건넨다. “아, 시원하다. 어머니 안 계시면 구수한 식혜는 못 먹을 줄 알았는데…

 

ⓒ by gliuoo/wikipedia | CC BY-SA 2.0

 

동서들이 가지고 온 음식과 집에서 준비한 것으로 차례를 지내고 집으로 돌아갔다. 남편도 아들과 함께 선영으로 성묘를 하러 나섰다. 얼굴색이 허옇고 기운 없는 모습을 하고 있는 나를 쳐다보고는 “내가 갔다 와서 뒷정리를 할 테니 아무것도 하지 말고 누워 있어” 하고는 길을 나섰다.

식구들을 다 보내고 텅 빈집에 혼자 남았다. 갑자기 막막한 느낌이 몰려온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남편이 먼저 먼 길을 가고 아이들은 사느라고 옆도 돌아보기 어려울 때 큰 병이라도 나면 어떻게 될까? 남의 일 같이만 생각했던 불행한 현실이 내 앞에도 올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세월의 무게가 어깨를 누른다.

백세시대, 21세기에 유엔이 정한 신 중년은 65~75세라 한다. 그 기준으로 보면 아직도 나는 중년이니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일도 많은 듯하다. 인생의 2막을 준비해야 한다고, 꿈과 목표를 세우고 희망이라는 단어를 가슴에 안았다. 긍정의 마음으로 이것저것 준비를 하며, 4년 전에는 마라톤 동호회를 통해 10월에 개최하는 춘천 국제 마라톤 대회에 딸, 손녀와 함께 3대가 신청서를 접수했다.

“윤교가 어려서 할 수 있을까요?” 딸이 반신반의 하면서 묻는다.

“해 보는 거야, 시작이 반 이란다.”

동네에 있는 학교 운동장에서 늦여름 저녁에 땀을 흘려 가며 연습을 했다. 어린 손녀에게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운동을 싫어하는 딸에게는 자극을 주기 위해서였다.

“세상은 도전해 볼만한 것이야. 오늘이 내 생애에 가장 젊은 날” 하면서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젊은이들의 틈바구니에서 함께 달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 정도에 무릎을 꿇고 잠시나마 혼절까지 하다니. 벌써 이러면 안돼!”

마음을 다잡고 힘을 내려 했으나 눈꺼풀은 스르르 내려앉고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든다.

“할머니, 진지 잡수세요” 손녀가 흔들어 깨운다. “그래”하고 일어서려는데, “윤교야, 할머니 그냥 계시라고 해라, 너도 거기서 할머니와 같이 먹어라” 하면서 남편이 쟁반에 밥을 차려서 준다. 숙제를 한다고 책상에 앉아 있던 손녀가

“할머니, 할아버지는 착한 남자 같아요.”

“왜? 그렇게 생각 하는데?” 하고 물었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보면 다 알아요” 한다.

“나도 할아버지 같은 착한 남자 만나면 결혼할거에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너무도 깜찍하게 말해서 “얘가 말하는 것 들으셨어요?”하고 남편을 돌아보았다. “하! 하! 하! ” 남편의 얼굴이 보름달처럼 환해졌다. 둘이서 얼굴을 마주보며 등이 굽어지도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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