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토종 배추는 싱싱하게 피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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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토종 배추는 싱싱하게 피어있다
  • 정민나
  • 승인 2021.01.12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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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나의 시 마을]
배추꼬랭이 국 - 엄동훈

 

배추꼬랭이 국

                                     - 엄 동 훈

 

하얀 수건 머리에 두른

사람들이 겨울나기 김장을 하고 나면

밑둥만 휑뎅그렁 남겨져

아무도 관심이 없습니다.

아득히 그리움의 끝자락을 붙잡고

숨죽이고 있을 때

흙먼지 풀풀 날리는 배추밭

옛 맛을 잊지 않고 찾는 이 있어

배추꼬랭이는 소쿠리에 담겨지고

좁은 골목 허름한 식당들

옹기종기 이름도 제각각인

이모네, 넝쿨이네 가게 문으로

성큼 들어서는

햇볕도 한 움큼

시장 여인들 꿈도 한 움큼

보글보글 끓여 냅니다

저녁나절

아내의 정성이 담긴

구수한 향이 배인

배추꼬랭이 국으로 돌아옵니다

 

‘배추 꼬랭이’는 지금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없어 재래시장 같은 곳에서나 간혹 찾아 볼 수 있는 잊혀져가는 이름이다. 시골에서 성장한 필자의 기억에도 이 배추 꼬리는 남아 있지 않다. 시인의 이 시를 읽는 동안 그 모양이 조금씩 되살아나 어린 시절 배추 밭에서 고구마처럼 생긴 배추 꼬랭이를 낫으로 썩썩 벗겨 먹던 농부들이 떠올랐다.

음식이 귀하던 옛날에는 이 배추 꼬리가 유용한 음식이 되기도 했다고 하는데 배추꼬리를 잊지 못하는 할머니가 아들에게 슈퍼에 가면 ‘꼬랭이 아이스크림’을 사다 달라고 했다는 재미있는 일화도 들은 적 있다. 브라보 콘 모양을 닮은, 한 번도 먹어 본적 없는 이 배추꼬리 맛이 어떤지 인터넷 매체를 찾아보았다.

쌉쌀하면서도 달콤하고 아삭한 맛이 난다는 배추꼬랭이. 소화 촉진도 잘 되고 피로 회복도 잘 되고 춥고 머리 아플 때 생강 넣고 푹 끓여서 물대신 먹으면 좋다는 배추 꼬랭이. 고향의 맛이 배여 있는 이 조선 배추 뿌리는 캐면 캘수록 버릴 게 없는 그야말로 “아는 사람만이 아는 참 맛”을 지닌 맵찬 음식이며 우리나라 토종 음식 재료가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시인 엄동훈은 배추 꼬랭이를 예찬하는데 이 시에서 “하얀 수건 머리에 두른 사람들”이란 이 땅에서 태어나 오래도록 살아 내려온 조선 토박이들을 말한다. 이들은 본디부터 이곳에서 나는 ‘토종 농산물’을 좋아한다. 먹을 것이 없어서 그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아득한 그리움’을 간직하듯 “겨울나기 김장을 하고 나면 / 밑둥만 휑뎅그렁 남겨져 // 아무도 관심이 없”는 배추꼬랭이를 담아 가는 것이다. 좁은 골목 허름한 ‘이모네, 넝쿨이네’ 식당으로 옛 맛을 잊지 않고 찾는 이가 있어 햇볕 한 움큼, 허름한 시장 여인들 꿈도 한 움큼 들어 있는 배추꼬랭이 국은 아직 먹어보지 않았지만 이미 구수하기만 하다.

시인 정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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