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식탁'은 안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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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식탁'은 안녕한가?
  • 김정희
  • 승인 2011.06.0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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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김정희 / 시인


영화 <노리코의 식탁> 중

최근 들어 가족의 해체 비율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심각한 사회 병리 현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렇게 된 데에는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 혼인관 및 가족관의 변화, 신(新) 가족의 탄생, 빈곤으로 인한 결손 가족 증가, 실업 등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가족 간의 소통의 부재도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따라서 그러한 사회적 흐름을 반영하는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보았던 것은 <노리코의 식탁>이다. 이 영화를 만든 소노 시온은 시대상을 담은 컬트영화들을 제작하여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온 일본의 영화감독이다. 그는 감각적이고 도발적인 영상이 돋보이는 <노리코의 식탁>을 통해 타자에 대해 무관심하고 이기적이며, 소통이 단절된(단절되어 가는) 현대가정의 상호관계성과 맹목적인 전통 가부장 질서를 신랄하게 풍자하면서 문제의식과 더불어 경각심을 던져주고 있다.

<노리코의 식탁>에 등장하는 소녀들은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가족관계에 환멸을 느낀다. 그들은 위선으로 뒤덮이고 미화된 기존의 가치들을 거부하고 ‘폐허닷컴’을 통해 결속하면서 혈연으로부터 과감히 탈주한다. 그리고 자기들만의 공동체 안에서 새로운 페르소나를 창조하게 된 소녀들은 ‘렌탈 가족’이라는 사업체의 일원이 되어 낯선 타인들과 인위적인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게 된다. 

렌탈 가족이란 만나서 바로 가족을 정하고 어떤 약속도 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강한 도시(都市)를 형성하며 살아가는 길고양이들의 관계성을 모방한 유사(類似) 가족이다. 이는 렌탈 가족 의뢰인들이 가족 상황을 설정하는 대로 계약적 가족관계를 맺고 그에 맞춰 역할극을 하는 것인데, 소녀들은 사실적으로 연기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며 자기 자신과의 관계는 물론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다. 

하지만 진짜 가족은 가짜가 되고 가짜 가족이 진짜처럼 되어버리는 이 아이러니는 거짓된 행복, 연기된 행복 위에 떠 있는 진짜 가족들의 가식과 위선을 조롱하기 위한 영화적 장치이다. 소녀들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가족 간의 진정한 유대감이 굵은 파이프처럼 연결된 행복의 동맥 같은 관계로 맺어진 가족’일 뿐이다.

소노 시온 감독은 “보이지 않는 전쟁 속에서 10대와 50대의 인간이 서로 마주하는 한 지붕 밑의 ‘식탁’이라는 곳은 얼마나 치열한 장소인가. 나는 그 문제에 대해 진지하고 솔직하게 관객과 대화하고 싶었다.”고 피력한 바 있다. 그는 가족 붕괴의 원인이자 현대사회의 병폐로 가족구성원 간에 만연한 이기심과 무관심을 지목한다. 그리고 예리한 통찰력으로 현대사회의 위기 상황을 전달하는 그는 <노리코의 식탁>처럼 겉보기에는 그럴 듯하지만 속은 허물어진 현대가족의 현실과 평범한 가족이 해체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관객들에게 묻는다.

너는 누구인가? 너는 너 자신에게 진실한가? 너와 네 가족의 관계는 어떠한가? 네 가족은 진정으로 행복한가? 행복을 연기하고 있는 건 아닌가? 진정한 가족이란 무엇인가?…….

<노리코의 식탁>이 보여주는 세상은 단순한 허구가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확고한 사막’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모습들을 영화 속으로 끌어들여 재해석하고 재구성한 것이다.

이 영화는 가족구성원들이 서로 진심으로 관계하고 소통하지 않으면 가정은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을 밀도 높게 표현하면서, 우리로 하여금 자기의 현실을 직시하도록 이끈다. 

5월은 가정의 달. 하지만 그와 상관없이 황혼 이혼 증가, 나홀로족 증가, 독거노인 증가, 자살률 증가 등 가족 해체와 관련한 말들이 신문지면을 덮고 있다.

이런 때에 가족을 재발견하고 가족의 정체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영화 <노리코의 식탁>을 감상하면서 우리들의 ‘식탁’을 점검해보고, 가족 간의 심리적 결속력을 다지는 계기로 삼는다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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