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의 새침한 얼굴을 대하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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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새침한 얼굴을 대하는 느낌
  • 정충화
  • 승인 2011.05.17 1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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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충화의 식물과 친구하기] 2 - 둥굴레

지인들의 집을 방문해 보면 마시는 물이 조금씩 다르다. 대개는 정수기에서 나오는 물을 먹거나 생수를 사 먹지만, 아직 물을 끓여 먹는 집도 많다. 집에 정수기가 있음에도 나 역시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한사코 물을 끓여 마신다. 물을 끓이면 용존 산소가 감소하고 미네랄이 파괴된다고는 하나 탈 날 걱정이 없고 물맛이 입에 맞기 때문이다. 물을 끓일 때에는 보통 볶은 보리나 옥수수, 결명자 등을 넣는다.

예전에 어머니께서 건강하실 적엔 간간이 물 끓일 때 넣을 재료를 이것저것 챙겨 보내주셨다. 볶은 보리와 옥수수, 결명자, 갈근(말린 칡뿌리), 그리고 또 하나 빠지지 않는 게 둥굴레다. 모두 몸에 이로운 것들인데 이들 재료로 끓인 물이 입에 맞는 것은 옥수수와 둥굴레의 향과 구수한 맛 때문이다. 어머니의 사랑을 담아 끓인 물은 내겐 그야말로 보약이나 다름없었다.

둥굴레는 전국 산야에서 자생하는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땅속 줄기에서 줄기를 뻗으며 키 높이에 비해 큰 편인 긴 타원형의 잎이 줄기 한쪽에 어긋나기로 달린다. 꽃은 5~7월경 잎겨드랑이에서 길쭉한 형태로 핀다. 꽃 빛은 줄기 쪽은 희고 아래쪽은 담녹색을 띤다. 개화 초기에는 길쭉한 방망이 모양이다가 꽃부리 끝이 서서히 여섯 갈래로 갈라진다. 둥굴레 꽃을 들여다볼 때마다 가녀린 여인의 새침한 얼굴을 대하는 느낌이 든다.

둥굴레의 어린잎은 나물로 먹기도 하며 뿌리줄기는 한약재로 이용하기도 한다. 가을에 캔 뿌리를 쪄서 말린 뒤 볶아 물에 넣어 끓여 마시는 둥굴레차는 피부미용, 고혈압 및 당뇨병 치료, 갈증 해소 등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사촌 격으로 각시둥굴레, 퉁둥굴레, 용둥굴레, 층층둥굴레, 죽대 등이 있다.

평소 술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 위장이 성치 않아 오랫동안 양약을 상습적으로 복용해왔다. 그러다 얼마 전부터 ‘유근피’라 불리는 느릅나무 껍질을 사다가 끓여서 약으로 마시� 있다. 유근피는 염증 치료 효과가 탁월하다는데, 맛이 개운치 않아 볶은 보리 한 줌과 둥굴레 몇 쪽을 넣고 끓이니 맛과 향이 좋아져 마시기가 한결 수월하다. 몸이 겪는 고초로 매양 후회하면서도 철이 덜 들어 술 만큼은 아직 어쩌지를 못한다. 술 한 잔 없이 벗이나 지인들을 만나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그러니 위염에 좋다는 유근피와 둥굴레 끓인 물이라도 부지런히 먹는 수밖에.

글/사진 : 정충화(시인, 생태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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