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안 웃음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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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안 웃음거리
  • 김선
  • 승인 2020.11.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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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당과 고전읽기 도전하기]
(2)이방인-㉙배심원들과 뫼르소

인천in이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서유당과 함께 어렵게만 느껴지던 동·서양의 고전 읽기에 도전합니다. ‘서유당의 고전읽기모임인 하이델베르크모임Jacob 김선(춤추는 철학자), 김현(사회복지사), 최윤지(도서편집자), 서정혜(의류디자이너), 소순길(목사), 이광남(칼럼니스트)’ 등이 원서와 함께 번역본을 읽어 내려가며 삶의 경험을 나누고 있습니다.

 

두 번째 고전읽기- 알베르 카뮈(김화영 역), 이방인 L’Etranger, 민음사.

: Jacob 김 선

 

 

j’étais devant une banquette de tramway et tous ces voyageurs anonymes épiaient le nouvel arrivant pour en apercevoir les ridicules.

내 눈앞에 전차 좌석이 하나 있고 거기에 앉아 있는 그 이름 모를 승객들이 모두 다 새로 오르는 승객을 훑어보면서 웃음거리를 찾아내려고 하는 것 같았다.

 

 

  작은 종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큰 웅성거림이 그 방 안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느낌이다. 간수들은 뫼르소의 수갑을 풀었다. 그들은 문을 열고 뫼르소를 피고석으로 들여보냈다. 법정에는 사람들이 터질 듯이 꽉 들어차 있었다. 원래 법정에 사람들이 꽉 들어차는 경우는 드물다.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말이다. 블라인드가 내려져 있었음에도 햇빛이 여기저기 새어 들어왔고 벌써부터 공기는 숨 막힐 지경이었다. 햇빛만큼이나 사람들의 호기심 찬 시선이 블라인드 너머로 가득한 상태인가 보다. 유리창을 닫아 둔 채여서 더욱 그럴 것이다.

  뫼르소는 의자에 앉았고 간수들도 뫼르소의 좌우에 자리를 잡았다. 뫼르소 앞에 나란히 열을 지은 얼굴들이 눈에 뜨인 것은 바로 그때였다. 모두 뫼르소를 바라보고 있었다. 뫼르소는 그들이 배심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바라보는 서로의 시선은 다른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그 얼굴들을 구별 짓고 있던 특징을 뫼르소는 말할 수가 없다. 뫼르소가 받은 인상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배심원들의 모습이 전체적으로 보였다는 것은 뫼르소도 당황해 하고 있다는 증거다. 얼굴의 특징을 찬찬히 바라볼 여유가 있으려면 법정의 공기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뫼르소에게 배심원들은 자신의 눈앞에 전차 좌석이 하나 있고 거기에 앉아 있는 그 이름 모를 승객들이 모두 다 새로 오르는 승객을 훑어보면서 웃음거리를 찾아내려고 하는 것 같았다. 새로운 승객으로 전차에 탄 뫼르소는 관망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폴 세잔(Paul Cézanne, 1839~1906), Fastnacht (Mardi Gras), 1888.
폴 세잔(Paul Cézanne, 1839~1906), Fastnacht (Mardi Gras), 1888.

 

그것도 서커스 단의 광대처럼 웃음이 묻어 있지만 슬픈 존재자로 교활한 악마같은 존재자인 배심원들 앞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것을 뫼르소는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 배심원이 찾고 있던 것은 웃음거리가 아니라 범죄거리다. 그러나 그 차이는 그리 큰 것이 아니라고 뫼르소는 생각하고 있는데 우리의 생각과는 다른 것 같다. 그 차이가 앞으로의 삶에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들지 우리는 알기에 뫼르소의 생각이 낯설다. 어째든 그것이 뫼르소의 머리를 스친 생각이었다고 한다. 뫼르소는 또 그 닫힌 방 안에 들어찬 그 모든 사람들 때문에 좀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재판정 안을 다시 한 번 둘러보았으나 어느 얼굴 하나 분간할 수 없었다. 어리둥절해 하는 그가 눈에 선하다. 처음에 뫼르소는 그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보려고 복닥거리며 모여들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 같다. 지금까지 그런 관심을 받아 본 적이 없으니 당연하다. 보통 때 사람들은 뫼르소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 관심을 받을만한 일을 하는 걸 원치 않는 뫼르소에게 보통의 사람들은 지나가는 바람과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그래서 뫼르소 자신이 법정의 법석의 원인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 많이도 모였다고 뫼르소가 간수에게 말하자 그는 이게 다 신문 때문이라고 대답하며 배심원석 아래쪽 테이블에 자리 잡은 신문기자 한 패를 가리켰다. 그때는 기자 패거리 정도로 불리니 다행이기는 한데 신문이 사건을 각색할 때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 같다.

  간수는 기자 한사람을 알고 있었는데 그 기자가 그때 간수를 보고 다가왔다. 기자와 간수의 친분은 피의자나 피해자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췰까? 꽤 나이가 많고 호감이 가는 사내는 매우 다정스럽게 간수의 손을 잡았다. 이 순간 뫼르소를 다정스럽게 잡아주는 손은 없었다. 그때 뫼르소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 아는 얼굴을 찾아서 말을 걸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마치 같은 세계의 사람들끼리 서로 만난 것이 즐겁기만 한 무슨 클럽에라도 와 있는 것 같다는 데 주목했다.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서는 다들 낯익은 얼굴들을 찾으려고 애쓴다. 낯설고 불안한 마음을 빨리 없애고 싶어서 일 것이다. 그러나 이 법정은 이미 마을 축제처럼 즐겁고 들떠있다. 한 사람만 빼고 말이다. 뫼르소가 어쩐지 침입자 같고 남아도는 존재인 것 같다는 기묘한 느낌도 들었다. 진정한 이방인이 된 것이다. 그러나 신문기자는 웃음을 띠면서 뫼르소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모든 것이 뫼르소에게 유리하게 잘 풀리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빈말로 위로한다.뫼르소가 그에게 고맙다고 하자 자신들이 이 사건을 좀 띄워서 보도했다고 말했다. 여름철은 신문사로서는 경기가 부진한 계절이라서 기삿거리가 될 만한 것이라곤 이 사건과 직계존속 살해 사건밖에 없었다고 기자는 말했다. 기자에게 뫼르소는 신문시장의 경기부양용 도구인 것이다.

  그리고 그는 방금 자신이 빠져나온 그 사람들 무리 가운데 마치 살찐 족제비처럼 작달만하고 큼직한 검은 테 안경을 쓴 사나이를 가리켜 보였다. 뭔가 기자스러운 외모는 아니나 기자스럽게 꾸민 느낌이 난다. 그는 파리에 있는 모 신문사에서 특파된 기자로 직계존속 살해 사건에 관한 보도를 맡은 까닭에 뫼르소의 사건도 한꺼번에 기사로 만들어 보내라는 지시를 받고 온 것이라고 간수와 친분 있는 기자는 말했다. 그 말에 사태 파악이 안되는 뫼르소는 하마터면 감사하다고 인사를 할 뻔했다. 그러나 그것은 우스운 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씩 상황파악을 하는 건가? 그자는 뫼르소에게 다정스런 손짓을 살짝 해 보이고 가 버렸다. 뫼르소는 몇 분을 더 기다렸다.

  뫼르소의 변호사는 법복을 입고 여러 동료들에게 둘러싸여 들어왔다. 그는 신문기자들에게 가서 악수를 했다. 그들은 농지거리를 주고받고 웃기도 하며 아주 느긋한 태도였는데 마침내 법정 안에 종이 요란스럽게 울렸다. 변호사의 느긋한 태도는 근거가 있는 느긋함인가? 뫼르소의 변호사는 진정 뫼르소를 위한 변호사인가? 법정 안 종소리에 이 모든 궁금증이 묻히는 분위다. 모두들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변호사는 뫼르소에게 와서 악수를 했고 질문을 받으면 짤막하게 대답하고 이쪽에서 먼저 뭐라고 말하지 말 것이며 그 밖의 일은 자기에게 맡기라고 충고했다. 기본적인 변호인의 모습을 보이고는 있지만 왠지 찜찜하다.

  뫼르소의 왼편에서 의자를 뒤로 당기는 소리가 들리더니 붉은 법복을 입고 코안경을 쓴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사나이가 조심스럽게 옷을 여미며 앉는 것이 보였다. 검사였다. 검사스럽다.서기 한 사람이 개정을 알렸다. 동시에 커다란 선풍기 두 대가 윙윙거리기 시작했다. 판사 세 사람이 서류를 가지고 들어와서 실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단으로 매우 빨리 걸어갔다. 판사스럽다.

토머스 모어(Thomas More·1478~1535)
토머스 모어(Thomas More·1478~1535)

 

붉은 옷을 입은 사나이는 중앙의 안락의자에 자리 잡고 앉아서 둥근 모자를 앞에 벗어 놓고 조그만 대머리를 손수건으로 닦고 나서 재판 개정을 선언했다. 이제부터 이 재판이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하면서도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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