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고르고 건네며 마음을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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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고르고 건네며 마음을 나눕니다"
  • 김미영
  • 승인 2021.01.29 09: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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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방, 그 너머의 기록]
(41) 한 사람을 위한 그림책 처방- 김미영 / '마쉬' 책방지기

밤 기운과 어둠이 걷힌 아침, 책방에 도착하면 책과 책방 곳곳에 책방지기의 숨결을 불어넣으며 떠올립니다. ‘오늘은 어떤 손님이 올까? 어떤 책들이 책방을 떠나 손님들의 손으로, 책장으로 초대받게 될까?’ 어느 날은 문을 열자마자 가족에게 선물할 그림책으로 주문해두신 책을 건넵니다. 아빠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걸어들어오는 아이에게 어른의 손바닥만 한 그림책들을 꺼내어 함께 읽으며 웃음을 주고 받습니다. 손자, 손녀를 떠올리며 한 권 한 권 고른 손 길에 묻은 애정이 제 마음에도 물듭니다. 지친 일상 보는 것 만으로도 선물이 된다는 소감과 함께 그림책을 찬찬히 넘기는 소리는 제 귀에도 평안을 선물합니다. '책방 지기는 참 행복한 일이야'라고 생각해 봅니다. 물론 매일 매일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를 기다리는 시간으로 채워집니다. 오랜 기다림 후 잠깐씩 만나는 행복이 있어서 오늘도 작은 책방을 따뜻하게 지핍니다.

 

대형서점이 아닌 동네 작은 책방만의 좋은 점은 책방지기와 손님 한 분 한 분과의 소통이겠지요. 그림책방 마쉬는 <마음 쉬는 시간>을 줄이고 예쁜 어감을 골라 만든 이름입니다. 그렇기에 쉼, 힐링을 원하시는 분들이 책방을 많이 찾아옵니다. 책방지기이자 그림책 테라피스트로 활동하는 제게 그림책 추천을 요청하기도 하고요. 그림책을 추천받기 위해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 만으로 위로가 된다는 말들을 해주시곤 합니다. 하여 <그림책 처방 – 마음 쉬는 시간>을 만들어 한 분을 위한 그림책을 골라드립니다.

 

누군가를 위해 그림책을 고른다는 건 설레는 만큼 어렵고 책임감도 따릅니다. 이야기를 듣는 순간 바로 떠오르기도 하고 아주 오래 마땅한 그림책이 떠오르지 않을 때도 있어요. 많고 많은 책들 중에 건넨 한 권에 한 사람을 위해 누군가가 애쓴 마음, 그 마음이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나를 통과한 책이 그 사람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잠시라도 따뜻한 기운이 되길 바랍니다. 혹여 내가 건네는 책이 마음에 안 드는 건 아닐까? 염려도 되지요. 하지만 나를 통해 그 사람과 만나진 책의 연을 믿어보며 오늘도 많은 그림책을 읽고 고르고 손님들과 소통하며 책을 건넵니다.

책방에서 책을 고르고 건네고 마쉬를 찾아 주신 분들과 마음을 나누며 떠올리는 책이 있습니다.

 

<행복을 파는 기적의 가게 라이프>, 구스노키 시게노리 글, 마쓰모토 하루노 그림, 이정은 옮김, 홍익출판사

 

《Life(라이프)》는 마을 사람들이 자주 찾는 재활용 교환 가게입니다. 할머니는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생각이 나는 것이 슬퍼서 물건을 라이프에 가져다 놓습니다. 삶도 무의미한 것 같습니다. 라이프를 찾은 사람들은 할머니가 가져다 놓은 물건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누군가의 추억이 담긴 작은 물건들이 서로의 마음에 흘러 기적이 됩니다. 어떤 기적일지는 그림책에서 직접 확인해주세요. 사람들이 라이프에 두고 간 것은 행복이기에 행복을 파는 기적의 가게 《Life(라이프)》입니다.

‘인생은 '사람이 살아간다'는 의미일 뿐만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서로와 이어지면서 살아가는 것이고 바꿔 말하면 '사람은 (서로를 살리며)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구스토키 시게노리

 

그림책방 마쉬가 누군가 놓아 놓은 마음으로 슬픔을 위로하고 서로를 살리며 행복을 나누는 《Life(라이프)》 같기를 꿈꿉니다. 코로나로 인해 책방에 직접 방문이 어려운 분들 그리고 책방 운영이 걱정되는 분들이 택배로 그림책을 주문합니다. 요즘처럼 빠른 시대에 시간도 금액도 조금씩 더 지불해야하는 동네 책방을 이용해주는 분들 덕분에 마쉬는 계속 책을 입고하고 건네는 일을 해나 갈 수 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책을 주문해주는 많은 분들이 꼭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멀리 해외에 있는 분들, 같이 한국에 있어도, 보고 싶고 함께하고 싶지만 당장 달려갈 수 없어서, 담아만 두었던 위로와 격려, 응원의 마음을 대신 전해주어서 고맙다고요. 때론 스스로에게 주고 싶은 선물을 마쉬를 통해서 받을 수 있어서 고맙다고요. 마쉬를 운영해줘서 고맙다는 말도 자주 듣곤 합니다. 그런 말들이 저를 살립니다. 또 제가 하는 일이 누군가를 살리겠지요? 그렇게 행복이 뭉게뭉게 피어나서 흐르고 있습니다.

책방은 제 짐작보다 더 돈을 벌기 힘듭니다. 하지만 기대보다 훨씬 행복한 일입니다. <행복을 파는 가게, 그림책방 마쉬>이기를 꿈꾸며 오늘도 그림책과 함께 누군가가 내어 놓을 마음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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