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며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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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며 살고 싶어요"
  • 이혜정
  • 승인 2011.05.27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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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사람 된 이웃] 권병우 남인천우체국 집배원


남구 학익동 인근에 우편을 배달하던 권병우 집배원이
홀몸노인 댁에 들러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취재 : 이혜정 기자

"나눔과 사랑을 전하는 집배원으로 살고 싶습니다."

1년 내내 인천시 남구 지역 어르신들에게 나눔과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사람이 있다. 평소 사람의 발길이 거의 없는 달동네 노인들을 보살피고 말벗이 되어 주는 권병우(47.남인천우체국) 집배원이다.


얼마 전 권 집배원은 학익동 김모(75) 할머니 집 대문을 손질했다.

"할머니 이걸로 막으면 바람이 새 들어와요. 저번 주에 해놓은 거니까 아직 덜 말랐네. 지저분한 것만 손질해드릴 게요."

할머니는 매일 찾아와서 살펴주는 권 집배원에게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한다. 집수리 등 못하는 게 없다며 자식들보다 낫다는 게 할머니의 얘기다.

권씨는 간단한 대문손질이 끝난 후 집안을 둘러보며 안부를 묻는다.

그는 아침 9시부터 저녁 8시까지 우편을 배달하면서 이 동네를 지날 때마다 할머니 집에 꼭 들른다. 할머니에게 오는 우편물은 거의 없지만 아직까지 연탄을 때고 사는 할머니 걱정에 일과처럼 할머니 집을 찾는 것이다.

권씨는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대신해 시장을 봐 드리거나 틈나는 대로 전기가 제대로 들어오는지, 연탄가스는 새지 않는지 등을 꼼꼼하게 살핀다. 

남구 학익동과 문학동 달동네에서 올해로 5년째 혼자 사는 어르신들을 돌보는 권 집배원. 그는 "집배원 일을 하다 보니 눈과 귀가 어두워 끼니조차 잘 챙기지 못하는 어르신들이 많은 걸 보고 뭐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 시작했다"면서 "평소 우편을 배달하다가도 힘겨운 할머니들을 보면, 어머니 생각에 그냥 지나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사실 그가 돌보는 할머니는 김 할머니 말고도 10여명 더 있다. 우편물을 배달하다가 잠깐씩 들러 안부를 살피거나 말벗이 되어준다.


 바람이 새 들어오는 학익동 김모 할머니 집 대문을 수리하는 권씨. 

권씨가 봉사를 시작하게 된 것은 전라북도 순창에 살고 계신 어머니 때문이라고 한다.

어린시절 가정형편이 어려워 일곱 식구가 남의 집 곁방살이를 하면서 살았다. 식구들의 수저를 줄여야 했던 권씨 형제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서울에 올라가 돈을 벌었다. 그는 고생하는 어머니와 형제들을 보면서 좋은 곳에 취직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벽돌공장을 다니며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학교에서 전기기술을 배운 권씨는 인천에 취직을 하면서부터 어머니와 떨어져 살게됐다.

"어릴 때는 몰랐는데, 취직해서 혼자 생활을 해보니 어머니께서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알겠더라고요. 자주 찾아 뵙지 못해 전화만 드리는 게 항상 죄송스럽지요.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을 보면 다 제 부모님 같아요."

그는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어르신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즐겁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 배운 전기기술로 노후된 전기선을 갈아주고, 위험하게 나온 전기선을 정리하는 등 어르신들 집의 수리를 할 수 있어 오히려 고맙다.

권씨에겐 동네 곳곳에서 어르신들을 만날 수 있게 해준 '집배원'이 천직이다.

"일도 하고 어르신들에게 도움도 주고. 이렇게 남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직업이 몇이나 되겠어요? 요즘처럼 험한 세상에 낯선 사람에게 문을 열어주기도 쉽지 않지요. 우편도 나르고, 나눔도 나르고, 집배원 생활을 하면서 하루도 행복하지 않은 날이 없어요."

그와 함께 동료 집배원 30여명은 '하늘 꿈 봉사단'을 만들어 두 달에 한 번씩 홀몸노인과 소년소녀가장 등 어려운 이웃을 찾아 도배와 집수리 봉사활동을 한다.

권씨는 "하루에 한 번씩 어르신들을 만나다 보니 이제는 가족 같다"면서 "단순한 봉사가 아니라 그냥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고, 안 하면 오히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우편물을 번지수 별로 분류하고 있는 권씨.

이처럼 평소에도 나눔과 사랑을 전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은 권씨는 지난 3월 17일 강원 강릉시 썬크루즈호텔에서 지식경제부 우정사업본부 주최로 열린 '2010년 우편연도' 시상식에서 '집배원 대상'을 받았다. 이 상은 우편 사업 실적이 좋고 봉사정신이 투철한 집배원에게 주는 영예다.

"제가 운 좋게 받은 겁니다. 저 말고도 좋은 일 하시는 집배원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그냥 했을 뿐이에요. 더 해드릴 수 없어서 아쉽기만 합니다." 

어르신들에게 따뜻한 우편과 함께 사랑을 전하는 권 집배원. 그는 남구 일대 할머니들의 팬으로 '달동네 천사'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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