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청 광장에 백기완 선생 시민분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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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청 광장에 백기완 선생 시민분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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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2.16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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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전 10시부터 18일까지 오후 9시까지 운영
인천시청 인천에뜰에 마련된 백기완 선생 시민분향소

(사)인천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는 15일 영면한 백기완 선생 시민분향소를 인천시청 광장 '인천애뜰'에 마련해 16일 오전 10시부터 18일까지 오후 9시까지 운영한다고 밝혔다.

분향 기간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준수하며, 고인의 뜻에 따라 모든 조화, 조기는 받지 않는다.

백기완 선생은 1933년 1월 24일에 태어났으며, 1945년 8·15 광복 후 아버지를 따라 황해도에서 서울로 내려왔다. 이후 한반도 분단으로 여덟 식구가 남북으로 나눠 살게 되자 통일운동에 뛰어들게 됐다.

1950년대부터는 도시빈민운동, 농민운동, 통일운동, 한국진보운동에 전념하며 역사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겼다. 1964년에는 한일협정 반대 투쟁에 앞장섰고, 1973년에는 유신헌법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운동을 전개하다가 대통령 긴급조치 제1호 위반으로 구속됐다.

1979년에는 YWCA 위장결혼식 사건으로 구속됐으며, 1984년 백범사상연구소를 해체하고 통일문제연구소를 확대 설립했다. 이어 1986년 권인숙 성고문 사건 진상 폭로대회를 주도하다 수배 중 구속됐다. 1987년에는 민중 대통령 후보로 추대돼 출마했다가 김대중·김영삼 후보 단일화를 촉구하며 사퇴했고, 이어 1992년 대선에 출마해 완주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이라크 파병 반대 집회, 용산참사 빈민철거민 투쟁, 쌍용차·한진중공업 등 정리해고 저지를 위한 희망버스 운동, 한미자유무역협정 저지, 세월호 진상규명, 국정원 댓글 사건, 민중총궐기대회, 광화문 촛불집회 등에 참가해 목소리를 냈다.

백기완 선생이 생전 주창한 사상은 ‘노나메기’다. 노나메기는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너도 잘살고 나도 잘살되 올바로 잘사는 세상을 말한다.

2000년 계간지 《노나메기》를 창간하고, 2001년 노나메기 사상을 전파하는 대중강연회를 개최했다. 이후에도 꾸준히 우리 사회 각계각층에 노나메기 운동을 제안하고 관련 학술마당을 개최했다. 2011년에는 노나메기재단 설립 추진위원회를 발족했다.

생전 시집 《젊은 날》, 《이제 때는 왔다》, 《백두산 천지》, 《아! 나에게도》, 《해방의 노래 통일의 노래》를 펴냈다. 1972년부터 1975년까지 11권의 백범 연구서를 출판해 백범 사상을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2000년 계간지 《노나메기》를 창간하고, 2001년 노나메기 사상을 전파하는 대중강연회를 개최했다. 이후에도 꾸준히 우리 사회 각계각층에 노나메기 운동을 제안하고 관련 학술마당을 개최했다. 2011년에는 노나메기재단 설립 추진위원회를 발족했다. (백기완 선생 약력 출처 = 침여와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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