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거짓말-언론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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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거짓말-언론의 태도
  • 전영우
  • 승인 2020.11.26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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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우의 미디어 읽기]
(53) 최태민과 BBK 파고 들었다면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많은 화제를 낳았다. 워낙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도널드 트럼프였기에 어느 정도 예상은 되었던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새로운 기록도 세워지고 흥미로운 선거였다. 복잡하고 다소 난해하기까지 한 미국의 선거제도의 난맥상을 다시금 확인하는 기회도 되었다.

선거결과가 확정되기까지 시간이 상당히 걸릴 수 있다는 사실도, 21세기 전자정부 시대에 보기 힘든 광경이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미국 언론사들이 조 바이든 후보의 승리를 확정 보도하기까지 며칠이 걸렸다. 제도의 한계로 인한 것이기도 했지만, 미국 언론들은 상당히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 이전의 대선에서 모든 언론이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당선을 예측했던 것과 판이한 결과를 가져왔던 것에 대한 반성으로 더욱 신중한 태도를 보인 측면도 간과할 수 없겠다. 사실 언론이 신중한 자세를 갖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미국 언론이 보여준 또 하나의 사례로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이나 발언의 생중계를 도중에 끊어버린 일을 꼽을 수 있다. 자신에게 불리한 뉴스를 모두 가짜뉴스 취급하고, 전혀 근거없는 허위 주장을 태연하게 하는 트럼프 대통령이지만 어쨌거나 대통령의 발언을 생중계 도중에 허위 주장이라고 끊어버리는 방송사의 태도는 한국 언론이 본받아야 할 자세이다.

이런 미국 언론의 보도 자세를 보며 떠오르는 것은 전임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고 나서 소집했던 기자회견 중계방송이다. 당시 박근혜 전대통령은 탄핵에 대한 변명과 억울함을 호소하는데 급급했는데, 그런 상황에서 기자들이 제대로 된 질문을 아무도 던지지 않았다. 오히려 전달하는 말씀을 얌전하게 받아적는 태도를 보인 기자들과, 전혀 사실 무근인 거짓 내용을 늘어놓는 대통령의 발언을 아무런 여과없이 그대로 생중계를 했던 한국 방송국의 태도는, 이번 미국 방송국의 생중계 중단과 대비된다.  

한국의 언론은 언론 본연의 역할을 포기하고 특정 권력의 순한 양이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최근들어 다시금 조명되고 있는 것이, 2007년 당시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박근혜후보와 이명박후보가 서로 제기했던 의혹이다. 박근혜후보는 이명박후보의 도곡동 땅 의혹과 BBK를 문제삼았고, 이명박 후보는 박근혜 후보가 최태민 일가에 의해 조종당한다는 의혹을 제기했었다. 13년이 흐른 지금, 당시 두 후보가 제기했던 의혹은 모두 사실로 밝혀졌고 두 전직 대통령은 구속되어 영어의 몸이 되었다.

 

 

만일 당시에 한국의 언론 중 단 한곳이라도 제기된 의혹들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언론이 있었다면, 즉 단 한곳이라도 언론의 정도를 걷고 언론 본연의 의무를 다했더라면, 두 후보는 결코 대통령의 자리에 오를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한국 언론의 직무 유기로 인해 자격없는 두 명의 인물이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고, 국정을 망쳤으며 결국 구속 수감되었다. 이런 두명의 전직 대통령의 모습을 봐야 하는 국민의 심정은 착잡하기만 했다. 

박근혜 전대통령이 탄핵을 당하고 구속되게 된 것은 결정적으로 손석희의 JTBC가 언론의 역할을 제대로 했기 때문이었다. 만일 손석희의 JTBC와 같은 언론이 2007년 당시에도 존재했더라면, 감옥에 들어가야 할 사람들이 대통령이 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그 사람들이 감옥에 갈 일도 없었을 것이다. 언론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한 것인데, 유감스럽게도 한국 언론은 그런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탄핵 당한 대통령이 자처한 기자회견에서 날카로운 질문 하나 던지는 기자가 없었고, 얌전하게 받아쓰기만 하는 기자들에게서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그게 한국 언론의 현주소이고 한국 기자들의 자화상이다. 

권력과 자본을 움켜쥔 사람들에게 한없이 관대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가혹한 모습을 언론이 보여준 것이 한두번이 아니다. 한 신문사 광고국장이 삼성의 장충기 전 사장에게 보낸 “우리는 그동안 삼성의 눈으로 세상을 봐왔다. 앞으로도 물론이다. 도와주시라. 저희는 혈맹”이라는 문자가 공개된 것이 벌써 몇년전인데, 아직도 한국 언론은 전혀 반성이나 개선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의 발언도 헛소리를 한다며 생중계를 끊어버리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할 망정, 꼬리를 흔드는 추태는 최소한 보여주지 않으려는 예의라도 있어야 할텐데, 그런 예의조차 차릴 줄 모르는 한국 언론이 그저 안쓰럽기만 하다.

 

구속되는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되는 이명박 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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