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핍한 시대, 예술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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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핍한 시대, 예술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김정화
  • 승인 2011.05.18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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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김정화 (문학박사, 가천의과학대학교 교양학부 겸임교수)


인천시 남구의 '금요문화예술공연' 모습

‘그들이 사는 세상’

그녀는 몇 년 전부터 매년 지방 소도시에 머물면서 그곳을 배경으로 소설을 쓴다. 그리고 일주일에 두 번 주민들을 위한 글쓰기 교실을 연다. 1년의 계약기간 동안 해당 지자체는 그녀에게 생활하면서 글을 쓸 수 있는 공간(레지던스)을 제공하고, 한 달에 2000유로(약 300만 원)를 지급한다. 글쓰기 교실에 참여하는 이들은 교사, 전직 간호사, 의사, 보험회사 직원 등 다양한 직업과 연령층의 사람들이다. 저녁 8시에 열리는 글쓰기 교실의 열기는 종종 자정이 넘도록 식을 줄 모른다. 사람들은 수업이 끝나도 작가와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는 소설과 시나리오를 쓰며 살아간다. 그의 책들은 모두 프랑스 최고 권위의 출판사에서 나왔지만 대개 출판계가 그러 하듯 많이 팔린 적이 없다. 그러므로 당연히 인세로만 살지 못한다. 하지만 파리 시내의 월세 1000유로(약 150만 원)의 아파트에서 그리 궁색하지 않은 삶을 수십 년째 영위하고 있다. 프랑스국립영화센터(CNC)는 지원을 결정한 독립영화들의 시나리오를 그에게 보내, 촬영 전 마지막 손질을 의뢰하기도 한다. 소위 스크립트 닥터의 역할이다. 그는 올 가을, 지금 집세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임대주택을 5년의 대기 끝에 드디어 제공받을 수 있게 되었다. 임대주택의 우선권은 대체로 다자녀 가정에 주어지지만, 지자체는 예술인을 위한 몫도 남겨둔다.

위는 프랑스의 경우다. 요즘 ‘복지천국’ 유럽이 홍역을 앓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프랑스도 경제성장 둔화에 따른 연금적자에 대비하기 위해 연금개혁안을 2009년에 통과시켰다. 하지만 예술가의 복지를 위한 기조의 틀은 오랫동안 유지돼오고 있다.

예술인을 위한 촘촘한 복지가 필요하다

내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앞두고 ‘복지’가 최대의 정책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교육과 건강과 주거에 대한 보편적 복지를 두고 정치권과 시민단체에서 목하 고민 중이다. 하지만 궁핍한 예술인을 위한 복지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창작자의 존재와 역할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회라면 마땅히 그들의 일자리와 안정적인 주거공간과 창작 공간 확보를 위해 지속적인 정책지원과 이를 위한 고민을 나누어야 한다.

작년 11월, 1인 언더그라운드 밴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이진원 씨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열악한 음악적 환경 속에서 분투하며 의미 있는 곡으로 우리에게 많은 울림을 던져주었다. 궁핍한 생활고 속에 그에게 닥쳐온 뇌출혈로 쓰러져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말았다. 지난 2월, 전도유망한 시나리오 작가이자 감독인 최고은 씨가 생활고와 지병에 시달리다가 요절하자 각계에서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었다. 하지만 이후 지난한 창작의 환경 속에서 고투하는 예술가를 위한 어떠한 대책이 마련되었거나 마련 중이라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창조도시’는 ‘예술인이 살고 싶은 도시’

예술인의 존재는 지역사회 전체를 향해 기능한다. 그는 알게 모르게 사람들의 정신과 영혼을 자극하고, 일상의 메마른 토양을 윤택하게 일구어내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예술창작의 작업적 특성상 짧은 시간 안에 소기의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지는 못한다. 그들의 발걸음은 느리지만 뚜벅뚜벅 묵묵히 걸어간다. 그들의 작업은 뜸들임과 기다림의 시간이 오래 걸린다. 성과물에 대한 조급함으로 그들을 쉽게 판단할 것이 아니라 느긋하게 기다리면 우리 주변에서 변화를 감지하는 시절이 다가올 것이다.

지역의 몇 개 자치구에서도 ‘창조도시’를 슬로건처럼 내걸고 있다. ‘창조도시’란 ‘예술인이 살고 싶은 도시’, ‘시민이 예술인과 함께 하는 도시’에 다름 아니다. 문화의 품격과 평등을 꿈꾸는 사회가 먼저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는 예술인을 온전히 예술인으로 살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일이다. 프랑스 좌파연대(부디 ‘유럽의 좌파’를 우리네 식의 좌파로 보지 마시라) 대표 장-뤽 멜랑숑은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내가 모든 직업의 급여를 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면, 나는 기꺼이 시인에게 가장 높은 급여를 지급하겠다.”


지난 3월 '배다리 시 다락방'에서 열린 장종권 시인의 시낭송회

 


김정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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