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끝에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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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끝에서 온 편지
  • 장재영
  • 승인 2020.12.30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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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치료 가족의 세상살이]
태교여행의 추억

 

때는 따스한 봄날, 뱃속의 아이와 처음으로 가본 땅 끝이었다.

시국의 여파로 여행에 굶주렸던 우리 부부는 어디든지 건수만 있으면 마다않고 가려던 참이었다.

마침, 친한 동생이 목포에서 결혼식을 한다는 연락이 왔고 선뜻 그 먼 거리를 마다않고 자가용을 몰고 따뜻한 남쪽을 향해 달려갔다.

 

목포 갓바위의 일몰

 

목포는 결혼식을 위해 잠시 머무른 곳이지만 바다도 너무 예쁘고 무엇보다 일몰이 기가 막혔다. 기왕 온 김에 하루 더 묵어가기로 했다.

밤에는 해안가 공원을 산책하며 가게 사장님이 추천하는 농어회도 한입 맛보았다.

주말을 이용한 짧은 여행인지라 금방 돌아가야 하는데 여기까지 와서 돌아가야 하는 게 너무 아쉬운 밤이었다.

 

주인장 추천으로 처음 먹어본 '농어회'

 

혹시 내일 땅끝마을 한번 가볼래? 여까지 왔는데 그냥 가긴 너무 아쉽지??”

 

여행 코드가 찰떡궁합인 아내는 흔쾌히 동의를 했고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땅끝으로 달렸다. 목포에서 땅끝은 그리 멀지않았다. 이른 시간이라 마침 차도 많이 없었다.

여유있게 자연경관을 보며 드라이브를 하고 있자니 자연스레 아름다운 풍경들에 심취하게 되었다.

우와... 우리나라가 이렇게 아름다웠었구나!”

지루할 틈 없이 굴곡진 형태의 산등성이가 펼쳐지는가 하면 확 트인 해안가가 나타나면서 산과 바다의 경치가 조화롭게 어우러지고 그 경치에 정신없이 빠져있던 우리는 그 언제적 TV방송에서 보아왔던 땅 끝 마을에 무사히 도착했다.

 

땅끝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땅 끝 마을 관광지는 너무도 한산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땅끝 전망대에 올라갔지만, 시설은 입장불가가 되어있었다.

땅 끝까지 뻗쳐있는 시국의 여파를 실감하면서 아쉬워했지만 나름 참신한 이벤트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6개월, 1년 후 배달된다는 느린 우체통!

 

6개월, 1년 후 배달 되는 '느린우체통'

 

우리.. 아가에게 편지 한번 써볼래??

 

그렇게 갑작스레 쓰게된 편지한통

우리는 그렇게 미래의 아가에게 편지를 띄웠었다.

 

그리고 축복과 기다림 속에 직접 만나게 된 우리아이

아이와의 만남이 너무너무 반갑고 고맙지만

새벽에 자주 깨고 밤새 울어대서 비몽사몽하며 출근하기 일쑤였고

너무 힘들 때는 불평불만도 쌓이고 아내와 피로함을 서로 미루느라 다투기도 했다.

그렇게 100일을 넘기고 4개월 5개월.. 어느덧 우리는 왕초보에서 그냥 초보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었다.

 

그리고 몇일 전, 땅끝에서 온 편지가 도착했다. 도착이 늦어졌는지 8개월이란 시간이 흘렀다.

 

땅끝에서 도착한 편지

 

안녕 토토(태명) 아빠야!

아빠는 지금 엄마랑 같이 해남에 와있어.

이곳은 우리나라 땅 끝에 있는 곳이라 해서 땅끝마을이라고 불리우는 곳이야.

네가 태어나기 전 엄마랑 아빠는 좋은 추억도 남기고 태어날 너를 생각하면서

행복한 여행을 하고 있단다. 이 편지를 받을 때쯤 많이 컷겠구나!

어떤 모습일지 너~~~무 궁금하다.

 

아빠, 엄마가 많이 노력하고 사랑을 줄게.

건강하고 밝게만 자라주길^^

뱃속에서도 너는 행복한 아가였으니까 남은 시간들도 조금만 힘을 내고 곧 만나자!

너무 보고 싶다!!

2020. 04. 26 해남 땅 끝 마을에서 아빠가

 

땅 끝에서 온 편지라는 사실에 반갑기도 했지만

몇 달 전의 내 모습과 만난 것 같아 더욱 반갑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동안 육아에 지쳐 이때의 고마움을 잠시 잊어버린것을 아닌지

반성하는 시간이 되었다.

올해 아니 삶을 통틀어 가장 잘한 일은 널 만나게 된 일인 걸 절대 잊지 않을게

언제나 많이 노력하고 사랑을 줄 수 있는 아빠가 되기로 다시 한번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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