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지향적 반응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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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민나
  • 승인 2020.11.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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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나의 시마을]
신발끈을 조이다 - 석의준

신발끈을 조이다

                                                - 석의준

 

신혼 초에는

총각 때 입었던 밤색 점퍼를 버렸다

소매는 좀 낡았지만

총각때를 벗어야겠다고 했다

20년이 지난 뒤

신혼 때 산 식탁을 버렸다

멀쩡한 것이었는데도

유행이 지나서란다

최근에

아끼는 소라색 와이셔츠를 버렸다

칼라 깃이 약간 찌들었지만

같이 늙기는 싫단다

오늘은

일곱시가 넘었는데도 저녁을 안 한다

“저녁밥을 해야지” 했더니

무슨 하루 세끼를 다 찾아 먹느냐고 한다

신발 끈을 바짝 조였다

‘자연에 살다’가 왜 장수프로인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신발끈을 조이다’ 라는 제목의 이 시에 나오는 화자는 한마디로 불편한 심리를 드러내고 있다. 무슨 일인지 저녁 때가 되었는데 아내는 저녁밥을 짓지 않는다. 아마도 보통 부부에게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해프닝, 일시적인 부부싸움이라도 한 듯하다. 화자는 아내에 대한 서운하고 섭섭한 마음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이참에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작정하고 하는 것 같다.

생각해 보니 아내는 신혼초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것. 원하는 것, 멀쩡해서 아직 쓸만한 것을 버렸다. 상의도 없이 자신의 뜻대로 내다 버렸다. ‘변화하는 남성의 삶’ 그동안 고정적으로 가져왔던 성 역할의 변화에 대해 화자는 아마도 ‘역차별’이라는 억울함을 내비치는 듯하다.

하지만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자. 신발끈을 바짝 조이고 탈출해야 할 곳이 무례하다고 생각하는 아내인지 변화하는 아내의 편을 들고 싶지 않은 자신인지.

책임을 묻자면 아마도 둘 다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IMF를 전후하여 한국의 여성들은 사회로 진출하여 경제적인 일을 남성과 나란히 해 오고 있다. 젊은 아빠들이 가사나 육아를 하면서 성 역할의 변화가 많이 일어났다. 하지만 여전히 경제 전선에서의 헤게모니는 남성 위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가정에서 가사일을 돕는 일에 일부를 제외한 남성들은 아직도 마지못해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여성의 성역할이 남성의 심중에 아직도 고정적인 이미지로 남아 있기에 이 시의 화자 역시 그 옛날에 아내가 버린 옷을 떠올리면서 ‘역차별’을 생각하는 건 아닐까.

세계에서 성평등 순위가 하위인 우리나라에도 딸바보 아버지들이 있다. 그들이 기왕에 양성평등을 지향한다면 여성(아내)을 마음 깊숙이 진심으로 ‘함께 가는 친구’로 대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이야말로 남여 차별없이 권리가 주어지는 제일 빠른 길이 될 것이다. 한편 페미니스트들도 대중이 양성평등 문화인식을 제고하는데 정작 남성들의 도움이 긴요하다는 것을 잊지말아야 한다. 목소리만 높인다면 그들(남성, 아버지, 남편)은 도망가려고 이렇듯 매일 신발끈을 바짝 조이게 될 것이다.

시인 정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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