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주인이 되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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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주인이 되고 싶으신가요?
  • 김한솔이
  • 승인 2020.12.18 12: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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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방, 그 너머의 기록] (36)
중요한 건 책방지기의 정서입니다 - 김한솔이 / 출판 스튜디오 ‘쓰는하루’ 대표

지난 3월에 시작한 <작은책방, 그 너머의 기록> 연재가 10월부터 필진을 바꿔 새롭게 시작합니다. '시즌2' 연재에 참여한 필진은 부평구 부평동 ‘출판스튜디오 <쓰는하루>’ 김한솔이 대표, 동구 창영동 ‘책방마쉬’ 김미영 대표, 남동구 만수동 ‘책방시방’ 이수인 대표, 서구 가정동 ‘서점안착’ 김미정 대표, 미추홀구 주안동 ‘딴뚬꽌뚬’ 윤영식 대표 등 5명입니다.
 

명패 달았던 날
명패 달았던 날

작은 책방을 운영하면 종종 ‘서점 창업’ 질문을 받습니다. 퇴사 후 여유롭게 책방을 꾸리고 싶은 직장인, 작업실 겸 책방을 공동으로 만들어서 운영하고 싶은 창작자들, 드라마 속 공방을 꿈꾸는 대학생들, 정년퇴임을 앞두고 고민이 많은 중년까지. 그들이 꿈꾸는 작은 책방들이 모두 존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취향을 듬뿍 담은 동네 서점들이 많아지는 것은 분명 기쁜 일입니다. 책을 사랑하고 문화 공간을 아끼는 이들이 더 많아질 테니까요. 그래서 오늘은 책방을 꿈꾸는 이들에게 시작하는 용기를 전하는 글을 써볼까 합니다. 그저 “책방을 차리고 싶다!”라는 마음 하나로 맨손으로 뛰어든 출판스튜디오 <쓰는하루>의 주인 부부의 창업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 처음부터 끝까지, 셀프 인테리어로 책방을 만들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나요? 겁도 없이 렌터카 사무실로 사용되던 1층의 상가를 얻었습니다. 적지 않은 20평의 너른 평수와 넉넉한 뒷마당 그리고 부평구청역과 가까운 지리적 잇점까지. 속전속결 계약을 마치고 도장을 찍어버렸습니다. ‘책방 주인’이라는 근사한 직함에 마음이 들떠 제대로 된 준비 없이 험난한 창업의 길에 들어선 것이지요. 이제 믿고 맡길 것은 우리의 노동뿐! 한 달 내내 새벽까지 먼지를 들이마시며 셀프 인테리어를 했습니다.

차가운 공간이었던 사무실이 따스한 빛을 뿜는 책방이 되기까지 참 오래 걸렸습니다. 특히 글쓰기 수업용 8인 테이블과 디귿 싱크대, 바 테이블 등 가구까지 손수 만드느라 꽤 많은 땀을 흘렸습니다. 목재 공장부터 전등, 싱크대, 가구, 욕실 타일 도매 센터까지 안 다녀본 곳이 없었고, 커피 머신과 제빙기 설치, 타일 붙이기, 환풍기 달기, 온수기 설치, 간판 스티커 작업까지도 모두 셀프로 했습니다. 출판스튜디오 <쓰는하루> 명패를 거는 날, 그렇게 우리 책방의 첫 페이지가 넘어갔습니다.

 

셀프 인테리어 
셀프인테리어2
셀프인테리어2

 

□ 인테리어 공사보다 중요한 것은 책방의 컨셉

솔직히 고백합니다. 책만 쌓아두면 짠하고 책방이 되는 줄 알았어요. 애정을 담은 시간이 쌓여야 비로소 우리가 아는 그런 책방이 되는구나. 손님들이 편안하게 책을 음미할 수 있는 공간 뒤에 숨은 노고를 그때 깨달았던 것 같아요. 무작정 공사가 끝나고 부랴부랴 오픈해 텅 빈 느낌이 공존했던 오픈 초기. 문을 열고 들어와도 휙 하고 나가게 만들던 책방.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부끄러워집니다.

손님들의 발걸음과 눈길 그리고 마음을 붙잡기까지 반 년은 더 걸린 것 같아요. 책방은 참 재미있는 곳입니다. 공간을 찾아오는 사람의 기분을 담아내거든요. 또 잠시 한눈 팔아도 분위기가 금방 훅 날아가 버립니다. 애정을 갖고 계속해서 가꿔주고 돌봐줘야 하죠. 책방지기들이 부지런할 수밖에 없는 이유기도 합니다.

대형 서점이 아닌 동네의 작은 책방은 취향을 먹고 자랍니다. 그저 많은 책으로 공간을 채운다고 해서 취향을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인테리어 공사보다 힘든 것은 따스한 공간의 온기를 품게 하는 것이더군요. 또 중요한 것은 바로 책방지기의 정서였습니다. 돈과 시간을 들인다고 해서 따라 할 수 없는 고유한 정체성. 어울리는 책을 선별 입고하고 배치하고 그에 맞는 음악을 선곡하는 일은 얼핏 소소해 보이지만 차곡차곡 쌓이면, 누구도 훔쳐 갈 수 없는 무형의 결이 됩니다. 제 것이 아닌 남의 것을 흉내 낸 취향은 결국 손님들에게 들켜버리고 맙니다.

책방 운영 노하우를 물어올 때, 당신만의 특별한 이야기를 찾으라고 답합니다. 저희의 책방 컨셉은 단 하나. 책을 구매하는 곳보다 책을 만들고 싶은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곳’이 되자. 네 번의 계절을 만나는 동안 흔들리지 않고 출판스튜디오 <쓰는하루>만의 결을 찾아갔습니다. 책방치고 서점 코너는 다소 협소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퍽 드는 곳이랍니다. 창작의 욕구가 샘솟는 곳! 타박타박 타자 치는 소리가 반가운 곳! 나의 이야기가 책이 되는 곳. 책을 읽는 사람보다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더 많은 곳. 그렇게 우리 책방만의 취향이 쌓여갑니다.

 

조금씩 변하는 여름 책방
조금씩 변하는 여름 책방 풍경

 

□ 성공적인 책방 창업을 하려면

서점 주인은 책을 많이 읽을 것 같지만 의외로 독서 시간이 부족한 직업입니다. 드립 커피를 내리며 서평을 쓰는 일보다 입고 작가, 유통 업체와 업무 메일을 더 많이 나눕니다. 또 사진 찍어서 SNS 포스팅하고, 문의 답변을 하고, 손님 응대를 마치면 반나절이 훌쩍 지나가 있습니다. 문화 행사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시즌에는 기획서와 홍보 자료를 만드느라 끼니도 거르기 일쑤이며, 또 운영비를 감당하기 위해 투잡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책방 창업을 하기 전에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의 취향은 무엇인가, 공간에 어떤 사람들이 왔으면 좋을까, 나만의 스토리텔링은 무엇인가’ 등 내면의 질문을 해보세요. 질문의 답이 명확할수록 책방엔 더 많은 이가 찾아옵니다. 녹록지 않은 책방이지만, 책을 사랑하는 이들 곁에 머문다는 것은 꽤 즐거운 일입니다.

여기저기서 나눠주는 다정한 마음을 듬뿍 받으며 성장하는 귀한 직업이기도 하고요. 무모하게 시작한 탓에 힘든 일 년을 보냈지만, 저희는 책방을 통해 고마운 인연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가끔 제가 하는 일들이 꺼져있는 심지에 불을 옮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겨울밤처럼 희미하지만 언젠가 환하게 밝아지는 날이 오겠죠? 부디 온기를 품은 작은 책방들이 더 많이 생겨나 함께 빛을 내주길 바랍니다.

 

 

 

사람들로 가득찬 겨울 책방 풍경
사람들로 가득찬 겨울 책방 풍경
책방주인이 되었습니다
책방주인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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