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지기가 느끼는 말할 수 없는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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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지기가 느끼는 말할 수 없는 기쁨
  • 윤영식
  • 승인 2020.10.23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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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방, 그 너머의 기록]
(28) 말을 걸어오는 서가 - 윤영식 / 주안동 '딴뚬꽌뚬' 책방지기

지난 3월에 시작한 <작은책방, 그 너머의 기록> 연재가 지난주부터 필진을 바꿔 새롭게 시작합니다. '시즌2' 연재에 참여한 필진은 부평구 부평동 ‘출판스튜디오 <쓰는하루>’ 김한솔이 대표, 동구 창영동 ‘책방마쉬’ 김미영 대표, 남동구 만수동 ‘책방시방’ 이수인 대표, 서구 가정동‘서점안착’ 김미정 대표, 미추홀구 주안동 ‘딴뚬꽌뚬’ 윤영식 대표 등 5분입니다.
 

저희 딴뚬꽌뚬은 인천시 미추홀구 주안동 시민공원 맞은편 지하층에 자리 잡고 있는 서점 겸 커피하우스입니다. 이제 막 1년 하고도 5개월 남짓 지난, 생긴 지 얼마 안 되는 책방입니다.

‘사람과 공간'이라는, 저희 책방의 큐레이팅 주제를 다루는 서가인 '누군가의 삶'입니다.

저의 책방지기 경력도 딱 그만큼입니다. 책을 사서 읽기만 해본 제가, 책을 찾아보고, 큐레이팅을 하고, 총판과 작가님들로부터 책을 전달받고, 그 책들을 포장하고, 서가에 진열하고, SNS에 홍보하는 등의 일들을 지난 1년 5개월째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책방을 시작할 때는 그저 막막한 일이었는데 하다 보니 그럭저럭 해내고 있습니다. 그렇게 1년 5개월, 이 정도면 초보는 아니라고 자신감 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하겠는데, 저는 아직도 저 자신이 초보인 것만 같습니다. 아직도 종종 처음 당해 보는 상황에 쩔쩔맬 때가 있으니까요.

지난 1년 5개월은 그렇게 낯선 상황들에 당황하고 실수를 저지르며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책이 정말 쉽게 망가진다는 사실도 그렇게 배운 것들 중 하나입니다. 여름에 책방 습도가 올라가기 시작하면 책들은 습기를 머금고 뒤틀렸고, 무심한 손님들이 책을 살짝 펼쳐 훑어보기만 해도 표지는 낡아버렸습니다.

책의 상태에 까다로운 손님들이 표지상태를 예민하게 살펴보고 구매를 포기하시는 일을 몇 번 겪을 때 마다, 책방지기로서 저의 부족함을 절감했습니다. 소중한 책을 누군가 읽게 될 때 까지 깨끗하게 보존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다행히 접히거나 휘는 것은 책이라는 물체 자체의 특징인지라 대책 하나만 찾아내면 대부분의 책들을 관리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그런 일반적인 방법을 만들 수 없는 고민들이야말로 진짜 어려운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내용이 천차만별인 책들을, 어떻게 불특정 다수의 손님들에게 소개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그렇습니다. 이는 '어떻게 서가를 채워가야 할까'라는 아주 중요한 고민으로 연결됩니다.

처음 책방을 열기로 했을 때 저는 저를 즐겁게 했던 책, 저를 놀라게 했던 책, 저에게 충격과 혼란을 안겨준 책들로 서가를 채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에게 정말 의미 있었던 책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뜻 깊은 독서경험을 남겨주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서가를 제가 좋아하는 책들로 채워두면, 저희 책방을 찾는 분들이 반갑게 이 책들을 맞이해 주리라고 기대했습니다. 당연히 이런 허황된 기대는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저를 열광시켰던 책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들도 그 책들을 그처럼 환영해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배우는 데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제가 좋아하는 책과 사람들이 찾을 것 같은 책들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별다른 요령 없이 반쯤은 감으로 해나가고 있습니다만, 적어도 처음에는 없었던 겸손함이 생겼다고 말씀드릴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조금 어려울 수 있는 책들을 모은 '삶과 지식' 서가입니다
조금 어려울 수 있는 책들을 모은 '삶과 지식' 서가입니다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만, 그럼에도 제가 서가에 어떤 책을 놓을지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는 까닭은, 그것이 저희 딴뚬꽌뚬이 작은 책방으로서 맡아야 할 역할 그 자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대형서점처럼 책이 많지도 않고, 온라인 서점처럼 집으로 책을 배달받을 수 있는 편리함도 없는 저희 책방에 그런 곳들에는 없는 매력과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독자들에게 말을 건네는 서가가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작은책방 책방지기는 고르고 고른 책들로 서가를 채움으로써 이렇게 말을 겁니다. “저는 이번에 이 책을 읽고 정말 새로운 것을 배웠습니다.” “저는 우연히 이 책을 발견했는데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알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지금이 우리 모두가 이 글쓴이의 주장을 귀담아들어야 하는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책들을 이 서가에 모았습니다. 저희 서가를 살펴보고 계신 여러분들께서 제 뜻을 알아주시고 이 책을 읽어보신다면 저는 무척 기쁘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작은책방의 서가는 재고품을 쌓아 둔 단순한 진열대가 아닙니다. 그것은 책방지기가 경험하고 배우고 고민한 끝에 건네는 말입니다. 그렇게 말을 걸어오는 서가에서 책방 손님이 책을 뽑아들 때, 대화가 시작됩니다. 대화가 이루어지는 그 순간 책방지기가 느끼는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어떤 책들이 서가에 오래 남아있다면 이는 대화가 잘 안되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책방과 손님 사이의 이 어색한 침묵을 깨고 대화가 시작되도록 할 수 있을까? 아직까지 고민 중인 문제입니다! 너무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있는 걸까? 내가 건네는 말이 좀 재미가 없는 것일까? 아니면 말을 거는 태도가 너무 무뚝뚝했나? 좀 더 친절해야 할까? 그런데 혹시 내가 너무 소심해진 건 아닌가?

좋은 책들이 주인을 만나지 못한 채 서가에 머무르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답은 쉽게 나오지 않겠지만, 이 질문들에 답을 구해가는 과정 자체가 이 공간의 존재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공간의 존재의미를 들어주게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애쓰다보면, 그런 보답도 있겠지요?

 

딴뚬꽌뚬에서는 직접 커피를 볶습니다. 로스팅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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