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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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놀이
  • 성기덕
  • 승인 2021.02.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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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성기덕 /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소통의 글쓰기반 회원

요즘 유소년들은 안락한 아파트 풍요로움 속에서 잘 사는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엔 단조롭고 별로 재미가 없어 보인다. 방학이나 되어서야 연중행사로 가족과 멀리 떠나 리조트나 팬션에 가서 며칠 즐기고 오는 것이 전부이다. 비싼 옷을 입고 화려한 장비를 싣고 스키를 타고 오기도 한다. 스케이트는 지역의 스포츠센타에 가서 실내에서 타고 온다. 또래끼리 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 얼음지치기 팽이치기는 시시해서 잘 안하는 듯하다. 사실 그런 놀이를 할 만한 장소도 별로 없다. 내 손자들을 보니 팽이치기는 대형 마트에서 플라스틱 팽이를 사 집안 거실에서 한다. 그러다 아래층 사람들이 소음 때문에 뛰어올라와 항의를 하기도 한다.

아파트엔 이웃 친구도 별로 없다. 누가 어디에 살고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를 모를 때도 있다. 방과 후 학원에 다니니 그곳에서야 잠깐 어울려 놀 친구가 있다. 그것도 꽉 찬 스케쥴에 잠깐 동안만 허락된다. 눈도 많이 안 내리고 춥지도 않은 겨울. 더욱이나 펜데믹이 시작하여 아이들은 점점 더 고립된 생활을 할 것만 같다.

나 어릴 때 겨울은 왜 그리 추었을까? 눈도 많이 자주 내리고 기온은 영하 20도는 보통이었다. 인천 영종도에서 작약도 앞바다가 얼어서 얼음이 둥둥 떠다녔고 집 방안에서도 걸래가 얼었다. 밤에 마시려고 떠다 놓은 물은 살얼음이 되었다. 하지만 추워도 눈 내리는 날이면 우리들은 즐거웠다.

그 시절 우리들의 겨울 놀이는 운동장에서 눈싸움, 논밭에서 썰매 타기, 팽이치기 정도였지만, 또한 스케이트가 있는 집 아이들 전유물이었지만 눈이 오면 동내 또래들은 다 모였다. 그러면 야! 우리 학교 운동장으로 가자! 누군가 소리쳤고 우리들은 1㎞ 정도 떨어진 운동장으로 재잘대며 걸어갔다

운동장에는 이미 그 동네 아이들이 와서 놀고 있는데 상관없이 놀다 보면 우리 편 남의 편도 없이 뒤엉켜 있다. 행여 다른 동네 아이가 우리 동네 아이를 건드리면 그때는 전면전을 하기도 하지만 눈싸움이니 큰 부상은 없었다.

내가 살던 곳에는 약 백미터 가량의 ㄱ 역자로 구부러진 완만한 언덕이 있다. 눈이 내리면 그 주변의 청소년들은 스키 타느라 북새통이었다. 어떤 아이는 대나무로 앞쪽을 구부려 만든 스키를 가지고 와서 종일 타고 놀았다. 겨울방학 시기에 점심은 잊어먹고 저녁 해가 져 안 보일 때 까지 유소년들은 해지는 줄 모르고 썰매타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버지가 썰매에 파이프를 대어 만들어준 의자 스키를 타고 공원에서 집 쪽으로 유연하게 달리는 아이도 있었다.

북새통 속에 나도 조그만 대나무 스키로 탔다. 나무토막에 철사를 부착하고 옆에다 못을 박아 끈으로 묶어 탔다. 나무 스키를 타다 걸리적거리면 형들에게 혼나고 죄 없이 쫓겨나기도 했다. 그래도 스케이트가 타고 싶어 밭두렁 낮은 곳에서 타곤 했다. 팽이치기는 공터 작은 웅덩이에서 서너 명씩 깔깔대며 실력을 견주곤 하였다. 옷이 보온도 안 되고 변변치 않고 많지도 않아 눈에 펑 젖어 늦게 들어가면 엄마에게 야단을 맞았다. 하지만 그 이튿날 아침이면 다시 옷을 말려 입고 놀 수 있었다.

지금 내 손주들 커가는 과정을 보면 숨이 차기도 하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태권도 학원, 검도 학원, 기타학원, 수영학원 뺑뺑이를 돈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수영도 돈 내고 배워? 그러면 배울 곳이 없단다. 그렇지, 예전과 많이 달라진 환경 속에서 실내 수영장이라도 있으니 체력을 키울 수가 있구나. 내 손자들은 제 부모의 학업 가치관에 따라 공부하는 학원에는 다니지 않는다. 형제끼리 집에서 체스(서양 장기) 우리 장기, 바둑, 바둑판에서 알까기 큐브 맞추기를 하거나 장난감을 사다 집에서 조립해서 논다. 누가 더 빨리하나 상품 없는 시합을 하기도 한다.

지금은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머리로 하는 웬만한 게임이 많다. 장난감도 부품을 조립·해체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나는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펜데믹이 장기화되어 어른도 아이들도 힘든 시기인데 방학 중에 집 안에서도 아이들이 놀이를 재미있게 하는 걸 보면 다행스럽기도 하다. 우리 어린 시절과 비교하여 야외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없는 아이들을 측은지심으로만 보았는데 환경에 적응하여 놀이도 잘 하는 것을 보니 우리의 미래는 밝다. 우리 아이들의 몸과 마음은 여전히 건강하다.

 

2018년 1월, 구청이 논현포대 근린공원 유수지에 조성한 썰매장. 옛적에는 나무토막에 철사를 부착해 썰매를 만들고, 논두렁 등을 찾아 다니며 썰매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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