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안부두에서 멍게 한 접시로 용서를
상태바
연안부두에서 멍게 한 접시로 용서를
  • 권근영
  • 승인 2020.11.25 08: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송림1동 181번지, 수도국산 달동네를 기억하며]
(23) 연희의 송림동 수도국산 달동네 생활

 

2020년 새 기획연재 <송림1동 181번지, 수도국산 달동네를 기억하며>는 1954년부터 1998년까지 수도국산 달동네 송림1동 181번지에 살던 정남숙님과 그의 가족들의 구술을 바탕으로 격주 연재합니다. 어린 시절을 송림동에서 보낸 남숙의 손녀 영이가 가족들을 만나 그 시절, 그 이야기를 듣고, 글로 옮깁니다. 어렵고 가난했던 시절, 서로를 의지해 살아가던 가족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보려고 합니다.

 

1983년 11월 22일 인천 경동 신신예식장에서 결혼식을 하고, 송도유원지에서 피로연을 마친 인구와 연희는 근처 숙소에 들어갔다. 인구를 거꾸로 눕혀 발바닥을 때리던 짓궂은 친구들이 숙소까지 따라왔다. 인구는 거나하게 취한 친구들을 달래 택시를 태워 집으로 보냈다. 연희와 신혼여행도 갈 수 없는 형편에 조촐하게 마련한 첫날 밤을 주정뱅이 친구들 때문에 망쳐버릴 수는 없었다.

인구가 서울 용산구 남영동에 위치한 충무공예가구에서 인천 배다리 미주종합목재로 일터를 옮긴 건 8개월 전이다. 중구 유동삼거리에 있는 중앙초등학교(현 인천정보산업고등학교, 구 인천고등학교) 건너편 철길 쪽으로 공예사가 아주 많았다. 전원공예사, 고전조각공예사, 수도공예사, 서울공예사, 대한공작소 등. 인천에서 나무 만지는 사람들은 전부 다 배다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수도국산 송림1동 181번지 마당에서 인구와 연희

 

고전조각사에서 일하던 친구 정훈이 인구에게 미주종합목재를 소개했고, 책임자급으로 오게 되었다. 송림동에서 출퇴근하게 되어 시간과 비용은 절약했지만 자주 임금이 밀렸다. 책임자라는 이유로 다른 직원들보다 더 임금을 늦게 받았다. 인구는 결혼식을 앞두고 큰돈이 필요했는데, 사정이 어렵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인구와 연희는 신혼여행을 다음으로 미루고, 송도유원지에서 둘만의 소중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다음날 인구와 연희는 송림동 집으로 갔다. 방마다 가득한 시삼촌과 시이모네 식구들에게 새색시는 관심의 대상이었다. 특별한 대화가 오가지 않았는데도 그들은 연희와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다. 안방에 연희의 시어머니 남숙, 시아버지 형우, 시이모 혜숙과 인순, 시삼촌 경수가 둘러앉아 담배를 피웠다. 방 안에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비염을 앓고 있는 연희는 콧물이 나고 자꾸만 재채기했다. 장작불 살피러 간다는 핑계로 자리에서 일어나 마당으로 나왔다. 연희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맑은 공기를 폐 안에 채우자 재채기가 줄어들었다.

송림동 집은 나무로 불을 때 생활하고 있었다. 형우가 일하는 참외전거리에서 틈틈이 사과 궤짝이나 생선 궤짝을 구해와 뒤뜰에 쌓아놓고 땔감으로 쓰고 있었다. 아궁이에 솥을 걸어 밥을 안쳤다. 계속 두면 뜨거운 불에 밥이 타니까 숯을 아궁이 앞으로 꺼내놓고 뜸을 들였다. 벌건 숯불 위에는 삼발이를 올려놓고 석쇠에 김을 구웠다. 김은 미리 재어 놓은 거다. 솔로 참기름을 골고루 발라놓고 그 위에 소금을 뿌려서 열 장, 스무 장씩 꼭꼭 재서 돌돌 말아두었다가 밥 뜸 들이는 동안 달궈진 숯불에 구워 먹으면 아주 맛이 좋았다.

석유곤로(풍로)에서는 찌개를 끓였다. 사용할 때마다 일일이 심지에 불을 붙여야 했고, 켜고 끌 때 진한 석유 냄새가 났다. 경수의 막내딸 명화는 그 냄새가 좋아서 코를 킁킁거렸다. 그 모습을 연희가 보고 귀여워서 피식 웃었다. 남인천여자중학교 1학년에 다니고 있는 명화도 연희와 친해지고 싶었다. 명화는 연희에게 롤러장에 가봤냐고 물었다. 연희는 태어나서 한 번도 롤러스케이트를 타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둘은 주말에 동인천 자유공원에 있는 롤러장에 가기로 약속했다.

만국기가 펼쳐져 있고, 디스코 음악이 흘러나오는 롤러장은 생기가 넘쳤다. 명화는 바퀴가 달린 신발을 신고 쌩쌩 잘 달렸다. 뱅글뱅글 돌면서 넘어지지도 않았다. 연희는 마음과는 다르게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다리에 힘을 줘 바퀴를 밀어보려고 할수록 몸의 중심을 잡기가 어려워 이상한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팔과 다리가 따로 노는 듯한 엉거주춤한 몸짓으로 몇 번의 시도를 해보았으나 잘 안 되었다. 연희는 바퀴 달린 신발을 벗어버렸다. 명화에게 조금 더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오라고 말하고, 롤러장 옆 동물원으로 갔다.

자유공원 동물원에서 새를 보며 앉아 있는데 명화가 왔다. 명화는 자유공원에 몇 년 전만 해도 놀이공원이 있었다고 알려주었다. 문어발, 회전 그네 같은 재미난 놀이기구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수봉공원으로 옮겨졌다고 말이다. 다음에 같이 놀러 가자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맥아더 동상과 팔각정을 구경하러 갔다.

명화에게는 8살 위의 언니 명진이 있었다. 명진은 연희보다 2살 어렸다. 연희는 24살 명진은 22살.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고 죽이 잘 맞아 자주 어울렸다. 한 번은 영화가 보고 싶어서 떡볶이를 먹으러 갔다. 수도국산 언덕에서 현대시장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제삼교회 담벼락 밑에 떡볶이 가게가 있었다. 극장의 영화를 홍보하는 사람들이 담뱃가게나 구멍가게에 영화 포스터를 붙이고, 주인에게 표를 몇 장씩 주고 갔다. 그럼 주인은 표를 반값에 팔았다. 명진과 연희는 떡볶이를 사 먹으면서 영화표 두 장을 달라고 했다.

동인천에는 영화관이 많았다. 문화극장, 애관극장, 키네마극장은 개봉관이어서 영화표 값이 비쌌다. 개봉관에서 영화 상영을 마치고 난 뒤에 필름을 받아 상영하는 제2 상영관들이 있고, 현대극장은 가장 마지막으로 영화 필름이 넘어오는 곳이었다. 인기가 있는 영화는 필름을 많이 돌려서 중간이 낡은 것도 있었다. 현대극장에서는 상영 중간에 필름이 끊어지면 잠시 쉬는 시간을 갖고, 다시 이어서 보여주기도 했다. 개봉영화를 조금 기다려서 봐야 했지만, 개봉관보다 값이 저렴하고, 떡볶이를 먹으면 표도 반값에도 구매할 수 있어서 수도국산 달동네 사람들이 종종 현대극장을 찾았다.

연희와 명진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어떤 남자가 명진의 옆자리에 앉아 말을 걸었다. 명진은 불쾌했다. 연희의 옆구리를 쿡쿡 찔러 나가자고 신호했다. 두 사람이 일어서자 그 남자가 따라서 일어났다. 극장을 나와 밝은 빛에서 보니 동네 건달 같았다. 재빨리 현대극장에서 사람이 많은 현대시장으로 달려갔다. 그 남자는 더는 쫓아오지 못 했다.

밤이 되어 연희는 인구에게 영화관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인구는 버럭 화를 냈다. 무슨 사고라도 났으면 어쩔 뻔했냐며 나무랐다. 연희는 잘못한 사람은 그 남자인데, 도리어 자신에게 화를 내는 인구가 황당했다. 다음날까지도 서운한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이를 눈치챈 인구가 저녁에 연안부두에 가서 데이트하자고 했다. 연희는 알았다고 하면서 쉽게 용서해주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다.

인구와 연희는 갯벌을 매립해 새로 만들어진 연안부두에 갔다. 식당에 들어가 멍게와 산 낙지를 시켰다. 경상남도 진주 시골에서 살다 온 연희는 인천에 와서 멍게와 산 낙지를 처음 먹어봤다. 생긴 건 징그러웠는데 너무 맛있어서 한 접시를 다 먹었다. 멍게 향이 참 좋아서 콧속이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그 사이 인구에게 서운했던 감정도 누그러졌다. 인구가 미안하다고 말했다. 연희는 멍게와 산 낙지 한 접시와 함께 인구를 용서했다.

 

자유공원 맥아더장군 동상 앞에서 연희와 인구
자유공원 맥아더장군 동상 앞에서 연희와 인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