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낯 뜨거운 삼성 찬양
상태바
언론의 낯 뜨거운 삼성 찬양
  • 전영우
  • 승인 2020.11.12 12: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영우의 미디어 읽기]
(51) 외신의 선택적 인용 - 한국 언론의 고질적 병폐
중앙일보 10월26일자
중앙일보 10월26일자

삼성 이건희 회장 타계 소식을 다루는 언론의 삼성 찬양이 낯 뜨겁다. 아무리 고인에 대한 예의라고 이해하려 해도, 일부 언론의 보도는 도가 지나쳐도 너무 지나쳐서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이다. 삼성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고인 재임 중에 성취한 일이니 고인의 업적이지만,  홍보용 기관지에서도 보기 어려울 법한 과도한 개인 영웅시는 매우 불편하고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듯하여 씁쓸하기만 하다.

중앙일보는 뉴욕타임스 기사를 인용하여 “삼성의 큰 사상가”라는 제목을 뽑았고, 동아일보도 뉴욕타임스를 인용, 고인이 삼성을 전자업계 거인으로 만들었다는 기사를 게재했다. 조선일보도 역시 뉴욕타임스를 인용하여 싸구려 TV를 팔던 삼성을 글로벌 거인으로 키워냈다는 기사를 실었다. 대부분의 보수언론과 경제지는 고인과 삼성에 대한 찬양 일색이다. 혹시 충성경쟁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니, 도가 지나쳐도 너무 지나쳤다.

이들 언론이 인용한 뉴욕타임스 기사 원문을 보면 찬양 일변도가 아니라 공과 과를 비교적 균형 있게 다루었다. 특히 고인이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해 두 번이나 사면을 받았고 이는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패턴이라는 지적도 있다.

로이터통신의 기사를 봐도 제목부터 “오점을 남긴 거인”으로 “이 회장이 만든 제국은 위계적이고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갖고 있고, 가족 재산의 의심스러운 이전으로 행동주의 주주들에게 비판을 받았다”는 다소 부정적 내용이지만 한국 언론은 그런 내용은 쏙 빼버리고 공을 다룬 내용만 선택적으로 인용했다.

외신을 선택적으로 인용하고 자의적인 해석까지 덧붙이며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기사를 왜곡하는 행태는 한국 언론의 고질적 병폐였는데, 인터넷으로 외신 원문을 손쉽게 검색이 가능해지면서 그런 노골적 왜곡은 줄어드는가 싶었다. 그런데 이번 삼성 관련 기사에서는 아예 작정하고 자의적 인용을 하고 있다.  

외신 인용은 백번 양보해서 고인에 대한 예의로 그렇다고 해도, 맥락조차 모호한 아부성 기사까지 등장하고 있으니 한심하기만 하다. 심지어 이재용 부회장이 장례식장에 팰리세이드 중고차를 직접 운전해서 왔다는 기사까지 등장하는 것을 보면, 항간에서 대한민국 사회에 대해 자조적으로 말하는 “삼성공화국”을 넘어  “삼성 제국”이라 해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인다. 기사거리가 될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하려는 최소한의 언론 의식까지 내팽개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절대 군주제 왕정국가에서도 이 정도로 낯 뜨거운 보도를 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이러니 한국의 언론이 기레기 소리를 듣는다. 

세계 일류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이 한국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누구 혼자의 힘이라기보다는 종업원과 주주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이루어낸 성과이지만, 기업 오너로서 고인의 역할이 지대했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런 경영 능력을 보여준 고인이 가는 길에 언론이 그 업적을 찬양하는 것은 예의를 갖추는 것이라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예의는 품위 있고 절제된 기사를 통해 표하는 것이지, 이렇게 낯 뜨거운 찬양을 늘어놓는 것은 오히려 고인을 욕보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미 고인이 영면에 들어간 지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낯 뜨거운 기사가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면, 자본에 종속된 언론의 민낯이 너무도 노골적으로 드러나 보여서 불편할 따름이다. 권력은 이미 시장에 넘어갔다는 자조적인 말이 나온 지가 벌써 20년이 가까워 오고 있으니, 지금은 자본이 아예 절대 권력이 되었다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는 것 같다.

과공비례, 지나치면 오히려 예의가 아닌 법이다. 작금의 언론 보도는 전형적인 과공비례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아무리 광고 수입에 목을 매고 있고, 삼성이 최대 광고주일지라도 언론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자존감이 있을 텐데, 작금의 일부 언론 모습은 아예 자존감을 가진 척을 하는 가식조차 벗어던진 모습이다. 언론이 언론이기를 포기했다는 사실을 너무 극명하게 드러내 보이는 일이라, 그저 망연자실할 따름이다. 

이런 모습의 언론 보도를 과연 누가 신뢰할 수 있겠으며, 신뢰를 잃어버린 언론은 사회의 공공재가 아니라 민폐만 끼치는 사회악일 뿐이다.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를 너무 적나라하게 보고 있자니, 걷잡을 수 없이 올라오는 자조와 자괴감은 왜 일반 서민들의 몫이어야 하는지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