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바다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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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바다가 열렸다.
  • 은옥주
  • 승인 2020.11.04 0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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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치료 가족의 세상살이]
돌돌이와의 여행 이야기 - 은옥주 / 공감심리상담연구소 소장

 

천리포수목원 귀퉁이에 아담한 가든스테이가 있었다.   손자와 나는 숲 사이로 난 계단을 걸어 올라가 녹슨 작은 대문을 열었다. 커다란 창으로 파란 바다가 환이 보이는 아담한 방이 우리를 반겼다. 아이는 방을 구석구석 들여다보더니 주섬주섬 메고 온 배낭을 뒤졌다. 배낭 속에는 전자계산기, 카메라등 즐겨하는 물건이 쏟아져 나왔다. 아이는 전선을 연결해서 방 한 구석에 연구소를 차린다고 했다. 뭘 연구 하고 싶은지 모르지만 늘 가는 곳마다 제일 먼저 세팅부터 했다.

가을의 천리포수목원은 눈부신 단풍과 가을 꽃들이 피어 있어 참 아름다웠다. 바닷길옆으로 난 전망대에 올랐다. 탁트인 바다를 보니 가슴 속에 쌓인 피로가 다 풀릴듯 마음이 시원해졌다. 연못 주변에는 작은 논이 있어서 가을 볓에 벼가 노랗게 익어 가고 있었다. 나는 벼이삭을 잘라서 껍질을 까고 쌀이 나오는 걸 보여 주었다.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쌀밥 재료인 쌀이 우툴두툴한 껍질에서 나오는 것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벤치에 앉아 열심히 벼를 까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집중하던 아이는 벼이삭 몇 개를 잘라 가방에 넣었다. 집에 가져 가서 까는 연습을 할 거라고 했다.

어느새 해가 넘어가고 노을이 아름답게 피어나자 우리는 부리나케 전망대로 달려갔다. 화려한 노을을 감상하는 동안 바닷물이 서서히 밀려 가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어둠이 내리고 바닷물은 저만치 물러갔다. 바닥이 다 드러난 깨끗한 모래가 물결무늬를 그렸고 우리는 플래쉬 불빛을 비추며 술래잡기와 달리기를 했다. 밤 하늘에는 별이 총총 떠있었다. 공기가 맑고 촉촉한 모래 감촉이 좋아 우리는 밤늦게까지 아무도 없는 깜깜한 바다에서 신나게 놀았다.

아침에 눈을 뜨니 바닷물이 다 빠지고 멀리 보이는 섬이 육지와 연결되어 있었다.
"우와 바다가 열렸다. 우리 섬까지 가보자"

 

바닷길이 열려서 신기하고 신난 돌돌이.
바닷길이 열려서 신기하고 신난 돌돌이

우리는 손을 잡고 부지런히 섬으로 걸어갔다. 물이 빠진 바다밑에는 바닷길이 있었다. 커다란 돌로 길게 쌓은 바위로 만든 길이 섬까지 이어져있었다. 시커먼 바위에는 굴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멀리 굴 캐는 아주머니가 꼬챙이로 열심히 굴을 캐고 있었다. 굴을 처음 보는 아이는 몹시 신기한 모양이었다. 뾰족한 돌멩이를 찾아서 그것으로 오동통하게 내용물이 들어있음직한 것을 콕콕 쪼아보았다. 속에 들어있는 굴이 바윗돌에 찍혀 먹을 수는 없었지만 아이는 뾰족한 돌 찾느라, 굴을 찾아 캐느라 또 한참을 분주했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불가사리도 주어서 만져보고 모양이 예쁜 돌도 주웠다. 색깔이 나오는 돌도 있어 커다란 돌에 그림도 그렸다.

여러가지 모양과 색깔의 돌들

저녁이 되니 밀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부지런히 방파제를 쌓았다. 첫번째 방파제를 쌓고 밀물이 밀려들어와 삼켜버리면 두번째 방파제를 쌓았다. 세번째 네번째를 쌓고  그것을 사수하느라 부지런을 떨었다. 마지막 다섯번째 방파제를 쌓을 때는 손이 다 까져서 따끔거렸다. 삽으로 두꺼비집을 만들어 집이 여러채가 되자 작은 마을이 생겼다. 두꺼비 마을은 밀물이 들어오자 다 잠겨 버렸다.
"집에 물이 들어왔어! 마을이 다 없어지네."
우리는 안타까워서 발을 동동 구르며 바라보았다.

낮 동안은 천리포수목원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었다. 조그만 화랑에서 꽃그림 전시회를 보고, 하얗게 핀 갈대밭에서 숨바꼭질도 했다. 해가 넘어갈때면 전망대에 올라 해넘이를 보며 눈부신 노을을 감상했다. 밤에는 썰물이 서서히 밀려 가는 것이 신기했다. 물결 모양의 깨끗한 모래 사장을 달리며 노는 시간이 참 좋았다. 나흘을 그렇게 생각 없이 놀았더니 머릿속이 물에 씻은 듯 깨끗해지고 밝아졌다. 


천리포가 심심해지면 바로 옆 만리포 해변으로 가서 갈매기 먹이를 주며 놀았다. 작은 자갈돌이 잔뜩 깔린 파도리해수욕장도 참 아름다웠다. 집에서 그리 멀지도 않은 곳에 이렇게 좋은 곳이 있으니 굳이 멀리까지 갈 필요가 없겠다.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듯 자주 찾아 오고 싶어 졌다. 돌아 오는 길에 서해안고속도로가 좀 막혔지만 손자는 피곤해 하지도 않았다.

돌돌이와의 즐거운 여행! 

"할머니랑 좀 더 같이 있고 싶은 데!"
아이는 아쉬운 표정이었다. 다음 여행은 어디를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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