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전 그림책방을 열었던 작가, 그와 함께 한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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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전 그림책방을 열었던 작가, 그와 함께 한 글쓰기
  • 김미영
  • 승인 2020.12.28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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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방, 그 너머의 기록]
(37) 김미영 / '마쉬' 책방지기

 

<내가 쓰는 나> 글 김미영, 김명순 외, 표지, 본문 일러스트 &캐리커쳐 권영묵 , 제목 캘리그라피 김지영, 발행 김숙, 마그위쓰

 

마쉬에서 첫 독립 출판물이 나왔습니다.

18명의 참가자들이 꺼낸, 내가 쓰는 내 이야기와 매 수업 시 썼던 '응원과 위로의 말' 김숙 작가님의 에세이 한 편이 담겨 있어요.

 

 

 

이 책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마쉬가 오픈한 지 채 한달이 되지 않던 2019년 12월 14일, 한 분이 마쉬를 찾아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그림책이란 것이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도 않았던 20년 전 동인천 지하상가에서 그림책방을 했었노라고, 한 1년 정도였지만 그때 책방을 찾아와 주던 분들과는 지금도 인연이 닿기도 한다고요. 그림책방을 하던 그 행복한 기억을 품고 있기에 언젠가 꼭 다시 책방을 열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시간이 이렇게 많이 흘러버렸다고요, 자신이 책방을 하던 이 근처에 그림책방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한 걸음에 달려오셨다고요, 인천에 그리고 동인천에 이런 공간을 만들어주어 고맙다는 말을 거듭했습니다.

우리는 둘 다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그 분은 마음에 품던 소망과 긴 세월을 떠올리셨고, 저는 만약 내가 마쉬를 1년 후에 접게 되고 다시 열겠노라는 다짐이 20년이 걸린다면 하는 상상 때문이었습니다. 그림책을 좋아하는 40대와 60대의 둘은 한 참이나 그림책 이야기를 했습니다.

마쉬를 찾아온 그 분은 <100층짜리 집>,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구덩이> 등 다수의 그림책을 번역하고 펴낸 그림책 출판사 북뱅크의 대표이자 번역가, 소설가, 그림책 작가인 김숙 대표님이었습니다. 한 참이나 이야기를 나누고도 저는 믿을 수가 없었어요. 저와 딸들이 자주 읽던 책을 번역하고 펴낸 분이 내 눈앞에 앉아서 나와 그림책 이야기를 하다니요, 현실감이 없는 그 일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김숙 선생님은 마쉬에서 그림책을 매개로 한 힐링 글쓰기 수업을 진행 하겠노라 했어요. 그것도 재능기부로 말이지요.

본인이 번역하고 펴낸 일본그림책을 일본인 강사분을 초청하여 원어로 낭독하고 번역을 한 김숙 선생님이 낭독하고 작가와 글쓰기에 대한 강연을 해주었습니다. 수업 말미에는 내가 쓰는 <위로와 응원의 말>을 엽서에 써서 서로 나누어 가지고 낭독하는 수업이었습니다. 수업 제목은 <내가 쓰는 나>로 정했지요. 5명 정도 한 클래스를 만들려던 수업은 참가자가 많아져서 10명씩 2반으로 만들어 매월 2번씩 진행됐습니다.

 

권영묵 작가가 그린 마쉬외 배타리 생태 텃밭(저작권은 작가와 마쉬에 있음)
권영묵 작가가 그린 마쉬외 배타리 생태 텃밭(저작권은 작가와 마쉬에 있음)

 

늘 당연하게 가까이 있기에 소중함을 자주 잊고 잘 안다고 믿지만 사실은 자세히 모르는 게 바로 나 자신입니다. 우리는 그림책 낭독과 선생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통해 나를 돌아보았습니다. 어린 시절, 형제자매, 용서와 화해, 그리고 선물이라는 주제들이었습니다. 늘 상처를 받는 줄만 알았는데 상대에게 상처를 낸 적도 많았고 남의 상처를 염려하다 정작 스스로에게 깊은 상처를 새기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말하지 않는 것이 때론 많은 말을 한다는 것 또한 보았습니다. 미안하다고 눈을 보며 말하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글(카톡이나 메세지)로 전달되는 상처들을 때론 서로를 마주 봄으로 도닥여 줄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다짐도 했습니다.

누군가 내어 준 시간과 마음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었다는 것 그런 모든 시간과 나 자신이 최고의 선물임을 알아차리며 아쉬운 마지막을 받아들였습니다. 이 후 책이 출간되기까지 참가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김숙 선생님은 메일로 글을 지도하고 직접 편집하면서 책을 만들었습니다.

<내가 쓰는 나>는 20대에서 60대까지 함께했어요. 참가자 들 중에는 작가님들도 있고, 처음 글을 쓰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이 책은 중요한 일에 밀려 잊혀지는 가장 중요한 나 자신을 잊고 살던 어른들이 그림책으로 위로 받으며 나눈 응원과 위로로 나 스스로가 쓴 내 이야기라는 것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어떤 글은 미소와 희망의 메세지를 담고 있고, 어떤 글은 함께 울며 읽게 됩니다. ‘글쓰기는 삶을 헤쳐 나갈 평생의 착한 연장 하나를 챙기는 일’이라고 하는 김숙 선생님의 말을 모두가 체험하고 이제 부터라도 계속 글을 쓰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12회차 수업을 기획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여러 차례 수업은 취소와 중단을 반복하다가 5차례로 끝이 났습니다. 많이 아쉽고 안타까웠지만 우리는 글을 썼고 책이라는 선물을 받았습니다.

2020년 코로나임에도 많은 분들은 또 살아냈습니다. 어느 해보다 새해에 대한 기대를 하기 어려운 연말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주 작은 시간들을 쌓고 지속함으로 내 삶을 아름답게 살아낼 수 있습니다. 때론 그 과정이 두렵고, 좌절과 아픔이 동반되어 원치 않은 포기를 선택해야할 때도 있겠지요. 하지만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나를 잃지만 않으면 우리는 또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삶을 헤쳐 나가는 착한 글쓰기라는 연장 하나를 챙겨보면 어떨까요?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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